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2-18 11:29:35 ]
강대국이 약소국 안전을 위해 인질을 자처해
<사진설명> 한국전선을 시찰하고자 내한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에게 태극기를 선물하고 있다(1952.12). 그러나 대통령직에 취임한 아이젠하워가 공산 측과 일본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두 지도자 사이에 갈등이 적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정상은 두 차례 회담을 열었다. 7월 30일, 백악관 2차 정상 회담을 앞둔 시기였다. 영빈관(블레어 하우스)에 묵고 있던 이 대통령에게 미 국무부 부의전장이 정상 회담 후에 발표할 공동 성명서 초안을 들고 왔다.
거기에는 이 대통령이 싫어하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한국은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로서…’라는 대목이었다. 미국은 한국이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여 동아시아에서 미군 작전을 원활하게 진행하기를 희망했다.
일본을 경계하던 이승만은 이 사안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승만은 미국이 일본을 중점적으로 지원한 정책을 싫어했다. 이 대통령은 참모들을 불러 놓고 또 한 번 폭탄선언을 했다.
“이 친구들이 나를 불러놓고 올가미를 씌우려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날 필요가 없지.”
이승만은 회담 자체를 거부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약속 시각인 10시가 지나자 백악관에서 이 대통령을 찾는 전화가 왔다. 다급해진 측근들이 “그래도 회담은 하셔야 합니다” 하고 설득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10분쯤 늦게 백악관 회담장에 도착했다.
급기야 회담장에서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에게 한일 국교를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격분한 이승만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사는 한 일본하고는 상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젠하워 역시 화를 벌컥 내면서 일어나 옆방으로 가버렸다. 잠시 후, 아이젠하워가 가까스로 화를 식히고 회담장에 돌아왔으나 이번엔 이 대통령이 일어났다.
“외신 기자 클럽에서 연설하려면 준비를 해야 합니다. 먼저 갑니다.”
다른 나라 지도자가 미국 대통령을 기다리게 하고, 심지어 앉혀놓고 먼저 일어나버린 사례는 이때가 유일했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가 이승만에게는 지독하게 당했다.
대통령들은 싸웠지만 실무자들은 회담을 계속했다. 결국 미국은 군사원조 4억 2000만 달러, 경제원조 2억 8000만 달러, 합계 7억 달러를 원조하겠다고 약속했다. 훗날 1억 달러를 추가해 원조 금액은 8억 달러에 달했다.
원조 없이 살기 어렵던 우리나라에 미국의 지원은 생명수나 다름없었다. 그 생명수를 굽실거리지 않고 소리치며 할 말 다하고 받아낸 것이다.
사실 아이젠하워도 인간적으로는 이승만을 이해했다. 7월 27일 아침,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아이젠하워는 측근인 제임스 헤거티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노인을 측은하게 생각한다. 그는 자기 나라가 통일하길 원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전쟁을 시작하는 일을 허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라고 조국을 통일하려는 애국자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동시에 미국 대통령으로서, 더는 한국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는 정치적 견해에 무게를 두었다.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을 언제까지 붙들어 둘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승만이 전쟁을 벌이려는 가능성 때문에,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주한 미군이 자발적으로 인질을 자처한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인계철선’이라는 개념이다. 인계철선이란, 폭탄에 연결한 가느다란 철선을 의미한다. 적의 침투로에 인계철선을 설치하여 선을 건드리면 자동으로 폭발한다.
인계철선이 지닌 핵심은 ‘적의 침투로’와 ‘자동 폭발’이다. 이 개념에 따라 미군 제2사단을 북한군이 남침할 주요 예상로인 한강 입구 중서부 전선에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이러면 북한이 쳐들어올 때 미군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미국은 자동으로 참전할 수 있다. 해외에서 미군이 공격을 받으면 대통령은 의회 승인 없이 전쟁을 선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 미군을 최전방에 지뢰처럼 깔아놓는다는 말인데, 이것은 한국이 요청한 사항이 아니다. 미국이 자발적으로 인계철선 역할을 맡겠다고 제의했다. 북한의 남침을 막는 동시에 이승만의 북침을 막고자 했기 때문이다. 북한군이 밀고 내려오면 미군을 통과해야 하고 남한군이 밀고 올라가려 해도 미군을 통과할 수밖에 없게 길목을 지켰다.
반공 포로 석방으로 호되게 당한 아이젠하워가 또다시 당할 수 없다는 절치부심에서 이런 희한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 즉 강대국이 약소국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지뢰를 자처하고 자신을 인질로 던지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계속>
자료제공 |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이호 목사 저)
위 글은 교회신문 <37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