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3-03 13:09:15 ]
고향에서 오히려 배척받았으나 이겨내고
결국 훌륭한 복음 전도자로서 인정받아
장석균 선생의 전도 간증 방법은 아주 흥미로웠다. 그는 성경을 펼쳐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하도록 했는데, 그 방법은 모든 경우마다 똑같은 결과를 일으켰다. 즉, 서로 사랑하지 않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울면서 간절히 구하게 하는 것이다. 설교할 때마다 야고보서와 베드로서의 합성 본문을 가지고 전하여 일으킨 결과였으므로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5:8).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3:11~12).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자기 죄를 자백했고, 자기가 잘못한 사람에게 가서 용서를 구했으며, 그렇게 하는 동안 성령께서는 언제나 그들의 영혼을 빛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셨다. 또 그들의 소원대로 그리스도와 그 백성과 즉시 사귐을 회복하셨다.
그런 뒤 장 선생은 둘씩 짝지어 읍과 주변 마을들로 보냈고, 그들은 가는 곳마다 사랑으로 말미암은 큰 기쁨을 갖고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향해 “오라”는 복음의 초대를 전달하였다. 수많은 사람이 집회에 참석하였고, 교인들은 예배당과 마당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찬 인파 때문에 밖으로 떠밀려나면서도 관대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하였으며, 바깥에 서서 예배를 드렸다.
장 선생은 여섯 거점을 확보한 뒤에,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집회를 인도하기 전에 아버지 집에 이삼일 머물면서 쉬었다. 쉬고 있을 때 비단옷을 입고 스스로 선비들이라고 부르는 한국인 두 사람이 포졸 넷을 데리고 장 선생 아버지 집 마당에 들어섰다. 선비인 장 선생은 보조개를 띄우며 환히 웃는 얼굴로 나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 선비들은 “이 서양 귀족이 누구냐?”고 비웃는 말을 하더니, 포졸들을 돌아보면서 “이 자를 잡아 매우 치고 옷을 벗기라! 무슨 놈의 귀족이 서양 예수 교리를 가지고 여기에 왔단 말이냐?” 하고 말했다. 포졸들은 그를 때리고 옷을 찢고 밖으로 끌고 나가 살얼음이 낀 도랑에 내던져버린 채 갔다. 시린 겨울바람이 그를 뼛속까지 얼게 했다.
그 뒤로 장 선생은 하루도 건강한 날이 없었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뼈가 부러지고 몰골이 처참해진 그를 친구들이 집까지 부축했다. 그들은 모두 사도 바울이 가장 크게 평가한 것으로 충만했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복음에 율법을 섞지 않고 은혜의 복음을 전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로 호소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
이틀 뒤 장 선생은 모든 만류를 뿌리치고 부러지고 상처 난 몸을 이끌고 마지막 집회에 참석했다. 사탄은 그의 사자들을 미리 보내어 나흘 동안 말씀 선포자와 그의 설교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분기점이 찾아왔다. 하나님을 모독하던 이 악인들이 그리스도께 인도받아 나온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바른 관계를 되찾고서 길 잃은 자들을 찾아 나선 결과, 마지막 집회는 가장 성공적인 집회가 되었다. 수십 리 밖에서까지 하나님의 사자가 전하는 복음을 들으러 사람들이 왔으며, 수많은 남녀가 주를 믿었다.
이 일이 있은 직후에 내 소중한 친구 윌버 채프먼(Wilbur Chapman)이 한국에 왔다. 나는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웠었다. 선교사들만 이해할 수 있는 외로움이었다. 채프먼은 나를 격려하였고, 서양에도 우리 사역의 진보에 깊은 관심을 두는 친구가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채프먼과 알렉산더가 주최한 파티는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 유익을 주었으며, 함께 초대받은 모든 선교사가 그들의 방문에 대해 나와 똑같은 느낌이 들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정킨 메모리얼 병원(Junkin Memorial Hospital)의 내과 겸 외과 의사 어빙(C.H. Irvin)은 장 선생이 부상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달려와서 그를 데려간 뒤, 그가 어느 정도 회복할 때까지 극진히 치료해 주었다.
그 뒤 장 선생은 새로운 선교 거점을 마련하는 임무를 띠고 사역지로 파견되었다. 미국 성서공회가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한 분량의 성경책을 보내 주었다. 이 고마운 단체 덕택에 많은 사역을 한국에서 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전도자 12명을 장 선생의 지휘를 받게 했다.
1909년 11월 4일 이들을 주변 군(郡)들로 파송하였다. 각 군에 한 사람씩 파송하였는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의 군(郡)은 규모가 대개 미국이나 캐나다의 군과 비슷하지만 인구는 더 많다. 1910년 2월 28일 파송한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보고가 들어왔는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새 교회 36개가 생길 정도로 사역이 강하게 펼쳐졌음이 밝혀졌다. <계속>
『한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말콤 펜윅 저)』에서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3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