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6-01 12:00:05 ]
유대인 수백 명을 구출한
네덜란드 텐 붐 가 일원
<사진설명> 피터 텐 붐은 그리스도인이자 네덜란드 애국자다. 그의 일가는 유대인 수백 명을 구출해 소중한 생명을 살렸다.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시 유대인 구출을 소재로 한 영화 ‘쉰들러리스트’ 중 한 장면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잠깐이면 닿는 하를렘의 중심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텐 붐 가(家)는 유대인들이 안전하게 피할 장소가 되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나 살인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기 전까지 도망해 살 수 있었던 구약에 나오는 도피성처럼, 텐 붐 가(家)는 유럽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몰살하려 작정한 나치의 위협을 피해 도망하는 유대인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해주었다.
나치 독일 친위대들이 보육원을 차례로 뒤져 유대인 아이들을 유럽 수용소로 보내 죽음을 맞게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네덜란드의 용감한 애국지사들은 목숨을 걸고 나치 친위대처럼 분장한 다음 고아들을 구출해 텐 붐의 집으로 보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들을 입양할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집으로 갈 때까지 그곳에서 안전하게 지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몇 명이나 구할 수 있었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독일인들이 텐 붐의 집을 덮쳐 가족들을 감옥으로 보내기 전까지 수백 명에 달했던 것은 분명하다.
전쟁이 끝난 후 코리 텐 붐은 전 세계로 다니며 “용서만이 그 무시무시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대학살 범죄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다”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코리의 조카 피터는 이 모든 사건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피터는 먼저 헌신한 그리스도인이었고, 그다음으로는 네덜란드 애국자였다.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당시 그는 시골 작은 교회에서 예배를 위해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했다. 어느 날 피터는 오르간의 스톱 장치들을 풀고 네덜란드 애국가를 가장 힘찬 소리로 연주했다. 독일 시행령으로 애국가 연주를 금지해서 놀라긴 했지만 자부심이 강한 교인들은 모두 서서 노래를 불렀다. 그 반항으로 16세인 피터는 감옥에 가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피터는 “용서만이 절대 사라지지 않을 미움을 해결할 유일한 해답이다”라는 고모가 전한 것과 같은 메시지를 들고 온 세계를 다녔다.
피터는 이스라엘에서 연설하고 다니다 심장 마비로 쓰러졌다. 그를 살리는 방법은 가능한 한 빨리 수술을 받는 것이었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의사는 피터에게 “성이 텐 붐 씨로군요. 음, 혹시 네덜란드의 텐 붐 가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피터는 “그렇습니다. 저는 그 텐 붐 가의 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는 “저는 당신의 가족이 살려준 아이 중 하나였습니다” 하고 말했다. 40년 전 어린 유대인 아이였던 의사는 텐 붐 가 덕분에 생명을 구했고 그 의사는 텐 붐의 생명을 구해 그 빚을 갚았다.
약 3000년 전에 전도서 기자는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11:1)라고 말했다. 이 말씀은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 너는 이윤을 남길 것이다”라는 뜻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친절한 행동을 하건 악한 행동을 하건 결국 그 행동들은 축복을 혹은 괴로움을 가지고 되돌아온다는 의미다. 인생의 우주적인 진리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무엇을 심든지 그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 피터 텐 붐에게서 그 일이 일어났고 당신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4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