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3-05 13:58:44 ]
콜레라 창궐로 시체는 날로 늘어
악취와 전염병 속에서 복음 전해
이승만이 감옥에서 ‘기독교로 나라 세우기’에 몰두하는 동안, 감옥 밖에서는 나라가 무너지고 있었다. 조선의 정치와 경제는 일본에 거의 장악됐고 망국(亡國)으로 치닫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자연히 이승만의 고뇌도 깊어졌다.
1902년 가을, 콜레라가 조선을 휩쓸었다. 감옥은 전염병이 창궐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환자와 맞닿아 있어야 하는 비좁은 공간, 불결한 환경, 불량한 영양 상태는 수많은 죄수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참혹하게 떼죽음하는 중에서 이승만은 사투를 벌였다. 이승만은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던 미국 의사 애비슨(Avison)에게 연락해서 약을 구했다. 그리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환자들에게 약을 투약하며 보살폈다.
이승만은 참담한 중에서도 특종을 터뜨린 기자 출신의 면모를 잊지 않았다. 1902년 9월 12일 이승만은 영어로 쓴 메모를 남겼는데, 그날 하루 감옥에서 죽어나간 이들의 기록이었다. 아홉 개 항목이 기록되어 있는데 항목마다 잉크의 진하기가 다르다. 그것은 한 사람씩 실려 나갈 때마다 한 줄씩 기록한 상황을 보여준다.
*죄수 1명-화폐 위조범
*여자 죄수 1명. 두 살짜리 딸을 남기고 갔다.
*2명이 한꺼번에, 한 명은 죄수고 다른 이는 죄수가 아님
*여자 죄수 1명
*죄수 3명. 하루아침 모두 10명. 콜레라로 죽음
*죄수 1명-종신형. 16세 먹은 소년, 저녁 8시에 죽음
*3명 중 2명은 죄수고 1명은 사형 선고를 받은 자. 모두 9시 45분경
*모두 15명이 죽음
*죄수 1명-위조범, 16명 죽음
*죄수 1명-소년, 하루에 17명
때로는 감상보다 사실이 더 큰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군더더기 없는 기록이지만 한 줄 한 줄이 가슴을 메이게 한다. 단 몇 마디로 기록한 죄수의 사연이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살을 맞댄 동료가 단 하루에 열일곱 구 시체로 쓰러져 있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살아남은 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콜레라 환자는 고열과 함께 설사, 구토, 근육 경련을 동반한다. 비좁은 감방에서 옆에 있는 죄수들이 구토하고 설사하다가 마침내 쓰러져 죽었을 때, 함께 있던 동료가 겪어야 하는 고통은, 겪지 않은 이는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간수들이 하는 일은 고작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가끔 환자들의 발을 찬 뒤에 반응이 없으면 밖으로 실어 나르는 것뿐이었다.
감방이 악취와 시체 더미로 가득 차오르던 그때, 이승만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웅적인 행동을 보였다. 이승만은 환자들을 돌보고 그들의 손발을 만지며 도와주려고 애썼다. 옆에 있는 동료가 시체가 되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섞이는 상황에서도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했다.
<사진설명> 1903년 한성감옥에서 애국동지들과 함께(왼쪽 끝 중죄수 복장이 이승만).
앞줄 오른쪽부터 김정식, 이상재(신간회 회장), 유성준(유길준의 동생, 안동교회 설립자), 홍재기, 강원달.
뒷줄 오른쪽부터 부친대신 복역했던 소년, 안국선, 김린, 유동근, 이승인(이상재의 아들)
콜레라와 싸우는 이승만의 모습은 성자에 가까웠다. 죽음의 가을을 넘긴 이듬해, 이승만은 참혹했던 계절을 기록으로 남겼다. 1903년 5월 <신학월보>에 실린 ‘옥중 전도’다. 옥중수기의 백미라고 할 감동적인 글이다.
“혈육의 연한 몸이 오륙 년 옥고에 큰 질병 없이 무고히 지내며 내외국 사랑하는 교중 형제자매의 도우심으로 하도 보호를 많이 받았거니와, 성신이 나와 함께 계신 줄 믿고 마음을 점점 굳게 하여 영혼의 길을 확실히 찾았으며… 작년 가을에 괴질(콜레라)이 옥중에 먼저 들어와 사오일 동안에 육십여 명을 눈앞에서 끌어내릴 새, 심할 때는 하루 열일곱 목숨이 앞에서 쓰러질 때에 죽는 자와 호흡을 상통하며 그 수족과 몸을 만져 시신과 함께 섞여 지냈으나, 홀로 무사히 넘기고 이런 기회를 당하여 복음 말씀을 가르치매 기쁨을 이기지 못함이라.”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서를 썼다. 자신의 몸이 사슬에 매였으면서도 복음은 매이지 않고 전해짐을 기뻐하며 감격에 찬 필치로 기쁨을 노래했다. 그래서 이승만의 ‘옥중전도’는 빌립보서를 연상케 한다.
생지옥과도 같은 감옥, 구토와 설사를 퍼부어대는 환자들 틈에서, 시신과 섞여가며 복음을 전하는 그에게 찾아온 것은 기쁨이었다. 그야말로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2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