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2-15 15:56:44 ]
절망의 어둠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마도 하와이 제도(諸島) 모로카이 섬에서 나환자들을 돕기 위해 고향 벨기에를 떠났던 조셉 데미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데미안이 선교지로 떠났던 1873년 당시에는, 누군가가 선교 길에 오르면 그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 고향을 찾아간다거나, 혹은 향수병이나 절망감 같은 것 때문에 선교지를 옮겨 달라는 요청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데미안 선교사는 섬 원주민들과 친구가 되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그들은 그를 거부했고, 작은 예배당은 매주 거의 빈 상태였다. 그는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이러려고 몇 년씩이나 준비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12년 동안 그는 나병으로 사지가 흉하게 변한 사람들과 함께 살며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사역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서야 그가 상처를 싸매어주는 것을 허락했다. 그들이 숨을 거두면 그는 일그러진 채 남겨진 시체를 앞에 두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희망은 점차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결국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는 온 힘을 다했지만, 자신의 최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접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벨기에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타려고 부두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데미안 선교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에 보이는 하얀 반점은 나병이 분명했다. 그도 감염된 것이었다. 그래서 고향으로 가는 대신 나병 환자 촌에서 다시 일하기 위해 그는 돌아섰다.
그가 돌아서 천천히 언덕을 올라가고 있을 때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마음도 녹기 시작했다. 이제 그도 그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들의 고통과 외로움, 사회에서 받은 거절들을 그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를 찾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기어왔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서로 부축한 채로 절뚝거리며 찾아왔다. 수백 명이 그의 작은 집 밖에 모였다. 그다음 주일, 데미안 선교사는 언제나처럼 그의 작은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중 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 후 4년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을 그들에게 내어주었고, 1889년 4월 15일 49세 나이로 눈을 감고 그들 중에 묻혔다.
데미안 선교사의 삶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된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발걸음을 떼어놓으신 것이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기로 하셨던 예수는 여전히 천사들의 군대를 동원해 십자가에서 경험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얼마든지 피할 수도 있는 분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기로 하셨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돌보시는 것인지 의심이 생기고 낙심할 때 십자가를 유심히 바라보라. 그리고 그 십자가가 당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당신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당신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다 해도, 그분은 두 팔을 벌려 당신을 맞이하여 눈물을 닦아주며 사랑해주실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2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