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신 사람들] 왕 밍 다오

등록날짜 [ 2011-06-07 18:01:26 ]

1991년 7월 30일, 중국 상하이 사람들에게는 다른 날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물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들이 후왕부 강을 오르내리고, 거리도 평소와 다름없이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한 일상 한편에서는 91세로 세상을 뜬 왕 밍 다오의 추도 예배를 드리려고 작은 아파트를 조용히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원래 그다음 날로 추도예배를 예정했지만, 매우 많은 사람이 올 것을 두려워한 가족과 친지들은 하루 앞당겨 예배드리기로 했다. 경건했던 성도가 이제는 주님의 임재 속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가족과 친지들은 추도예배를 드렸다.

왕 밍 다오는 20세기를 산 중국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그런데 왜 왕 밍 다오와 그의 경건한 아내가 살던 작은 아파트에서 몇몇 사람들만 모여 추도예배를 간소히 드려야 하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중국 형법에 따라 왕 밍 다오는 한때 사형수 감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출감자이기도 했다. 왕이 살던 작은 아파트를 찾아온 방문객이 있을 때는 감시의 눈길을 피하고자 신중하게 차양을 내려야 했었다.

22년 9개월간 옥살이한 왕의 죄목은 무엇인가? 공산 국가의 정부는 그를 ‘반혁명주의자’로 낙인찍어 중국 북부에 있는 석탄 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하게 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죄목은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헌신한 것이다. 1950년대 초 공산주의자들이 교회 문을 닫았을 때 교회 지도자로 있던 왕은 “그들이 교회 문을 닫을 수는 있지만, 집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까지 멈추게 할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왕 밍 다오야 말로 성자였다. 그렇다고 그가 완벽한 사람이었는가? 아니다.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었는가? 그건 확실하다. 왕이 89세 때에야 비로소 그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시력과 청력을 거의 잃었지만 여전히 민첩했다. 그리고 그가 거친 모든 고초에도 그는 유머 감각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1981년 감옥에서 나온 왕은 「다듬어진 돌」(A Stone Made Smooth)이라는 제목으로 펴낸 자서전에서 그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했다.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하면 그 노신사는 눈을 반짝이며 “그 돌이 아직도 다 다듬어지질 않았어요”라고 대답했다.
지금 그 돌은 면류관으로 바뀌었다. 왕 밍 다오는 무신론을 주장하는 정부 탄압에서도 중국 내의 교회가 빠르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위대한 사람을 수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너무나 인간적이었다는 점이다. 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간 그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그런 형벌을 허락하는 하나님의 자비를 의심했고, 그의 의심을 진술해 풀려 나왔다. 그러나 감옥 밖으로 나온 그는 자신이 베드로처럼 그리스도를 부인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위해 결연히 일어섰다. 그리고 그다음 번에는 장기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진정한 성도는 파리 국립박물관 조각품들처럼 석고 처리를 하거나 반짝거리는 에나멜을 칠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쓰라린 핍박의 불구덩이를 경험하면서 그 불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주시고 강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발견한 사람이다.
그가 세상을 뜨기 직전에 “교회를 위해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하고 묻자 그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좁은 길을 가라고 하십시오!” 하고 대답했다. 왕 밍 다오는 역사상 위대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좁은 길 끝에서 그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위 글은 교회신문 <24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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