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6-15 09:20:33 ]
스코틀랜드 육상 선수이자 미얀마 선교사
1924년 금메달을 딴 후 평생 복음 전도자로
레이먼드 바테스 바커는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1924년 올림픽 육상 부문 금메달리스트 중 한 명이다.
바커는 모든 면에서 챔피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올림픽에서 단순히 메달을 따려는 것보다 훨씬 큰 목적을 가지고 챔피언이 되기로 했다. 그가 가진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는 훗날 선교 차 미얀마로 떠난다.
레이먼드 바커 박사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박사가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의 차림새는 매우 특이한데, 약간 낡은 양복이나 헐렁한 바지에 올이 굵은 겉옷 차림으로 교실에 들어오는 다른 교수들과 달리, 그는 늘 미얀마 남자들이 입는 옷을 입고 걸어 들어 왔다. 학생들이 바라보는 동안 바커는 약간 장난스럽게 탁자 위로 올라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채 움직이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수업을 진행했다. 그의 수업은 신학생들에게 오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어떻게 레이를 만나건 그는 항상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인물이었다.
그의 전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Against the Clock)에서 에릭 피페는 “1926년 레이 바커와 그의 아내 도로시가 미얀마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침례교 선교사가 200명이나 있었지만 모두 그곳 생활을 힘들어하고 있었다. 선교사들은 그들만의 은행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또 영국에서 훈련받은 하인들이 있었고, 식사 후 손가락을 씻는 물그릇을 사용하였으며, 오후 4시 차 마시는 시간을 지켰다. 그런 생활은 바커가 생각하는 복음을 들고 온 사람들의 모습과는 전혀 맞질 않았다”라고 썼다.
선교지로 가기 전, 그는 어려운 곳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육상 선수였으며 훈련을 받았고 어려움에 익숙하다는 것을 설명하여, 다른 사람들은 힘들어 꺼리는 곳으로 기꺼이 가고자 했다. 그가 중국 북쪽으로 가서 선교부를 세우고 십자가를 꽂은 것은 바로 그러한 각오가 돼 있기 때문이었다.
1980대 때 바커 박사는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이 겪은 선교 사역의 하이라이트들을 이야기했다. 진행자가 미얀마에서 어려움을 겪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아내가 신경 쇠약으로 고생했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말을 타고 엿새를 가야 했던 이야기를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에도 바커 부부는 계속해서 미얀마에서 사역했고, 일본군이 침입해 들어오기 바로 직전에 도망쳐 겨우 목숨을 건졌다.
바커는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당시로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어느 보수 침례교 해외선교회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사역을 이끌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왕성히 사역했다. 80대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일들을 행하며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주의 일을 잘 감당해 냈다.
레이 바커가 92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간 풍성한 유산을 남겨 주었다. 그것은 그의 삶을 통해 예비선교사 수백 명이 ‘희석하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한 세상을 꿈꾸는 비전을 품은 것이다.
올림픽 육상 선수였으며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선교사였던 레이 바커는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본향에 거하는 또 한 사람이 되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4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