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0-11 13:09:06 ]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가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쫓아낸 AD 50년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로마를 떠나 그들이 태어난 소아시아로 가서 고린도에 정착했다. 바울은 이 부부를 신임했으며 복음을 더 잘 전파하려고 그들과 함께 기꺼이 생업을 나누었다.
아굴라 부부는 장막을 만드는 자였고, 바울 역시 장막 짓는 자였기에 그 일이 그들을 연결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일했을 뿐 아니라 함께 살았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믿음과 일로만 바울과 연결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바울에 대한 존경과 우정으로도 연합했다. 그들의 충성스러움은 바울에게 있어서 많은 것을 의미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바울이 죽기 직전에 그들에게 문안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딤후4:19).
바울이 생활하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지켜본 브리스길라는 바울의 설교만큼이나 실제 생활하는 것에서도 깊이 감동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이 사람을 따르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났다. 바울은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인지를 아주 분명히 가르쳐 주었다(고전11:1).
바울은 18개월 만에 고린도를 떠났고 그동안 교회가 형성됐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와 함께 에베소까지 갔다. 믿는 유대인은 바울이 계속 머무르기를 열망했지만, 그는 도착한 지 얼마 만에 다시 전도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가이사랴로 가는 중이었다.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보낸 시간의 열매는 그때 분명해졌다. 에베소에서는 이제 바울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남아서 훌륭하게 그를 대신했기 때문이었다. 바울 생애 필생의 사업이 그들로 말미암아 계속되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로마로 불러 가셨다. 유대인을 쫓아낸 글라우디오는 죽었고, 다시 한 번 로마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이 그리스도인의 모임 장소가 되었다.
이제 바울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라고 불렀다. 전날의 제자가 귀중한 동역자로 성장했다. 그들은 유대인에게 그리고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모든 교회에서 다 같이 감사하게 기억되고 있었다.
브리스길라는 뛰어난 여인이었고 아내였다. 남편보다도 그녀가 더 훌륭했던 것 같다. 역사와 비문은 아굴라의 이름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울과 우정을 나누며 동역했기 때문에 역사상 뛰어난 위치를 차지했다.
그녀는 거듭거듭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자 복음을 위해 가정을 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바울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서 그것을 배우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는 모든 문이 그에게 닫혔을 때 바로 그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행28:30~31).
오늘날에도 브리스길라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그들이 가정을 열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
위 글은 교회신문 <26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