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8-09 13:47:53 ]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위대한 성도들은 유명하거나 인기를 끈 일이 없다. 인정받지 못하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1900년 중국, 외세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의화단운동에서 순교한 창 센 역시 그러한 사람이다.
만주에 살던 장로교 선교사 로잘린드 고포스가 그에 대해 쓰지 않았다면, 창 센이 어떤 성도였는지 우리는 절대 몰랐을 것이다.
창 센은 교육을 받지 못했고 성격이 난폭했다. 1886년에 그가 회심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죽음에 관심을 보일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창 센은 36세 때 시각장애인이 됐다. 버림받은 채 술에 찌들어 살던 그는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괴팍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장님 창이라고 불렀다. 창은 자기가 살던 만주에서 약 120마일 떨어진 곳에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고쳐주는 의사들이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서 먼 여행길을 떠났다.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던 그는 길에서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았고 강도를 만났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먼지를 뒤집어쓴 비참한 모습이었다. 병원에서조차 그에게 줄 병석이 없다며 돌아가라고 말했다.
갈 곳이 없던 그는 병원 앞에 쭈그리고 앉아 헐벗은 모습으로 구걸했다. 그 모습을 경비원 한 명이 측은하게 지켜봤다. 하나님의 손이 그의 마음을 만지신 것이 분명했다. 긍휼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경비원은 병원장인 크리스티 의사를 찾아갔다. 크리스티는 장님 창에게 자신의 침대를 내어주었다.
한 달 동안 창은 병원에 묵으며 시력을 약간 회복하였다. 그러나 그가 병원에서 나온 후 중국인 민간치료사가 그의 시력을 찾아주려다 눈동자를 바늘로 찌르는 바람에 회복한 시력마저 다시 잃고 말았다. 이제 창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병원에서 복음을 듣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회심했다.
창이 침례를 받고 싶다고 했을 때, 병원 사역을 하던 제임스 웹스터 선교사는 그가 아직 침례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껴서, 나중에 그의 집으로 찾아가겠다는 약속만을 해주었다. 창은 집으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웹스터가 도착했을 때 선교사는 비록 소수였지만 침례를 받고 싶어 하는 뜨거운 신자들을 보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창의 변한 삶으로 예수님을 이해하게 된 사람들의 교회가 생겨났던 것이다.
1900년, 중국에서는 외부인을 향한 미움과 기독교인들, 특히 외국인에 대한 핍박이 대중 심리의 물결을 타고 번지며 의화단운동이 발발했다. 그리스도인들이 감옥에 갇히자 창 센은 그들을 풀어주려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그리스도인의 지도자가 죽음을 당하면 기독교 성장이 멈출 것으로 생각한 그는 1900년 7월 22일, 동물을 실어 나르는 수레를 타고 거리로 나아갔다. 그리고 사형 집행 자리로 가서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라고 찬송을 불렀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 제 영혼을 받아주옵소서” 하고 외쳤다. 그때 사형 집행자의 칼이 그의 목을 찔렀다. 그리고 장님 창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그의 시력을 회복했다. 변한 삶 자체가 그가 전한 메시지였다.
하늘나라에서도 특별한 자리에 앉을, 진정으로 위대한 성도는 세상에서 유명하거나 인기를 끌만한 일을 하지 않기에, 그의 삶으로 말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예수의 사랑을 보여준다. 창 센이 그런 사람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