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0-04 11:44:51 ]
뮤지컬 공연 중에도 무대 뒤는 전쟁터…1분 동안 ‘변신 완료’
연극·댄싱·행사·YBS 뉴스 어디에나 분장의 손길 꼭 필요해
<사진설명> 안디옥성전 뒤 분장실에서 헤어·메이크업 팀
'그날' 공연 시작 세 시간 전이다. 까만 메이크업 상자를 들고 대성전을 향하는 발걸음에는 세 시간도 그다지 여유가 없는 듯 다급하기만 하다. 손에 든 작은 상자 안에는 수많은 인물 캐릭터가 만들어져 나온다. 우는 자에게 비통함을, 웃는 자에게 천진난만함을 더해 줄 신비한 상자.
‘마냥 착한 배우의 얼굴을 악독한 고문장의 얼굴로 만드는 게 오늘의 난관인데….’
강렬한 눈 화장, 인물 성격에 맞는 머리 모양 등 배우에게 새로운 인격을 부여하는 장인(匠人)들이 있다. 교회에서 진행하는 큰 행사나 찬양 콘서트, 뮤지컬 ‘그날’ 같은 작품들 그리고 YBS 뉴스까지 교회 각 기관에서 분장을 요청할 때면 어디든 달려가 충성하는 헤어.메이크업 팀이다.
무대 뒤 숨은 공로자
헤어드라이어가 더운 바람을 쉴 새 없이 내뿜고, 헤어 담당자들의 손길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면서 배우의 개성을 일궈간다. 메이크업 충성자들도 바쁘게 다니는 배우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머리나 눈 화장을 꼼꼼히 수정해준다. 또 분장이 끝나면 “예쁘다. 멋지다”라며 배우들에게 힘이 되는 칭찬도 잊지 않는다.
인물 분장의 절정은 악역 캐릭터다. 눈 화장 실력이 정교하고 뛰어나 마귀나 고문하는 역할 등 사악한 인물 화장을 주로 담당한다는 김나영 자매는 복잡한 심경이다.
“처음에는 ‘잘해서 시키는구나’ 생각하며 내심 뿌듯했는데, 아예 악역 분장 담당이 되니까 마음이 편치가 않아요. 악한 이미지를 만들어서 남의 얼굴에 새겨주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도 주님께서 맡겨주셨으니 묵묵히 충성할 거예요.”
이처럼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 뮤지컬을 어느새 3년간 공연하면서 배역마다 전속으로 꾸며주는 담당자들이 생겼다. 김은영 집사도 ‘그날’ 배역 중 권사 역을 맡은 자매가 매번 자신에게 분장하러 와줘서 고맙다며 배우들 열정에 은혜 받는 기쁨을 전한다.
“등장할 차례까지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모습, 배역을 마치고도 은혜 받아 우는 모습 등 이렇게 은혜가 충만한 공간에서 일하는 것은 저희 팀만이 누리는 복일 거예요.”
메이크업과 헤어를 하는 데는 한 명당 보통 10~15분이 걸린다. 분장해주는 동안 배우와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중보기도제목까지 서로 나누며 좋은 동역자가 된다. 또 배우가 무대에 오르기 전에 긴장을 풀어주고 역할에 몰입하도록 돕는다.
“오히려 배우들이 저희를 많이 배려해줘서 편안하게 충성을 해요. 한번은 ‘그날’ 팀 댄서에게 메이크업을 계속해도 화장이 잘 안 먹는 거에요. 시간은 촉박한데 제가 조급해 보였는지 ‘온종일 화장해야 할 거 같죠?’ 하면서 편하게 대해주던 기억이 납니다.” (이지연 자매)
박윤하 집사는 약 15년 전 서영애 집사가 교회 분장팀을 시작한 이래 항상 옆에서 함께해준 동역자고, 주로 정 목사 역이나 남자 배우들의 분장을 담당하고 있다.
“항상 배우들 심정을 느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메이크업하는 중에 보완할 연기에 대해 이야기도 해주고, ‘요새 어머니 교회 잘 나오시니?’ 하며 걱정거리나 중보기도 제목도 들어주고 그럽니다. 큰 힘은 못 되어도 누나처럼 엄마처럼 챙겨줄 수 있는 것이 큰 보람이에요.”
하나님이 손 잡고 그려주세요
드디어 공연 시작. “언제쯤 오실까” 주제곡을 부르는 마리아(에스더 역) 얼굴을 보면서 분장팀 전원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자신이 낳은 자식을 바라보듯 엄마 같은 눈은 어느새 촉촉해진다.
“주로 마리아 언니 메이크업을 맡다 보니까, 에스더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긴장돼요. ‘속눈썹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입술 톤은 어떻게 비칠까’ 등 다음에는 더 잘 해줘야지 하면서 뚫어지게 쳐다보죠.” (강원혜 자매)
“머리 한 번 눌러주세요.” 격렬한 춤사위를 벌이고 들어온 안무팀의 흐트러진 머리를 고정해주며 땀과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긴박하게 화장을 고쳐주면서도 배우와 분장팀 모두 입술에선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도 벌어지기 때문이다. 헤어숍에서 실력 있는 디자이너로 대우받던 윤은진 집사도 충성 초기에는 자기 의를 드러내며 일을 했다고 회상한다.
“세세한 머리 스타일도 저희에게는 나름 작품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상처받고 예민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러나 은혜 받고 깨달으면서 많이 변했지요. 한껏 공들여서 해 놓은 머리를 배우가 도로 눌러 망쳐놓는 것을 봤을 때 예전 같으면 발끈했겠지만, 지금은 그냥 웃어넘겨 지더라고요. ‘아! 이제는 내가 진짜 감사로 충성하는구나’ 생각하며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김민경 집사도 아찔했던 첫 충성이 기억난다. 헤어 자격증이 있어서 미용으로야 얼마든지 잘할 수 있지만, 배역에 맡는 헤어스타일을 창조해내는 것은 그것과 별개의 문제였다.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 리허설까지 쫓아가서 보고 밤새 인터넷 찾고 기도도 하고. 이건 주의 일이니 망치면 안 되잖아요, ‘머리가 잘 안 나와서 배우가 배역을 소화 못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미치니까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되더라고요.”
언제 어디서나 한달음에
극중에서 에스더가 고문을 받으며 뮤지컬이 끝나갈 무렵 메이크업 팀은 분장도구를 손에 쥐고 무대 뒤로 발 빠르게 이동한다. 마지막 곡에서는 정 목사나 에스더 모두 들림받으며 말끔한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범벅이 된 고문받은 모습을 지우는 데 할당된 시간은 불과 1분이에요. 배우 한 사람에게 여러 충성자가 붙어 피 분장을 지우고…. 말 그대로 전쟁터죠. 그래도 이번 뮤지컬을 기점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어느새 다 저물어가네요.” (서영애 집사)
서영애 집사의 말처럼 분장팀은 동.하계성회 그리고 여러 행사 등 바빴던 한해 일정을 마무리하며 확실한 꿈과 비전을 달라고 기도하는 중이다. 분장팀장으로 여기까지 오도록 이끄신 것도 그리고 기도하게 하신 것도 다 하나님이시라는 서 집사는 내년을 바라본다.
“기도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분장팀이 하나의 기관으로 만들어지고 미용선교회를 조직하는 것입니다. 분장 기술도 공유하고 충성하면서 받은 은혜도 나누면서 달란트를 영혼 살리는 데에 마음껏 쓰임받고 싶어요.” (서영애 집사)
서 집사는 이어 갑작스레 충성하러 와달라고 부탁해도 항상 “예” 하고 응답해주는 팀원들에게 감사하고, 타 기관에 있지만 분장 충성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는 여러 성도에게도 감사의 말을 잊지 않는다.
서 집사는 “모든 팀원들과 충성자들이 항상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겸손히 충성했으면 한다며 당부의 말을 전한다. 한동안 교회 내에 큰 행사는 없을 듯해서 한숨 돌려보지만, 또 충성할 기회를 사모하고 기다린다는 분장팀원들의 모습이 그 어떤 배우들보다 더 아름답고 빛나 보인다.
위 글은 교회신문 <26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