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신 사람들] 아이작 왓츠(Isaac watts)

등록날짜 [ 2011-09-13 15:34:08 ]

아이작 왓츠의 코는 얼굴 다른 부위보다 두 배 이상이나 크고 휘었다. 그에게는 아름답고 예술적인 마음이 있었지만 외모는 그리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5피트(150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키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가 너무 크고, 눈은 작고 날카로우며, 매부리코 역시 그리 호감을 주지 않는다”는 평을 했다.

그가 쓴 시(詩)들을 읽고 그를 사랑한 여인이 있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혼자 살았다. 편지를 주고받다 낭만적인 만남이 이뤄졌지만, 처음 그를 보는 순간 그녀의 마음은 금세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우정으로 뒤바뀌었다.

4세 때 그는 아버지께 라틴어를 배웠고, 나중에 히브리어, 헬라어, 프랑스어도 읽을 수 있게 됐다. 천재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지능을 지녔지만, 영국 국교회에서 요구하는 충성을 거절했기에 케임브리지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독자적으로 후원하는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었던 발자취를 세상에 남겨 놓았다.

600곡 이상이나 되는 찬송가 가사를 썼고 그들 중 어떤 노래들은 아직도 애창되고 있다. 그리고 논리학, 문법, 교육학, 윤리학, 천문학, 지리학, 신학에 이르는 다방면에 걸친 내용을 주제로 쓴 52권을 포함해 책 수십 권을 저술했다.
7세가 되었을 때 그는 첫 시를 썼다. 비록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가 있었으나 깊은 연민과 민감하고 섬세한 감정을 지닌 아이작의 감수성을 꺽지는 못 했다. 그런 감성들은 그의 펜 끝에서 나오는 시들 속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의 핵심은 결코 “나를 좀 보세요!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를 좀 보시라고요!” 하고 말하려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다스릴 수 있다면,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 용기를 더해 주시옵소서. 전 수고를 마다치 않을 것이며, 고통을 참으며 말씀으로 힘을 얻을 것입니다” 하고 썼다.

그의 펜 끝에서 나온 시 대부분은 우리 시대에서는 안타깝게도 쉽게 무시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광, 하나님의 지혜와 말씀의 능력 같은 성경의 중요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

그가 지은 찬송 시(詩) “예부터 도움되시고”는 모세가 “주님은 대대로 우리의 거처이셨습니다. 산들이 생기기 전에, 땅과 세계가 생기기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시90:1,2)라고 쓴 시편 90편을 기초로 하고 있다.

성탄절 축하 찬양으로 많이 부르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역시 그가 지은 아름다운 노랫말로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할찌어다”라고 한 시편 98편 4절을 그 틀로 하고 있다. 그는 시편을 신약성경의 완전한 빛 아래서 해석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을 신앙으로 묘사하고 있고 그 시편들에 나는 나의 사랑과 신앙으로 함께한다”고 썼다.

찬송가를 펴서 아이작 왓츠의 찬송 시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의 마음을 반영한 그 찬송 시들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될 것이다. 1748년 11월 25일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다른 유명하고 위대한 사람들과 함께 그의 기념비도 세워졌다. 그러나 그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거의 250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남긴 찬양 시와 찬송가들을 우리가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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