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그의 생애와 업적(25)] 소련은 점점 한반도를 장악하는데…

등록날짜 [ 2013-07-23 09:28:40 ]

공산화가 될 수밖에 없는 나라를 민주주의로 바꾸려 동분서주


<사진설명> 한미협의회가 임정승인을 촉구하기 위해 1944년 8월 29일 뉴욕 에스토리아 호텔에 마련한 만찬회.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마자, 이승만은 미국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 승인을 요청했다. 이승만은 2차 대전이 끝난 뒤에 소련이 한반도를 점령하여 공산화할 사태를 염려했다. 그전에 미국이 임시 정부를 승인해야 소련의 야욕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승만의 예측은 몇 수 앞을 내다본 고수의 시각이었다. 훗날 이 점 역시 옳았다고 판명되었다. 하지만 계속 예상이 맞아들어 가는데도, 이승만은 여전히 냉대받고 무시당했다.

1942년 1월 2일, 이승만은 미국 국무부를 방문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 승인을 요청했다. 소련은 오래전부터 한반도의 부동항(不凍港)을 얻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미국이 먼저 손을 써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승인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이 패망한 뒤 소련이 끼어들어 한반도를 반드시 강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 소속 실무 책임자 앨저 히스는 임시 정부 승인을 거절했다. 한국 정부의 독립을 승인하면, 동북아시아에 미국과 이해관계가 있는 소련을 자극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장차 소련이 침략하리라는 이승만의 지적을 듣고 힐스는 오히려 화를 냈다.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미국의 동맹국인 소련을 비난하는 언사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히스를 만난 후, 이승만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젊은이가 판단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미국 국무부 심장부에까지 침투했다고 확신했다.

앨저 히스는 훗날 얄타 회담에서 각종 기밀을 소련 측에 넘겨주는 스파이 노릇을 했다.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미국 고위직에 소련 간첩이 침투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히스가 이승만을 욕할 만했다. 이승만은 앨저 히스에게 거절당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임시 정부 승인을 요구했다. 1942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침공한 지 1년을 맞아 고델 헐 미국 국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국이 한국 임시 정부를 승인하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한반도에 공산정권이 수립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한반도가 해방되는 그날까지 임시 정부 승인을 거부했다. 거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다른 망명 정부들을 고려해야 했다. 임시 정부 승인은 한국뿐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였다. 당시 미국이 관여하던 유럽 내 망명 정부는 무려 8개였다. 그중에서 어느 곳은 승인하고 어느 곳은 승인하지 않으면 거센 반발을 살 게 뻔했다.

따라서 미국은 모든 망명 정부에 통용할 일반 원칙을 세웠다. 국가와 정부 건설에 앞서서 국민 투표가 있어야 한다는 루스벨트 원칙을 내세웠다. 망명 정부가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받더라도 국민투표가 있기 전에는 연합국이 이를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둘째는 정세 판단 상 미국은 소련과 관계를 잘 다져 놔야 했다. 미국이 전쟁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일본과 벌이는 싸움에 소련을 끌어들여야 했다. 그리고 소련이 참전한 대가로 영토를 확장하려 한다면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당시 미국 정부로서는 일본이 패망한 후에 소련이 한반도를 장악한다는 시나리오 역시 불가피한 일로 보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소련이 동북아 대륙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결과는 분명해 보였다.

아시아에 정통한 맥아더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맥아더는 미국이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 전에 소련도 북쪽에서 일본을 협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차피 소련이 만주와 한국을 장악할 테니, 영토를 얻는 대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점을 희대의 경륜가였던 이승만이 꿰뚫어 보았다. 미국이 자기네들의 전쟁 편의를 도모하려고 한국을 별생각 없이 소련에 넘겨주려는 상황이 아닌지, 혹시 한국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미국과 소련 사이에 협상이 오가지는 않았는지, 이승만은 극도로 불안해하며 염려했다. 자신의 조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흥정 대상이 되는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

이승만은 불안과 염려를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했다. 끊임없이 따지고 항의하는 여러 가지 행동에 미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로도 이승만은 계속해서 미국을 귀찮게 했고, 괴롭게 했고,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우리 역사상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가장 많은 미국 고위 관료를 괴롭힌 인물이 이승만이다. 그런 그를 미국의 앞잡이로 매도하니, 어이없을 만큼 지나친 왜곡이다. <계속>

자료제공 |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이호 목사 저)

위 글은 교회신문 <34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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