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그의 생애와 업적(44)] 전쟁 이전, 눈물겨운 노력

등록날짜 [ 2013-12-18 09:06:00 ]

미군 철수 막으려 백방으로 뛰었지만 결국 실패


<사진설명> 일본 도쿄에서 맥아더 장군과 함께(1948년 10월 19일). 북한의 남침을 우려한 이 대통령은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맥아더 장군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북한 정권은 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직후부터 남침을 향한 행보를 본격적으로 이어갔다.

1948년 9월 9일 북한 최고인민위원회는 소련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북한군은 이미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였고 소련이 지령한 대로 움직이면서도 겉으로는 외국 군대가 철수하기를 요구하며 민족적이고 자주적인 모양새를 연출했다. 소련은 즉각 북한이 건넨 제안을 수용했다.

북한과 소련은 동시에 미군에 남한 철수를 요구했다. 자신들이 짠 시나리오대로 진행했다. 문제는 북한과 소련에 장단을 맞추는 자들이 남한에 있었다는 점이다.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인데도 좌파 국회의원들은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1948년 9월, 북한에서 소련군이 철수한 일과 보조를 맞춰 남한에서도 미군 철수 요구가 터져 나왔다. 좌파 국회의원들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내걸었고, 10월 13일에는 좌파 성향 국회의원 40여 명이 미군 철수 안을 제출했다.

소련과 북한 역시 미군 철수 요구를 되풀이했다. 당시 미국 역시 한반도가 지닌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체면을 구기지 않는 모양새로 철수하기를 원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리자 1949년 6월 미군은 남한 땅을 떠났다.

미군 철수는 곧 북한에 남침하라는 초대장이었다. 한반도에서 미군이 떠나자 남북 간에 균형을 이루던 군사력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추는 전쟁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역시 북한이 펼치는 대남 공작 제1순위가 주한 미군 철수라니 군사력 차로 말미암은 전쟁 발발의 위험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승만은 미군 철수를 막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어쩔 수 없이 철수가 진행된 다음에도 한반도에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경우, 미국이 도울 여지를 만들고자 부단히 애썼다. 우리 힘으로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최강 소련의 훈련을 받고 최신식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북괴군을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역사 초기를 되짚어보면, 나라는 작았지만 대통령은 컸다. 그 당시 국력과 무관하게 이승만은 세계적인 인물이었다. 이승만이 개인적으로 쌓아올린 인맥이 대한민국에 영향을 끼친 사례가 적지 않다.

그중 한 인물이 맥아더 장군이다. 건국과 전쟁에 이르는 동안, 한미관계 막후에서는 이승만 박사와 맥아더 장군이 맺은 깊은 인간적 관계가 큰 역할을 했다. 맥아더는 대한민국과 이승만에게 언제나 호의적이었다. 두 사람이 쌓아온 인연은 오래되었다. 이승만이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때, 당시 소령이던 맥아더와 친분을 쌓았다. 이승만이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미국인을 모아서 결성한 ‘한국 친우회’에 맥아더의 장인 역시 회원으로 속했다.
 
맥아더의 아버지인 아서 맥아더 장군은 1905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임명한 특별군사사찰 단장으로 러일 전쟁을 관전하고자 한반도와 중국 북부에 파견되었다. 이때 청년 맥아더가 동행했고, 그때부터 극동 지역에 관심을 두었으리라 본다. 사령관 자리에 오른 맥아더는 1937년부터 해임되던 1951년까지 15년간 줄곧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머물렀다. 이 기간에 미국에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이승만은 맥아더에게 각별한 호의를 베풀었다. 아서 맥아더 장군이 19세기 말 조선에 들렀을 때, 고종 황제는 향로를 하사품으로 선물했다. 하지만 맥아더는 2차 대전 당시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향로를 잃어버렸다. 아버지가 남긴 유품이자 대한제국 황제가 하사한 가보를 잃자 맥아더는 매우 애석해했다.

그 정보를 입수한 이승만 대통령은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결국 맥아더의 아버지가 받았던 선물과 같은 종류의 향로를 찾아냈다. 이어 건국의 날 서울에 온 맥아더에게 바로 그 동제 향로를 선물했다. 각별한 관심이 담긴 특별한 선물이었다. 맥아더가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했을지 눈에 선하다.

대통령은 동제 향로 1좌를, 국무총리는 순은제 신선로 1좌를, 조선 왕가의 순종비 윤씨는 청옥 화병을 각각 예물로 맥아더 부부에게 선사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가던 맥아더는 절친한 친구 이승만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

“만일 한국이 공산주의자에게 침공을 받는다면, 나는 캘리포니아를 방위하듯 한국을 방위하겠네.”

훗날 맥아더는 자신이 약속한 말대로 우리나라를 구하려 싸웠다. <계속>

자료제공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 (이호 목사 저)

위 글은 교회신문 <36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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