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이었던 어머니 치유받고 불신자 아버지 예수 영접
1987년에 연세중앙교회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하기 전까지, 어머니께서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만큼 악성위궤양, 편두통, 관절통, 고질적인 신장병 등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셨다. 신장이 악화되어 어머니의 생명이 거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즈음에 어머니와 동향이신 윤석전 목사님께서 그 소식을 들으시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머니를 찾아오셨다.
사실, 나는 ‘목사님’이라는 분이 우리 가족을 찾아왔다는 것이 싫어서 병실 밖에 나가 있다가 한참 후에야 다시 들어왔는데, 병실 안에서는 전혀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집에서도 불경 테잎을 틀어놓고 목탁을 치실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아버지와 무슨 행사가 있으면 고사를 지내던 어머니, 두 분 모두 눈물을 연이어 흘리시면서 목사님이 전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 후에 우리 가족은 곧바로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다. 아버지께서는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신 후로는 본교회 집사로서 변함없이 믿음 생활 잘 하시고 계신다. 어머니께서는 당시 연희동 지하성전에서 매일철야기도를 하시며 믿음이 날로 성장하셨고, 또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께 수차례 기도를 받으셔서 수십년 동안 육체를 지배하던 병마들을 물리치시고 육신의 고통없는 ‘보너스’ 인생을 사시게 되었다.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밤중에 자다가 놀란 모습으로 일어나서 무서운 것이 눈에 보인다고 울곤했고, 아이스크림 한 개만 먹어도 밤새 기침하며 잠 못자기도 했는데,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 가지 은사 체험를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
나에게도 주님이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이
이렇게 가족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나는 교회에 등록만 했을 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세상적인 재미를 버리지 못했고, ‘예수’라는 말 자체가 마치 나를 구속하는 덫 같아서 싫기만 했다.
그러다가 교회에 등록한 지 3년이 되던 90년도에 본교회 청년회 하기성회에 참가하여 윤석전 담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가슴깊이 회개하며 기도하던 중, 살아계신 하나님을 뜨겁게 체험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나에게도 주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91년에 창단된 초대 그로리아 예수찬양 선교단에 입단하여 찬양과 연주를 맡게 되었는데, 집회 때마다 목사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들을 기회가 많아지자 고집과 자존심으로 가득찬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집회 때마다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나도 복음을 더 잘 수종들기 위해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때도 여전히 부족한 나를 써 주신 하나님께 감사치 못하고 몇 번이나 목사님을 실망시키며 가슴 아프게 해 드렸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씀과 기도로 이끌어주셨고, 진실한 영감의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셨다.
93년도에 그로리아에서 함께 충성하던 김동경 단원과 결혼했다. 첫딸 아람이를 낳은 후, 다시는 못할 줄 알았던 그로리아 반주를 맡게 되어 뛸 듯이 기뻤다. 모유를 먹였던 때라 옷밖으로 젖이 베어나올 때도 많았지만, 복음을 수종들 수 있다는 기쁨에 행복하기만 했다.
둘째아이 가졌을 때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러다가 뜻밖에 둘째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아이 둘을 키우자면 더 이상 연주로 충성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이 갖게 된 것을 감사하기보다 오히려 불평하고 짜증을 부렸다. 충성에 대한 온전한 중심이 사라지자 육신의 소욕이 나를 지배한 것이다. 그로리아를 그만 둔 후에도 찬양 인도로 바쁜 남편을 내조하기는 커녕, 마음과는 달리 차가운 행동으로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열달을 보냈다.
둘째딸 ‘아인’이가 태어났다. 태중에 있을 때는 복을 빌어주지도 못했으면서 갓 태어난 아이를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인이가 돌이 될 무렵,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손발의 끝이 파랗고 숨을 몰아쉬며 걸음걷기를 싫어하는 것이었다. 병원에 갔더니 심장에 구멍이 네 개나 있다고 하면서 큰 병원에 가서 속히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너무나 놀랍고 떨려 정신이 아득해 지는 것만 같았다.
어린딸의 심장병 위해 금식하며 통곡의 회개하자...
병원과 연락을 취하기로 하고 초대 그로리아로 함께 찬양했던 백수연 자매와 현재 그로리아 리더인 양경욱 전도사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주례자이신 담임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결혼에 부여하신 참된 의미를 바르게 알게 하시려고 부흥회 형식으로 주례사를 하셨는데 그 말씀들이 모두 나에게 하시는 말씀같아 뜨거운 은혜을 받았고 기도중 금식하고 싶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아인이와 함께 목사님께 기도받고 금식을 시작했다.
금식하면서 뒤돌아본 나의 모습은 주님을 섬기는 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인이를 태속에 갖고 스스로 시험에 빠져 주님이 주신 선물인 자녀를 원망했던 나의 모습. 심지어 태속에서 아이가 사라지길 바랬던 추악한 모습. 주의 일에 쓰임받는 남편을 온전히 수종들지 못하고 가슴 아프게 했던 모습.
주님의 음성은 ‘너로 인해 나의 가슴이 얼마나 미어진 줄 아느냐?’고 하시는 것만 같았다. 자식 때문에 겪는 아픔으로 인해 주님이 나 때문에 아프셨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실 때도 그 아픔이 이러하셨겠지! 그분의 아픔에 비하면 억만분지 일도 안되겠지만... 내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고 내줄 수 있는 이 아이를 왜 그렇게 원망했던가?
옆에 누워 고이 잠이 든 아인이의 모습을 보니 찢어지는 아픔이 다시 밀려 와서 통곡하며 회개했다. 주님은 나의 뜨거운 눈물의 회개를 들어주셔서 아인이는 하루가 다르게 손발의 색깔과 숨쉬는 것과 행동 등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할렐루야!
감사 잊고 기도 게을리하자 기다렸다는 듯 아인이가...
그 후, 3년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남편이 신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어 그 뒷바라지 겸 조그마한 아동복 가게를 하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도 게을리하고 하루에 단 한 시간도 주님 위해 살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 되었다.
올해 5월 초, 안일무사한 신앙 태도에 스스로 두려움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인이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금식하고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인이를 건강하게 해주셨던 기억은 송두리째 망각하고 심장전문병원인 부천의 S병원을 찾아갔다. 중증 심장병이라고 했다. 수술을 결심하고 본교회 집사인 시누이에게 수혈 부탁 차 전화를 했다. 시누이는 “김 집사와 자네가 지금까지 『그가 찔림은』 찬양을 한 것이 가식이었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도하자”고 했다. 자기의 문제가 아니라고 쉽게 생각하는 것같아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리기도 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시 근심걱정을 안고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목사님께서는 기도하라고 하시며 새 힘을 북돋아주셨다. 남편과 함께 금식을 했다. 자식의 생명을 놓고도 세상 사람과 다름없이 기도를 등한히 하며 살았던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하나님이 고쳐주셨을 때는 사람들 앞에서 간증 한 번 제대로 못했고, 기도원에서 충성할 일이 그렇게 많았건만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충성하지 못하고 교만하게 살아온 나.
하루종일 울어도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만약 수술을 받게 된다면 수술칼이 아인이 가슴을 열 것이요, 잘못 되면 재수술에 달마다 정기검진, 수술 중에 사망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수술승낙에 싸인을 해야한다는 생각 등으로 마음이 괴로웠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무시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 죄송했다. 어려움이 닥쳐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아이의 건강을 지켜주셨던 기억은 모두 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한다면, 앞으로 우리가 목회을 할 때 어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이번 일로 더 기도하고 변화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 부부도, 부모님도, 믿음의 형제들도 기도하기로 했다.
금식을 마치는 날, 아인이를 안고 담임 목사님께 가서 기도를 받았다. “살아계신 주님, 이 문제를 통하여 주의 길 가는 길에 큰 이적을 보이시고 능력으로 살게 하소서!”
열 발자욱만 걸어도 숨이 차서 걷지 못하고 낮에도 5시간씩 잠을 자던 아인이가 목사님께 기도받은 후로는 혼자서도 주일학교까지 걸어가고 매일철야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아 식구들을 애먹일 때가 많다. 그리고 감기로 병원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심장병 아이들은 대부분 마르고 키가 잘 크지 않는데 아인이는 제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더 클 정도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주의 길 가는 자답게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남편의 돕는 배필이 되기에 힘쓰고 자녀들을 복음으로 바르게 양육는 것이 주님이 내게 바라시는 소원이라는 것을. 주님, 이제 항상 기도하면서 주님이 바라시는 낮은 자가 되겠어요!
위 글은 교회신문 <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