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10-15 13:19:38 ]
유엔이 결의한 대로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중국, 엘살바도르, 프랑스, 필리핀, 인도, 시리아 8개국 대표가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을 결성했다. 유엔 위원단은 1948년 1월 8일 한국에 입국했다. 위원단은 남한과 북한 전 지역을 대상으로 자유선거를 실시하여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정권을 수립한 북한은 유엔 위원단의 방문을 거부했다. 결국 2월 26일 유엔 소총회는 유엔이 감사할 수 있는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의했다. 이 결의에 따라 5월 10일, 우리 역사상 최초로 자유선거를 실시했다.
총선거 시행에 앞서 특이한 조항을 선거법에 넣었다. 친일파 배제 조항이다. 제2조는 ①일본 정부에 작위를 받은 자 ②일본 제국의회 의원을 지낸 자에게는 선거권이 없다고 규정했다.
제3조는 ①일제시대에 판임관 이상 경찰관과 헌병보 또는 고등경찰직을 지냈거나 그 밀정 행위를 한 자 ②일제시대에 중추원 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를 지낸 자 ③일제시대에 부 또는 도 자문 혹은 결의기관 의원이던 자 ④일제시대에 고등관으로서 3등급 이상 지위를 맡은 자 또는 훈(勳) 7등 이상을 받은 자(단, 기술관과 교육자는 제외함)는 피선거권이 없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친일파는 아예 선거에 출마조차 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을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고 깎아내리는 흑색선전의 허구성이 여기에서 증명된다.
사진설명-대한민국 건국을 알리는 역사적인 5.10 선거 투표.
서울 종로 을구 이화동 제1투표소에서 이승만이 투표를 하고 있다(1948년 5월 10일).
좌익이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선거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국인은 5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투표해서 지도자를 선출하는 역사적인 행위에 참가했다. 미국 언론은 90%가 넘는 투표율을 들어 대한민국 총선거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5.10총선거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선진성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첫 선거는 성별(性別) 또는 재산의 차별 없이 일정 나이 이상인 성인이라면 모두 참여하는 보통선거였다. 지금에야 당연한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보통선거가 드문 일이라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은 투표권이 확대되는 과정과 맞물린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영국은 1754년 인구 800만 중 3.5%인 귀족만 투표권을 행사했다. 100년 후인 1884년에 세금을 내는 모든 남자가 투표권을 획득했다. 1918년에는 세금과 관계없이 모든 남자가 투표할 수 있었다. 1928년에야 비로소 여자에게 투표권을 줬다. 전 국민이 차별 없이 투표권을 행사하기까지 무려 170여 년이 걸렸다.
프랑스 역시 1945년에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줬다. 민주주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미국에서 흑인이 실제로 투표권을 행사한 시기는 1965년이었다. 스위스에서는 1971년에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1948년 당시 선진국이던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캐나다에서도 보통 선거권에 제약이 붙었다. 세계 최빈국 수준이던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선진국에서조차 보통선거가 드물었다.
영국에서 170년 걸리고 미국에서 190여 년 걸린, 차별 없는 보통 선거권을 우리는 건국할 때부터 행사했다. 1948년을 기점으로 하면 프랑스와 비슷하고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캐나다, 미국, 스위스보다 앞섰다. 이는 후발 주자로서 단숨에 선발 주자들을 따라잡은 ‘압축 민주화’라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나라가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린 과정을 ‘한방’에 해결해 버린 데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네들이 시행착오를 겪은 역사를 그대로 반복할 이유는 없다. 부작용을 없애려고 영국만큼 시간을 쏟으면 우리나라는 2120년쯤에 겨우 보통선거를 할 수 있다.
5.10 선거에서 국회의원 200명이 당선되었다. 그중에서 국회의장을 선출할 때, 하지 장군이 엉뚱한 제안을 했다. 투표 없이 최고령인 78세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지명하자고 했다. 다분히 이승만을 의식한 제안이었다. 물론, 이 어이없는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월 31일에 투표한 결과 189대8로, 이승만을 초대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계속>
/자료제공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이호 목사 저)
위 글은 교회신문 <35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