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그의 생애와 업적(28)] 구체적인 준비 없이 한반도로 이동

등록날짜 [ 2013-08-13 09:14:32 ]

해방 직후만 해도 한국은 미국에게 그리 중요치 않았다

38선 이남으로 진주한 미군의 상황에 관해, 칼 버거 기자의 논평이 적절하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미국 정부의 구체적이고 자세한 준비 없이 태평양 지구에서 미군이 점령한 유일한 지역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준비도 없이 남한을 떠맡은 미국 책임자는 하지 장군이었다. 하지 장군은 태평양 전쟁 기간에 전투에 17번이나 앞장섰다. 부하들과 위험과 고난을 함께한 용장이었다.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솔직하고 용감한 군인이 복잡하게 얽힌 정치 상황을 풀어가는 일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사진설명> 하지 장군.

하지 장군이 지휘한 오키나와 주둔 24군단이 남한을 접수할 주력 부대로 선정된 이유는 오로지 지리적인 접근성 때문이었다. 하지 장군에게 전달된 명령은 ‘최대한 빨리’ 부대를 이동하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본국 정부나 도쿄에 있는 맥아더 사령부에서 아무런 세부 지침이 내려오지 않은 상태에서 하지 장군은 많은 정책을 스스로, 즉흥적으로 입안해야 했다. 훗날 하지 장군은 한국에서 경험한 바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미 군정 최고 책임자로서 내가 맡은 직책은 지금까지 맡은 직책들 가운데 최악의 직무였다. 만약 내가 정부의 명령을 받지 않는 민간인 신분이었다면, 1년에 100만 달러를 준다 해도 그 직책을 절대로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악의 직무는 하지 장군이 내린 포로령이다.

“조선 인민 제군이여, 오늘 남조선 지역에 있는 일본군이 항복했다. 제군은 연합군 총사령관이 장차 발할 명령을 엄숙히 지켜라. 제군은 평화를 유지하며 정직한 행동을 하여라. 만약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든지, 또는 혼란 상태를 일으킨다면 즉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수단을 취하겠노라. 이미 확정된 항복 조건을 이행함에는 현 행정기구를 사용할 필요가 있노라.”

소련 군정의 성명서와 미 군정의 성명서를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소련군은 자유와 행복과 보호를 약속했다. 하지만 미군은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준다는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다. 소련은 일제를 배척하겠다고 말했지만 미국은 현재 행정기구를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선포했다.

하지 장군과 미 군정이 얼마나 한국 상황에 무지했고 정치적 감각이 무뎠는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소련군의 성명서를 그대로 비교하면서,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군은 해방군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성명서에 쓰인 말과 실제로 벌어진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미군이 그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분명 있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하지 장군에게 덮어씌우는 일은 불공평하다. 하지 장군은 본인이 준비한 적도 없고 계획한 바도 없는 엉뚱한 임무를 맡아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을 뿐이다. 문제는 한국을 대하는 미국의 견해였다. 트루먼 행정부 고위 정책 수립가들에게 한국 문제는 여전히 뒷전으로 밀려 마치 의붓자식처럼 취급되었다.

한국에 무관심한 미국의 처사는 여러 가지로 확인된다. 2차 대전 발발 당시에 미국 병사 중에서 적어도 7000명이 일본어 과정을 집중적으로 수료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에 최초로 들어왔던 미군 장교 중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남한은 “미군 보급품의 종착점”이라고 불렸다. 로버트 올리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곳 군정 당국자 전체를 통하여 들리는 말은 ‘한국은 우선순위 계통 맨 끝에 붙어 있다’는 것이다. 인원 배치, 보급품, 정책 조정 등 모든 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일본인이나 군정 당국자들을 위해 일단 도쿄에서 알맹이를 빼고 겨우 남은 찌꺼기나 다른 데서 필요치 않은 물품이 한국까지 온다.”

일본 주둔 미군에 행한 최악의 징계는 한국 파견이었다. 상관들은 부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런 말로 위협했다.
 
“근무가 불량하면 한국에 보내 버리겠다!”

이처럼 미국에 한국은 경술국치 때나 해방 때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우리 측에서 보면 화가 나지만,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특별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도 않고 한국에서 이득을 취할 거리도 없었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 중 하나이기에 그네들에게는 관심을 둘 이유도 없었다.

한국이 대단히 중요한 지역임을 설득해서 마침내 한국을 돕고 한국을 위해 싸우게 만드는 일은,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과제였다. 이승만이 아니고는 그렇게 힘들고도 중요한 일을  감당할 인물이 없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4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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