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9-21 11:08:21 ]
마르다는 긴장했다. 예기치 않은 손님으로 남자 열세 명이 자기 집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던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었다. 그녀는 배가 고픈 사람들의 필요를 돌보느라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가 자기를 도와주지 않기에 조바심이 났다.
결국, 마르다는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하고 주님께 물어보았다. 그러나 예수는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고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손님 대접보다는 자신의 영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둬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예수와 마르다 가족의 다음 만남은 극단적으로 슬픈 상황에서 일어났다. 바로 나사로가 중한 병에 걸려 죽은 것이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속히 오셔서 나사로의 병을 고쳐주기를 원했지만 주님은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오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예수께서 오셨을 때 슬픔에 사로잡힌 마리아는 집에 있었지만 마르다의 성격으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고 주님에 대한 믿음과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를 듣고 주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약속하시자 마르다는 그 말씀을 현재가 아닌 ‘마지막 부활의 날’ 곧 먼 장래의 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벅찬 사실에 그녀가 맞서도록 하셨다. 예수께서 무덤의 돌을 치우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녀는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이나 되었기에 부패한 상태에 있음을 주님이 상기하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예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소리치자 나사로가 살아서 그들 앞에 섰다. 그들은 그를 만져 볼 수 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엿새 전,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요12:1~2). 마르다는 대접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대접 잘하는 아름다운 인격과 기꺼이 섬기고자 하는 자세는 여전히 분명했다. 그녀 또한 나사로의 죽음으로 그 믿음이 시험을 받은 여인이었다. 또 그녀는 용감한 여인이었다. 유대인들의 증오심이 예수님을 죽일 만큼 극도에 달했을 때에도 그녀는 주님께 충성했다.
마르다처럼 착하고 지적이며 활동적인 여인은 지나친 추진력과 간섭하려는 욕망을 특별히 조심해야만 한다. 마르다와 같은 여인은 특히 예수가 필요하다. 예수만이 그런 여인들이 이차적인 일, 즉 영혼의 때가 아닌 육적인 일에 그들의 생애를 바치는 것을 방지하실 수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