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1-07 09:49:22 ]
최후 결전을 다짐할 때도, 서울 수복 후에도 어김없이 기도해
<사진설명> 서울 중앙청에서 열린 서울 수복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맥아더 장군. 단상에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앉아 있다(1950년 9월 29일).
1950년 11월 29일은 참으로 암담한 시간이었다. 연합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통일이 눈앞에 다가오는 듯했지만, 중공군 참전으로 또다시 후퇴해야 했다. 참모총장에게 우울한 전황을 보고받은 이승만은 뜻밖의 말을 했다.
“중공군이 지금 침략한 것은 하나님께서 한국을 구하려는 방법인지 모른다.”
침략군을 하나님의 축복이라니? 더군다나 통일 직전에 후퇴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를 축복으로 보다니? 정말 이상하게 들릴 말이다.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일 소련이 한국 국경 너머로 후퇴하게 되었다면 국제 연합군 부대는 장비와 더불어 조만간 철수를 서둘러야 했을 겁니다. 한국군의 힘만으로는 기나긴 국경선을 방어하기엔 무척 힘겨웠을 것입니다.”
이승만은 말을 이었다.
“만약 시간이 흘러 미국 국민의 분노가 가라앉고 공산당이 평화 선전 공세를 펴서 국민이 잠잠해진 틈을 타서 중공군이 밀어닥친다면, 이들의 압도적인 병력과 장비, 현대적인 항공 지원, 그리고 한국의 해안선을 둘러싼 해군 작전들을 저지하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현재 해안선을 봉쇄하고 있는 함선들을 철수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소련은 이미 한국을 지배할 계획이었고, 북한군 실패가 소련의 계획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북한이 중공군을 끌어들인 것이 국제 연합군이 철수한 뒤에 발생하는 것보다 우리에게는 낫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가 닥칠지 모르나 민주주의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중공군은 참전하게 되어 있었다. 사전에 소련과도, 김일성과도 합의한 사항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압록강까지 모두 점령하여 전쟁이 끝나서 유엔군이 철수한 뒤에 중공군이 쳐내려 왔다면, 한반도는 적화를 면할 길이 없게 된다. 그 당시 우리 국방력으로는 두만강과 압록강의 긴 국경선을 지키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6·25전쟁 당시 해안선을 방어하는 유엔군 함대가 물러간 다음에는 무방비 상태에 놓일 것이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 만주에 망명 정부를 수립한 북한 공산당이 중공이나 소련과 합세하여 계속해서 침투 작전을 벌이고 국내 게릴라들도 합세한 가운데 중공군이 참전했다면, 한반도가 공산화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해 보였다.
그때 가서 또다시 유엔군이 참전한다든지, 철수한 미군이 다시 들어온다는 일도 쉽지는 않다. 당시는 한미 동맹이나 상호 방위조약이 맺어지지 않은 시점이고, 맺어질 가능성도 높지 않았다. 따라서 유엔군 철수 이후 미군이 돕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므로 어차피 침공할 중공군이라면, 유엔군이 있을 때 쳐들어오는 편이 낫다는 것이 이승만의 논리였다.
그 후 역사는 이승만의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을 실어 주었다. 중공군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 국방력은 크게 증강했다. 긴 전쟁에 지친 미국은 서둘러 전쟁을 끝내려 했고, 이승만은 그 발목을 잡아서 한미 동맹을 성사시켰다. 한미 동맹이 있었기에 중공도, 소련도, 북한도 또다시 전쟁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보호하실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점은 전쟁 중에서도 중요한 순간마다 ‘기도’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9·28서울 수복 때도 마찬가지였다.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마침내 연합군은 서울을 탈환했다. 찌그러지고 부서진 중앙청에서 서울 수복을 기념하는 의식이 진행됐다.
수복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전쟁 중이었다. 멀리서는 포성과 총소리가 들려왔다. 서울 시내에는 게릴라들이 숨어서 기습 작전을 벌였다. 그래도 정부와 연합군 요인들은 수도를 다시 탈환했다는 감격에 벅차 있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단연 맥아더였다. 맥아더는 미군 장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 상륙 작전을 고집해 성공했다. 맥아더가 서울에 진입하기 전, 미국에서는 되찾은 서울을 한국 정부에 돌려주지 않을 방법을 검토했다. 골치 아픈 이승만에게 서울을 넘기지 말고, 유엔군이 점령했으니 유엔군이 관할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하지만 맥아더는 단호하게 이승만 편을 들었다. 한국 수도는 마땅히 돌려주어야 한다는 견해였다. 기념식에서 맥아더 장군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서울의 기능과 권한을 한국 정부에 돌려준다는 요지로 연설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를 치하하며 훈장을 수여했다. 그날 의식은 주기도문으로 마무리지었다. 맥아더 장군은 엄숙히 주기도문으로 기도했고, 참석자 모두 따라 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6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