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1-11 11:48:07 ]
위험 요소 안고 현지인 사역자 세워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임을 깨달아
1893년 나는 캐나다로 돌아갔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3년이라는 대기 기간을 주셨다. 당시에 나는 다른 선교부들처럼 한국에 여러 백인 선교사를 데리고 가라는 여론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으며, 오히려 교단의 ‘신조와 의식집’(Principles and Practices)에 본토인 신자를 설교자로 세우는 것을 금하는 문구를 삽입했다. 아무래도 본토인이 잘못된 교리를 전할 우려 때문이었다. 고국에 있는 동안 나는 영적으로 큰 복을 받았고,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일해 보고 싶었다. 마침내 가도록 허락을 받았다.
사역의 방향을 바꾸다
한국에 도착한 지 하루나 이틀 뒤에 드린 첫째 예배에서 7명이 그리스도께 신앙을 고백했다. 당시에는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기는 고사하고, 한 사람도 믿음을 견지하지 못했다. 그 뒤에 곧바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시 한 번 사역을 시작하여 전도와 설득을 되풀이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신앙을 고백했으나, 목욕시킨 돼지처럼 즉시 진흙탕으로 다시 가서 뒹굴었다. 이렇게 좌절에 싸여 몇 년을 보내다가, 마침내 무슨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나와 만난 뒤 다른 선교부에 소속하여 한국에 왔던 미국 선교사들이 그 무렵에 불만을 느끼고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 선교부 책임자가 선교부 재산을 내게 넘겨주었다. 또 같은 시간에 깨끗하지 않은 노란색 상복을 입은 키 작은 사람이 그리스도께 돌아와 훌륭히 신앙을 고백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사역을 맡기기로 하였다. 그에게 맡긴 지역은 내가 살던 곳에서 480㎞나 떨어진 곳이었고, 한국인에게 그렇게 먼 지역을 맡도록 보낸다는 것은 큰 호수를 헤엄쳐 건너려는 것처럼 무모하게 보였다. 나는 예수님이 자기 양들이 아무리 휘하의 목자로부터 480㎞나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그들에게 참으로 선하신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아직 체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후 목사가 된 신명균 씨를 만나다
우리는 그 사람을 우리의 손이 직접 닿지 않는 먼 사역지로 보내면서 염려를 떨치지 못했다. 그는 그다지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믿음’이 충분히 뿌리를 내렸다고도 할 수 없었으므로 그것은 훨씬 더 힘들었다. 그는 이미 아버지와 형과 갈라서는 시련을 잘 견뎌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집안은 그가 그리스도께 충성을 맹세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내쫓았던 것이다. 어머니와 아내는 그의 편에 섰다. 두 부녀가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구주가 자기들의 구주이고 그의 하나님이 자기들의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내용을 보았다.
신명균(초대 침례교인, 일본강점기에 순교)이라고 하는 이 사람은 맨 처음 주일예배에 참석했을 때 한국의 누런 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관례에 따라 삼년상을 치렀고, 무덤에서 마지막 제사를 지낸 뒤, 집으로 향했다. 겉옷이 더 구겨지고 너덜너덜할수록 상(喪)을 잘 치렀다는 표시였다. 신 선생은 분명히 그 의무를 잘 이루어냈을 것이다. 우리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더없이 처량해 보이던 그 모습에서 그 사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귀신을 숭배할 때 입던 누런 상복을 벗고 그리스도의 의라는 흠 없는 흰 세마포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셔서 사람의 누추한 육체를 입고 타락한 인간의 원수들을 하나씩 정복하면서 살아가신, 온전한 삶이라는 실로 촘촘히 짠, 흠 없는 도포를 입은 것이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20)
얼마나 훌륭한 구주이신가! 그 크신 은혜로 사람을 귀신에게 제사하는-그 누추한 일을 하느라 옷을 버려가면서-자리에서 이끌어내사 피로 깨끗하게 하시고, 십자가로 과거와 단절케 하시면서, 말씀으로 그 정신을 씻어내셔서, 당신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보게 하신다.
죄와 삶의 애환에서 맴돌던 사람은 목자를 발견하고 그 영광과 아름다움을 본 다음부터는 거룩한 사랑과 감사의 자리로 나가고, 은혜를 갚기 위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바치게 된다. 신 선생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이 일을 했다. 그리스도를 발견한 지 열흘이 되었을 때 주께 무릎을 꿇고서, 이제는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고, 따라서 그것을 주께 드리고자 한다고 아뢰고, 주께서 그것을 기쁘신 뜻대로 써주시기를 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기술자가 도구를 사용하듯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간단한 사실과 신 선생이 특별한 사역을 위해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깨닫지 못했다. <계속> 『한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말콤 펜윅 저)』에서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2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