“나에게 장애는 하나님 군대 입영통지서”

등록날짜 [ 2009-12-29 17:06:31 ]


‘2009 서울사회복지의 날’에서 사회복지상을 받았는데 어떤 상인지 소개 좀 해주세요.
서울시 복지상은 사회복지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거예요. 후원자, 자원 봉사자 그리고 종사자 이렇게 세 부문으로 나눠서 시상을 하는데 저도 받으면서 복지사에게 주는 상 중에서 가장 큰 상이라는 걸 알고 뿌듯하고 감사했어요.


17년 동안 사회복지사로 일했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하는 일이 어떤 일인가요?
제가 일하는 곳이 에덴 장애인 복지관이에요. 저는 이곳에서 재가(在家)복지팀의 팀장을 맡고 있어요. 집에만 계속 머물러야 하는 장애인들이다 보니 중증 장애인들이 많아요. 그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데 결혼 후원 사업, 도우미 파견 사업, 자원봉사자 교육 및 파견, 주거 환경 개선, 의료지원, 밑반찬이나 생활비 지원 등 많은 일을 합니다.


올해도 일하면서 가슴 뭉클했거나 뿌듯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어릴 때 척추를 다쳐서 누워만 있는 데다 신경섬유종을 앓아서 얼굴이 온통 혹으로 덮여 있는 40대 최모 씨를 만난 적이 있어요. 지체 1급 장애에 얼굴까지 그러니 남이 자기를 보는 것도 싫어했어요. 그러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희귀질환자 무료수술 지원과 연계해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사연을 보냈는데 당선이 된 거예요. KBS에서 수술비를 지원 받아 수술을 할 수 있었어요. 사십 평생을 누워만 있어서 몸이 약한 상태라 자칫 잘못하면 안면 마비가 올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이었어요. 무려 10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크게 붙어 있던 혹이 뚝 떨어진 얼굴을 보니까 깜짝 놀랄 정도로 최모 씨의 인상이 좋더라고요. 그 환하게 웃던 모습에 제가 더 행복했어요. 그분 소원이 바다를 보고 싶다는 거예요. 태어나서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대요. 조만간 이 소원을 들어 드리고 싶어요. 청년회 사회복지부 친구들과 평소 함께 활동을 많이 하는데 이 분을 위해 시간을 내서 바다를 보러 가려고 해요.


올해 합동결혼식을 열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아, 올해 복지관에서 장애 부부 다섯 쌍에게 무료 결혼식을 시켜드렸어요. 여자들 평생 소원이 웨딩드레스 입는 거라고 하잖아요. 평생 이루지 못한 소원을 이루어 드린 것이 좋았어요. 특히 그 중 한 쌍이 우리 교회 교인이었어요. 성가대 관현악단이 와서 축하 연주를 해주셨고, 여성중창단 ‘에네글라임’의 축하연주가 더해져 정말 풍성한 결혼식이 돼서 뿌듯했어요. 우리 교회 사회복지실에서도 이런 사랑을 나누는 행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복지사 일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교회서도 사회복지실 연합 총무일을 맡아할 정도니까요.
사실 사회복지사들은 박봉이에요. 그러나 저희들이 섬기는 분들이 기뻐하는 모습과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는 게 기쁨과 보람이죠. 또 다행인 것은 직장도 교회 바로 근처고 교회에서도 사회 복지실에 있고 하니 교회 일이 직장일 같고 직장일이 교회일 같아요. 축복이죠. 2007년에 에덴 복지관과 우리교회 공동 주최로 장애인의 날 기념 ‘한마음 체육대회’를 열었는데 담임목사님께서 설교도 해주시고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아직도 제 주변 복지사들 입에서 회자되고 있답니다.


본인도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지체 3급이에요. 고등학교 때 교내 체육대회 때 앞 선수와 부딪혔는데 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어요. 그 이후에 병원에서 골수염 진단을 받고 1년 후 폐결핵을 진단 받았어요. 5년 동안 대소변 받아내며 누워만 있었어요. 당시 정말 괴로웠어요. 죽으려고까지 했었으니까요. 그때 꿈이 육군사관학교에 가는 거였는데 물거품이 된 거죠.
하지만 5년 동안 투병생활하면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등등 로마서 말씀이 깊이 와 닿았어요. 나중에는 와 닿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의사들도 죽는다고 했어요. 온 몸은 굳어가고, 피는 계속 토하고…. 모든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주님을 만났고 소망을 얻었어요. 24시간 말씀을 보는데 읽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 같았어요.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며 말씀이 살아 내 몸에 역동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몸을 일으키고, 앉고, 일어서고 점차 회복됐어요. 지금 사는 것은 덤으로 사는 거예요. 아직도 다리를 절고 손 같은 경우 관절의 변형을 가지고 있지만 제 2의 삶인 거죠.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만만치 않잖아요. 어떻게 해서 이 길을 걷게 되었나요?
그 이후 극동방송으로 장애인들에 관한 시설이 나오더라고요. 막연히 관심이 갔어요. 궁금증이 일고. 그래서 방송국에 물어서 가봤는데 에덴 하우스라고 하는 장애인 시설이었어요. 그런 곳을 처음 가봤는데 온갖 장애인들이 다 있더라고요. 초라한 시설을 보자 뛰쳐나오고 싶었어요.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하니 자꾸만 마음이 끌려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에덴 하우스로 다시 가서 정덕환 원장님 (現 에덴 복지재단 이사장/한국 장애인 직업재활 회장)과 상담 후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그곳에서 4, 5년 지내면서 앞으로 공부해야겠다 싶어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입학해 공부하고 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어요.


장애를 가진 것이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데 불편하지는 않나요?
아뇨.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당사자로서 ‘과부 설움 홀아비가 안다’고 장애인들의 심리상태, 처지를 잘 아니까 상담할 때 공감이 되고 쉽게 다가오죠. 내가 먼저 경험한 상태니까. 사실 요즘은 중도 장애(후천적 장애)가 많고 또 이들이 더 힘들어 해요. 정신적 방황, 달라진 사회적 위치, 입장…. 그런 고통과 처지에 대해 직접 경험한 상태니까 그 분들이 재활하는데 더 도움이 되는 거죠. 그 분들이 얼마나 힘들지 고개만 끄덕이는 공감이 아닌 피부에 와 닿는 절실함을 느끼니까요.


어릴 때 꿈이 육군사관학교에 가는 거였잖아요. 후회는 없어요?
절대로요! 내가 짊어진 장애가 오히려 값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예전 꿈이 육군사관학교 가는 거였는데 이미 이뤘어요. 전 우리 연세중앙교회가 영적인 육군사관학교 같아요. 하나님의 군대로서 매일 영적생활의 훈련을 받고 있잖아요. 가끔 제 자신에게 말합니다. “여기가 하나님 군대야, 세상보다 더 엄하고, 진리로 무장되어 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군대야. 난 하나님 군대 사관생도다!”라고요.


앞으로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 지금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또 계속 공부를 해서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복지 현장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르치고 싶어요. 또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와 세계적인 사회복지 선교의 중심이 되는데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2009 서울시복지대상 수상자 염원삼 집사(사회복지실 연합총무)

위 글은 교회신문 <17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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