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아야 할 믿음의 사람들(12)] 삶 전체를 기도의 능력으로 채운 목회자

등록날짜 [ 2013-12-24 09:56:04 ]

10대 때 반항아였으나 예수 영접 후 삶이 완전히 바뀌어
오로지 기도로 65년간 고아원 경영하며 예수 사랑 실천해

<사진설명> 조지 뮐러.

조지 뮐러(George Muller)는 1805년 독일 북부에 있는 크로펜스타트에서 태어났다. 공무원인 뮐러의 아버지는 술을 무척 좋아했다.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기보다는 돈으로 부족한 사랑을 채우려 했다. 뮐러는 죄악으로 쉽게 빠져들었다.

뮐러가 열네 살 되던 해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으나 그날 밤 뮐러는 친구들과 새벽 2시까지 카드놀이를 했다. 그다음 날도 술집에 들러 술을 마시며 놀았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 뮐러에게 큰 충격이 아니었다. 어린 뮐러는 눈앞에 펼쳐지는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고만 했다.

뮐러가 열여섯 살 때, 거짓 행세와 거짓말 때문에 1년간 감옥에서 절도범, 살인범과 같이 생활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뮐러의 아버지가 피해를 보상해주고, 뮐러를 감옥에서 빼내 왔다.

감옥에서 나온 뮐러는 이제까지 방종하며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았다. 왜냐하면, 감옥에서 범죄자가 맞는 최후를 보았기 때문이다. 일단 겉으로나마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정도로 신임을 얻는 생활을 했다. 때로는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특히 교회에서 주의 만찬식에 참석할 때마다 행실을 고쳐보려고 노력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변하게 하시리라 여기며 하나님께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예전과 다름없이 나쁜 행동에 빠졌다.

뮐러의 아버지는 노후 생활을 교회 목사관에서 보내길 원했다. 그래서 뮐러가 목사가 되길 바랐고, 뮐러가 스무 살 때 할례(Halle)대학교에 신학생으로 입학시켰다. 뮐러는 신학교에 입학했는데도 나태하고 게으른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뮐러가 지닌 죄악된 습관과 냉랭한 마음에도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뮐러는 1825년 11월 토요일 오후에 어느 교인 가정에서 열리는 기도 모임에 참석했다. 성경을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모임이었다. 뮐러는 기도 모임에서 이제까지 찾던 보물을 발견한 듯했다.

기도 모임 때, 아프리카 파송 선교사인 카이저 형제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에서 자신이 바라보는 하나님과 선교사가 느끼는 하나님에 대한 감정이 전혀 다름을 깨달았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처음 본 뮐러는 신령한 충격에 빠졌다. 뮐러가 모든 죄악을 즉시 버리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그날 뮐러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쁜 친구들과 사귀던 일을 끊었다. 술집에 가던 발길도 끊었다. 습관적으로 내뱉던 거짓말도 더는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성경을 읽었다. 자주 기도했다. 이웃과 형제들을 사랑하며 올바른 동기를 갖고 교회에 갔다. 친구들이 뮐러를 비웃었지만, 그는 친구들에게 수시로 복음을 증거하기까지 했다.

거듭난 생활을 시작하자, 마귀가 방해했다. 그 당시 뮐러가 신학교를 졸업하려면 2년이 남아 있었다. 뮐러는 선교사가 되겠다고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나이가 들었을 때에 뮐러와 함께 목사관에서 여생을 편하게 보내려고 큰 비용을 들여 공부시켰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아버지는 선교사가 되려는 뮐러에게 아들로 생각지 않겠다고 압박하며 마음을 바꾸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뮐러가 뜻을 굽이지 않자, 생활비와 학비를 모두 끊어버렸다. 뮐러도 아버지에게 도움을 기대하지 않았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 응답으로 뮐러가 생각하던 분량보다 훨씬 풍성하게 채워 주셨다. 이 사건을 계기로 뮐러는 기도의 능력을 깨달았다.

뮐러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1829년에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선교협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데번 항구에서 목회했다. 1834년, 뮐러는 브리스톨로 이주했다. 그 당시 콜레라가 도시 전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뮐러는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는 도시에서 무엇을 할지를 두고 기도했다.

뮐러는 복음을 전파할 ‘성경연구원’을 설립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성경을 무료로 배포하고 교육했다. 또 현지 선교사들을 지원했다. 뮐러는 사람의 도움으로 사업을 확장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는 경영 철칙을 정했다. 7개월 만에 성경전서 482권과 신약성경 520권을 배포했으며, 상당 금액을 현지 선교사들에게 지원했다.

당시 고아들을 수용하던 구빈원에는 아이들이 먹지 못해 해골처럼 말랐거나 병이 들어 퉁퉁 부어 있었다. 고아가 많았던 이유는 전염병인 콜레라 때문이었다.

고아원 사역을 시작한 뮐러는 고아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 기도했다. 기도하지 않으면 ‘생명줄’을 놓친다고 생각했다. 기도할 때 자기 뜻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 뜻을 구했다. 뮐러는 많은 고아를 먹여 살리는 일에 정부나 특정한 부자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대로, 어떤 경우에도 빚을 지지 않고 고아원을 확장했다.

어느 날, 고아원에 아침 식사를 준비할 돈이 없었다. 뮐러는 무릎을 꿇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려고 기도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소낙비로 바뀐 이른 아침에 음식을 가득 실은 마차가 고아원으로 들어섰다. 인근 공장에서 종업원들과 야유회를 계획했으나, 폭우로 취소되자 고아들에게 음식을 보내준 것이다. 뮐러는 고아원을 고아 2050명과 직원이 거처할 시설로 확장했고, 필요에 따라 적시에 채워주시는 체험 속에 65년간 경영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1898년 3월 10일 이른 아침, 뮐러는 지상에서 겪던 수고를 그치고 만왕의 왕을 뵙고자 급히 떠났다. 뮐러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실천했으며, 사람의 생각이나 관습을 초월하고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의지하며 기도했다.

/정리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66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