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6-12 11:48:57 ]
성가대 악기마다 악보 다 달라 일일이 관리 필요
편곡자와 악단 사이 중재 역할 등 섬김 직분 담당
<사진설명> 관현악단 악보계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들이다. 왼쪽부터 김성은(클라리넷), 유민호(오보에), 홍승원(첼로).
주일 예배를 마치면 성가대석 앞 관현악단 자리가 부산하다. 더블베이스 같은 큰 악기들이 빠져나가고 관현악단원이 하나둘 이동하면, 보면대에 남은 악보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이들이 있다.
“높은 음역 악기 악보부터 섞이지 않게 차례차례 정리해 주세요. 다음에 이 곡 연주할 때도 악기별로 보던 악보를 그대로 놔줘야 하니까….”
올해 처음 악보계를 맡은 유민호 자매의 목소리에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털털한 성격인 저와 달리 다른 악보계 충성자분들이 꼼꼼하게 해주세요” 하는 말처럼, 음표마다 강세와 느낌, 박자가 다른 마흔 명가량인 관현악단원의 악보를 세심하게 정리하고 관리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런 세심한 섬김이 관현악단 사역에 귀중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찬양을 연주하기까지
연세중앙교회 관현악단은 근 1년 사이 많은 부흥을 일궜다. 악기 종류나 실력이 풍성해진 것은 물론, 올 들어 수양관 성가대 찬양, 작은 음악회, 군부대 집회, 한마음 체육대회 연주 등 다양한 주의 일에도 역량 있게 쓰임받았다.
여러 행사에서 연주하려면 연습을 해야 하고, 그 연습을 하려면 악보가 있어야 한다. 글로리아성가대 같은 경우 대개 매 주일 새로운 찬양을 한다. 곡이 정해지면 글로리아성가대 편곡자는 눈코 뜰 새 없이 관현악단 4파트 15종 악기의 악보를 일일이 만든다.
성가대원이 노래할 때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4부 합창이어도 하나의 악보에 모든 파트를 담을 수 있다. 그러나 관현악은 악기마다 기준음이 다르고 음색이 다르다. 그래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색소폰 같은 목관악기, 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 같은 금관악기, 팀파니, 스네어드럼, 베이스드럼 같은 타악기,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같은 현악기 등 각 파트마다 완전히 다른 악보로 연주한다.
각 악기의 연주가 섞여서 한 곡을 완성하는 복잡한 작업을 하느라 성가대 편곡자들은 거의 밤잠을 못 이룬 채 악보 만들기에 돌입한다. 또 연주자들은 새로운 곡을 연주할 때 조금이라도 연습하려고 조바심을 낸다. 미리미리 편곡을 마친 악보가 나와야 준비도 하고 온전한 연주를 할 수 있는데, 교회 행사나 일정이 항상 짜인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갑작스레 일정이 변경되기도 해서 연주자들은 서둘러 악보를 받고 싶어 애를 태운다.
이런 편곡자와 연주자 중간에서 악보를 전달하고 양쪽 충성자들을 조율하며 섬기는 것이 악보계의 역할이다. 편곡자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면, 악보계는 그것을 정성스레 대접하고 맛 감정까지 받고, 뒷정리하는 일도 맡는다.
감사예배나 칸타타 같은 성가대 행사가 있으면 서곡, 성가곡, 솔로곡 등 악기마다 악보 8~10개 정도 악보가 나오기에 관리할 악보 분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바이올린 파트만도 퍼스트와 세컨드로 구분하고 퍼스트를 다시 1, 2분단으로, 세컨드를 1~4분단으로 나눌 정도로 악보 관리는 복잡하다. 또 자칫 편곡 버전이 다른 악보를 주면 불협화음이 일어나기에 찬양 때마다 긴장한다.
사람 간의 조율자
현재 악보계는 목관악기에 김성은 자매, 금관.타악기에 임육영 집사, 현악기에 홍승원, 정순용 자매가 파트를 나눠서 맡고 있다. 찬양에 들어가기 전 예배마다 바뀌는 찬송가나 성가곡 악보를 악보집에 끼워놓고 다시 회수하는데, 이렇게 많은 악보를 관리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 관계라고 입을 모은다.
악보계는 편곡자가 편곡을 마치는 대로 악보를 인쇄해서 연주자가 조금이라도 더 연습하도록 신속히 전달한다. 그리고 음이 안 맞거나 잘못 인쇄한 부분이 있으면 연주자는 악보계에게 문의한다. 그러면 악보계는 다시 편곡자에게 가서 확인하고 수정한 악보를 다시 전한다.
1차로 편곡한 악보가 나오면, 40여 명 되는 단원이 여기저기서 질문을 쏟아낸다. 그 질문에 일일이 설명해주고 중재하다 보면 지치는 일이 허다하지만, 주님처럼 섬기겠다는 마음이 있기에 감당하고 있다. 단순히 악보만 관리하는 게 아니라, 관현악단원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조율하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찬양할 곡이 갑자기 바뀌어서 악보가 늦게 나오면, 연주자들은 속이 타는 마음을 악보계에게 쏟아낸다. 그러나 전체 곡을 구성하고, 없는 리듬도 만들어 내는 등 창조의 아픔을 겪는 편곡자를 옆에서 보기에 악보계의 중간 역할이 중요하다. 연주자들의 속상해하는 말도 털털하게 다 받아주고 편곡자들이 편안하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기다린다.
양측 처지를 충분히 헤아려서 중재해야 하기에 기도할 수밖에 없다고. 자기를 버리는 훈련의 자리에 있어 감사하다는 그들이다.
섬기는 중에 은혜도 넘쳐
악보계 충성이 체계를 잡는 데는 많은 직분자의 수고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오소현 자매(현 주일학교 초등부 교사)는 작년까지 만 3년 동안 대예배 회중찬양부터 각 성가대곡을 분류, 정리하는 데 기본 체계를 닦아놨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예배 때 사용하는 기도송, 헌금송, 주기도문 등 곡을 악기별로 정리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 달간 고생하긴 했어도 악보 두 장에 모든 곡을 담아 몇 년째 사용하고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죠. 외부에서 객원 연주자가 와도 그 악보 한 장만 내주면 편하게 연주할 수 있어서 보람이 있답니다.”(오소현 자매)
그리고 대예배 때 부르는 찬송가 곡 중에서 즐겨 부르는 100여 곡을 관현악단 악기로 연주할 수 있게 틈틈이 악보를 만들어 두었다. 이러한 수고가 있었기에 현재 악보계 충성자들도 일에만 치이지 않고 은혜 받으며 충성할 수 있다.
“악보계 직분을 맡은 주일 첫 아침에 오케스트라 단원보다 일찍 와서 악보를 배치하는 중에 ‘내가 이제껏 찬양한다면서 섬김만 받았지 내가 섬기지는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셨어요. 그때 회개도 되면서 비록 작은 충성이지만 악보계를 통해 관현악단 내에서 섬길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유민호 자매)
악보계 충성자들은 사람도 많이 만나야 하고 충성량도 많지만, 항상 웃으며 온유하게 직분을 수행한다. 매주 찬양을 하면서 자아가 죽는 일이 거듭된다. 그래서 악보만 담당하는 직분임에도 “오늘 어떤 단복 입어야 해?” 하며 시시콜콜한 질문도 관현악 단원들에게 끊임없이 들어온다. ‘우리 악보계들도 악보 외에는 아는 게 별로 없는데….’ 그만큼 악보계 충성자들이 겸손과 온유함으로 섬기기에 단원들도 편안하게 대하는 것이리라.
관현악단이 부흥하고 많이 쓰임받는 것도 연주자들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고 부지런히 섬기는 이들이 있어서가 아닐런지. 더 많은 주의 일에 쓰임받을 관현악단과 그 안에서 묵묵히 충성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의 중보가 필요함을 느낀다.
/오정현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29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