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보혈의 능력

등록날짜 [ 2004-05-20 11:00:51 ]

나는 1939년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안은 조상 대대로 불도가 센 집안이었는데 부모님은 해마다 농사 지어 가장 좋은 것은 먼저 절에 가지고 가곤 했다. 처녀시절엔 교회에 무척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무서워 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중매가 들어왔을 때, 신랑 될 사람의 집안은 예수 믿는다는 중매장이의 말에 그 집으로 시집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막상 시집가서 보니 중매장이 말과는 반대로 친정보다 불도가 더 센 집안이었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눈에 뭔가가 보이는 것처럼 혼자서 하루종일 중얼중얼거리곤 했다.

점쟁이는 칠성줄 타고 났으니 신을 받아야 산다고 했지만…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나는 먹기만 하면 토하는 증상이 있어 몇달씩이나 묽은 죽 한 모금, 미음 한 수저 제대로 먹지 못했다. 바싹 말라 곧 죽을 것 같은 몰골에 거동도 못하고 여러 해를 고생했다. 막네딸 귀옥이를 출산하고 나서는 더욱 증세가 심해서 거의 일년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갓난아이가 젖배도 많이 골았다. 그런데 그렇게 몇 달씩 물 한모금 못 먹었는데도 죽지도 않았고, 걸을 때는 남들이 따라 오지 못할 만큼 걸음이 빨랐다. 이렇게 몇 년을 고생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만난 어떤 점쟁이가 나를 보더니 “당신은 칠성줄을 타고 났으니 죽은 시어머니 신을 받아야 살 수 있고 안 받으면 죽거나 불치의 병이 듭니다.”라고 했다. 난생 처음 그런 말을 들으니 너무나 두렵고 떨렸다. 그렇지만 점쟁이가 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리고 몇년 후 어느 장날, 또 어떤 점쟁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고생을 했으면 깨달아야지. 이미 조상신이 재산 불려주려고 당신에게 왔으니 잘 풀어서 돈 벌고 사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죽으면 죽었지 점쟁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점쟁이 집안은 처음에는 재산이 많아 잘 사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자식들이 다 잘 안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신을 안 풀고 이겨서 자식들에게 이 고생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고 굳은 결심을 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면 신을 뗀다는 말을 듣고 열심히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나는 교회에 왔다갔다만 하면 신이 저절로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교회에 가보니 하품만 나오고 목사님 설교 소리는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회에 나갈 때마다 매번 졸고 예배도 기도도 제대로 못 드리다 보니 교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자식들은 오남매 중에 큰아들만 빼고 넷은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나는 처녀 때 그렇게 교회 가고 싶었던 마음은 어디가고 교회나가는 아이들을 핍박했다. 아이들 아버지는 장사하다가 빚만 남겨놓고 돌아가시고 스물 일곱살에 혼자 되어 오남매를 키우면서 마음이 강퍅해져서인지“예수가 밥먹여 주냐”며 얼마나 아이들을 핍박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핍박을 했는데도 딸 아이 셋은 끝까지 예수를 믿었고, 나에게도 울면서 여러 번 예수 믿으라고 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자궁암 말기 - 수술도 못하게 되자 예수 안 믿은 것 후회해

그러다가 내가 마흔다섯 되던 해 여름이었다. 몸이 나른하고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지만 농약중독인 줄 알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몸이 점점 이상해져서 대구 큰 병원에 갔더니, 뜻밖에도 자궁암이라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길로 서울대학병원과 원자력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했는데, 두 군데에서 똑같이 수술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하면서 방사선 치료하고 약을 먹으라고 했다. 젊어서부터 워낙 많이 굶어서 몸이 너무 쇠약하여 방사선 치료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 때, 신을 받지 않으면 큰 병이 든다던 점쟁이 말이 생각이 났다. 점쟁이 말을 무시하고 신을 섬기지 않았으면 하나님이라도 꼭 붙잡고 섬길 것이지 어쩌자고 육신의 생각으로만 살아오다가 자식들 결혼도 못 시키고 죽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나 싶어 내가 걸어온 인생길이 너무도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 때부터 나는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코에서 소독냄새가 계속 나는 것이었다. 소독약을 뿌린 적도 없는데 왜 자꾸 소독냄새가 나는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진찰을 받아보았는데 놀랍게도 암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하나님이 치료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한참 후에 같은 교회 다니던 집사님이 어느 기도원에서 간절히 기도하던 중에 소독냄새가 나더니 병고침받았다는 것을 간증 하는 것을 듣고 그 때서야 나의 암병도 하나님이 치료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때도 나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지 못했고, 세상 물질에 마음을 쏟아 제대로 주일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앞으로 3년만 더 열심히 일해서 적금을 타면 그 이자를 받아서 헌금도 하고 믿음생활도 잘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2년 후인 1995년에 나는 다시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큰일났다 싶으면서도 그냥 일만 다니다가 1997년 6월에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암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뼈와 피에 다 퍼졌다는 것이다. 7일째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의사는 삼일 이상을 못 넘길 것이라고 하자 자식들이 모여 장례를 의논 했는데, 주일날은 퇴원수속이 안되니 서둘러 퇴원시키자고 의논이 된 모양이었다. 작은아들이 시골로 나를 데려 가려 했지만, 막내딸 귀옥이는 내가 의식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면 하나님 말씀을 전해서 회개시켜 천국가게 할 양으로 제 오빠에게 “시골은 농사철이라 바쁘니 지금 모셔가지 말고 상이 나면 그 때 의논하자”고 설득해서 나는 연세중앙교회에 다니고 있는 막내딸 귀옥이네집으로 옮겨졌다.

안수받는 순간 거미줄 같이 엉킨 것이 빠져 나가고...

내가 귀옥이네 집으로 옮겨진 날 밤, 막내사위는 의식없이 누워있는 나를 업고 연세중앙교회 담임 목사님의 사모님께 갔다. 사모님께서는 의식이 없는 나를 흔드시며 “ 할머니, 왜 이렇게 세상 근심 다 짊어지고 계세요. 얼굴 좀 펴세요” 하시면서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그 순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거미줄 같이 엉킨 것이 쑥 빠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도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해졌다. 그 길로 집으로 오니 어떤 음식이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음식을 청했더니 정말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은 부축을 받고 걸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뼈을 깎는 듯한 통증은 계속 되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혼절했다가 깨어나곤 했다. 정신이 들면, 딸네집 단칸방에 와서 딸 사위 잠도 제대로 못 재우고 병수발 들게 하는가 싶어 내 팔자가 한스러웠다. 이렇게 살아서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천국에 가든 지옥에 가든 빨리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내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귀옥이가 다시 사모님께 기도를 부탁드리러 갔다. 그 때 사모님께서“어머니께서 불평불만만 하시고 기도도 하지 않으시니 어떻게 기도를 해드리겠어요”라고 하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딸에게 너무 아파서 자신도 모르게 어서 죽었으면 한 것인데 그것이 불평불만이고 죄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딸이 하는 말이 “엄마, 지옥이 얼마나 비참한 곳인데요. 육체는 잠시 아픔을 느끼지만 영혼은 영원히 죽지도 않고 아픔을 느껴요. 의사 말대로 엄마는 3일을 못넘기고 죽을 목숨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잘 믿고 천국 가게 하시려고 이렇게 살려 주셨는데 천국이든 지옥이든 어서 죽었으면 하는 마음 품었으니, 그것이 죄요, 불만불평이지 뭐예요. 엄마의 육체의 아픔보다 예수님의 가슴은 더 아파요. 예수님은 지금도 엄마가 천국 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데요”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생 지은 죄 울며 회개하자 주님의 보혈의 은총이

나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예수님께 용서를 빌었다. “주님, 내가 지은 죄 말도 못하게 많고, 내가 내 죄 때문에 이렇게 쓰러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 죄인이 죄인 줄도 모르고 불만불평했으니,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주님은 만백성을 위해서 살찢고 피흘리셨는데 나는 이까짓 뼈 아픈 것도 못 참아서 죽는 것이 낫겠다고 했나 싶어 내 손으로 아픈 다리를 두들기며 몇 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이렇게 통회하며 눈물로 회개하는 순간 마음이 답답한 것도 사라졌다. 그 때부터 평생 살아오면서 지은 죄를 다 찾아서 용서해달라고 했다. 우상숭배한 죄, 절에서 들려오는 불경을 따라 외운 죄, 꿈 속에서 나도 모르게 잡귀 쫓는 경을 외운 죄, 제사 음식 먹은 죄, 너무너무 죄가 많았다. 주님께 죄를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죄인 줄도 모르고 죄지은 것이 너무나 분통이 터졌다. 그래서 다시 주님께 기도했다. “남은 여생 죄짓지 않고 살다가 천국 가게 주님이 항상 지켜주세요”하며 통곡하며 울었다.
그 순간, 귀에 직접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이 뜨거워 지면서 “피, 피, 피”하는 소리가 나를 감싸 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얼른 옆에 있는 찬송가를 펴고 403장을 불렀다. ‘나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 할까’ 나는 밤낮으로 이 찬양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다. 그 후로는 그렇게 아프던 뼈의 통증이 사라졌다. 사모님께서 다시 여러 차례 기도를 해주셨는데, 그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몸에서 새 힘이 솟아났다. 아랫배에 있던 딱딱한 덩어리도 없어졌고, 화병도 사라졌다. 이제는 완전히 나아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게되었다.

내 나이 어느덧 예순 하나이다. 육신으로 보아서는 넘어가는 석양과 같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어린아이와 같을 것이다. 나도 다른 집사님들처럼 믿음이 좋아서 천국에 갈 때 면류관도 받고 싶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께 믿음을 성장 시켜달라고 기도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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