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많이 생각한 사람
나는 대학에서 토목 건설구조공학을 공부하고 서울시 영등포 수도사업소에서 상수도 공사를 감독하는 일을 하고 있는 공무원이다. 작년 4월, 진급시험 준비차 노량진 학원가에 왔다가 우연히 학습비디오 가게 주인아주머니로부터 연세중앙교회 ‘이웃초청 예수사랑 큰잔치’에 초청을 받았다.
그날, 윤석전 담임 목사님께서 초청되어 온 불신자들 앞에서 온 몸으로 애끓듯 설교하시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인생을 육신을 위해 다 써버리고, 영혼을 위해서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단 한 시간의 여유도 갖지 못한다면 육신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날, 그의 영혼이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하실 때는 온몸에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압도되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저 목사님이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어서 나를 예수 믿게 만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목사님이 무서워졌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사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생각을 많이 했다. 나에게 있어서 죽음은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식의 막연한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닥쳐 올 것 같은 실제 상황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보려고 ‘사람의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산다’고 믿는 기독교를 종교로 선택하고 싶었지만, 막상 교회에 가면 죽음의 문제를 너무 드러내놓고 말하니까 오히려 더 두려워져서 교회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신입국 직분자들의 영혼 구원의 열정에 이끌려 ’99 하기성회 참가
연세중앙교회에 초청되던 날도 교회에 등록은 했지만,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점점 더 두려움이 심해질 것 같아서 그날 이후로 예배 출석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청년회 신입국에서는 매주 청년회 주보와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보내주고 전화 심방도 자주 해주었다. 그러다가 결국 신입국 형제자매들의 포기하지 않는 영혼 구원의 열정과 눈물의 기도, 학습비디오 가게 김미영 집사님께서 직접 성회접수를 해주시는 등,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수원흰돌산 기도원에서 열리는 ’99 전국 청년 하기 성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성회 첫째날, 강사가 윤석전 목사님이라고 해서 실망이 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해줘서 그런지 교회에서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전하시는 말씀의 방향도 상당히 달랐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는 말씀을 하시면서 행위뿐 아니라 마음의 간음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지적해 주셨는데, 목사님께서 “회개하라!”고 하자 성전을 가득 채운 수천명의 청년들이 육신의 정욕에 이끌려 방종하며 살았던 자신들의 과거의 삶을 가슴치며 오열하며 회개하는 그 엄청난 모습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힘이 저 목사님으로 하여금 이 수많은 청년들을 이토록 회개케 하는 것일까? 한참 동안 청년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의 마음도 뜨거워져서 하나님이라는 절대자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님은 너희를 낳아줬다! 키워줬다! 인생을 다 바쳐 사랑해 줬다!
둘째날, 목사님께서는 부모님 공경에 대한 설교를 하셨다. “너희들은 부모님께 뭐 해준 것이 있느냐고 대드는데, 부모님들은 너희를 낳아줬다, 먹여줬다, 입혀줬다, 등록금 줬다, 인생을 다 바쳐 사랑해줬다!” 목사님께서 강력한 어조로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해주신 것들을 인식시켜 주시는 순간, 고향에 계신 늙으신 부모님이 생각났다. 자식에 대한 정성이 유별나셔서 한평생 자신을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4남1녀를 위해서 일만 하시다가 허리가 꼬부라져 15년째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사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바로 그때 목사님께서는 “너희가 눈물 없이 회개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불호령을 치셨고 눈물은 더욱더 쏟아졌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게 회개하고 나니 가슴이 시원했다. 그런데 기도할 때 이상한 말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신입국 형제에게 물어보았더니 방언 기도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받은 사람들의 심령에는 성령이 임하시는데 그 증거로 방언을 말하게 되는 것이라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도 방언을 꼭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사모하며 기도했더니 혀가 말리면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불치병 알레르기성 비염 하나님의 능력으로 순간에 치료
셋째날, 아침 일찍 성전에 가서 기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코 안이 실룩실룩하더니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듯 아픈 데를 톡톡 쪼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아서 네 번이나 수술을 했지만 재발해서 축농증 초기 상태가 되었다. 코안이 뼈처럼 딱딱해져 코로 숨을 쉴 수 없고 입으로 숨을 쉬니 입술과 입안은 항상 헐어 있었다. 서울대학 병원에서 특진을 했더니 수술해서 나을 병이 아니니 평생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 오셔서 코를 치료하고 계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더니 곧 코가 시원해졌고 머리도 상쾌해졌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코로 고생하지 않았다. 현대 의학에서 불치라고 판정한 병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순간에 치료되었던 것이다.
죽음의 사슬에서 해방된 영혼은 기쁨에 젖어
넷째날, 설교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무척 아쉬웠다. 기도 시간에는 내가 정말 방언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힘껏 기도를 했더니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방언이 터져 나왔다. 순간, 태어나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평안과 기쁨이 내 마음 속에 가득히 밀려 들어왔다. 오랜 세월 동안, 나의 마음을 억압하고 지배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씻은 듯 사라져 버렸고, 죽음의 사슬에서 해방된 나의 영혼은 억제할 수 없는 기쁨에 젖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펄쩍펄쩍 뛰며 춤을 추며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목사님에 대한 오해는 삼십배, 백배 이상 감사로 바뀌었고 학습비디오 가게 김미영 집사님과 신입국 형제자매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또한 내가 받은 이 큰 은혜를 가장 먼저 고향 완도에 계시는 부모님께 전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부모님을 전도하려면 먼저 함께 사는 누나와 동생을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밤마다 붙들고 기도원에서 은혜받은 내용을 행동까지 곁들여 그대로 전했다. 귀찮아하고 화도 냈지만 그래도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몇주 후에는 두 사람은 교회로 와서 직접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누나는 주일 대예배에 계속 참석한 이후로 20년 넘게 심한 만성 두통에 시달려 온 머리가 시원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고, 동생도 마찬가지로 두통에서 해방되었다.
어느 덧, 추석이 다가왔다. 나와 동생은 우상숭배를 피해 완도로 내려가지 않고 기도원에서 열리는 ‘추석 축복 대성회’에 참석했다. 동생은 그 성회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죄사함을 받고 방언은사도 받게 되었다. 동생이 성령 체험을 하고 변화되자 누나도 점점 진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중학교 교사로서 교직생활에서 생기는 어려움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해결되는 체험을 하고는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기를 힘쓰게 되었다.
곱추처럼 허리굽은 어머니의 모습에 비참한 마음이
한편, 누나와 동생을 전도하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완도에 전화를 해서 어머니께 복음을 전하고, 담임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와 녹음기를 보내드려서 말씀을 듣게 했다. 음력 10월이면 고향집에서는 대대로 시향(時享: 5대 이상의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것)을 지내는데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막기 위해서 또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어머니,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우상숭배이니 시향을 지내지 마시고 서울로 오시면 하나님께서 꼭 허리를 펴주실 겁니다.” 밤낮으로 전화해 설득했더니 제주양씨집안 종손이신 부모님께서 친척들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조상 대대로 지내던 시향을 지내지 않으셨고, 며칠 후에는 서울로 올라오셨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 터미널로 마중을 나갔다. 어머니는 아버지 뒤에 멀찍이 떨어져서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기어나오듯 겨우 걸어나오시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불쌍한 마음에 눈물이 곧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9년 전, 어머니 연세가 61세였을 때에 서울 큰병원에서 X-레이를 찍은 적이 있는데, 허리 부분의 등뼈 한 마디가 툭 튀어나오고 그 밑의 뼈 세 마디는 오른쪽으로 휘어지면서 마디 사이가 벌어져 있다고 했다. 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갈 만큼 벌어진 세 개의 고랑은 연세가 들수록 사이가 더 벌어지고 뼈는 점점 약해져서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하고 5미터만 걸어도 쉬셔야 하시는 어머니. 오랫만에 뵈어서 그런지 곱추처럼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 자신이 비참한 마음마저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교회 근처에 있는 자취집에 들어오시자마자 “딱 3일만 있다가 갈란다”라고 하셨다. 삼일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어머니 허리를 펴게 하는지 두고 보자는 말씀 같았다. 우리 형제는 부모님을 매일철야 예배에 모시고 갔다. 부모님은 담임 목사님의 설교에 귀 기울이시더니 기도시간에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모르고 산 지난날들을 회개하셨다. 낮에는 여전도회원들이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만이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어떤 질병도 치유하시는 능력이 있으니, 오직 예수의 피만 의지하라고 믿음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나 삼일이 지나도 허리가 펴지지 않자 아버지께서 완도로 내려가겠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 생신날이 다가오니 며칠만 더 계시다가 대구와 구리에 사시는 형님들도 불러서 누나집에서 생신 잔치를 하자고 설득을 해서 허락을 받았고 계속 철야예배와 기도생활을 하시게 했다.
어머니께서 “내 허리가 펴졌다!” 하시며 울음을
1999년 12월 11일. 부모님이 서울에 오신 지 7일이 지났지만 허리는 펴지지 않았다. 퇴근 후, 부모님을 모시고 누나집으로 출발할 채비를 다 마치고 우리 형제는 어머니를 양편에서 붙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머니께서 예수의 피를 몸에 끼얹으시는 시늉을 하면서
“예수의 피가 그렇게 좋다면 내가 일어나 볼란다!”라고 하시더니 몸을 반드시 일으키면서 일어나셨다. 어머니가 몸을 일으키시는 순간에 허리에서 ‘뚝 뚝’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어머니께서 “내 허리 펴졌다!” 하시는 소리와 함께 울음을 터뜨리셨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시며 얼른 어머니 허리를 만져보시더니 툭 튀어나오고 휘어졌던 뼈 마디들이 다 제자리로 들어가서 굽었던 등뼈가 일직선이 되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얼굴을 꼬집으시더니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하시며 평소에 눈물 한번 흘린 적이 없으신 분이 눈물을 펑펑 쏟으시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는 말씀만 계속하셨다. 그날, 누나네집은 우리 온가족이 15년만에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소원하던 어머니의 허리가 펴진 것을 감사하며 밤이 새도록 울고 또 울어서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신입국 형제자매들이 전화했을 때, “이제 전화하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고 “절대로 양기천 형제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며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하더니 기어이 나를 하기성회에 참가시켜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가족구원과 어머니의 허리를 펴게 한 것을 생각하니, 이 모든 일들이 포기하지 않는 영혼 구원의 열정을 가진 자들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된다. 성령이 일하시는 절정의 시간, 2000년도 하기 성회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이게 기대된다. 절대 성회에 혼자 가지 말고 죽음의 사슬에 얽매여 영육간에 고통당하는 수많은 제이, 제삼의 양기천을 데리고 갈 것을 다짐해본다.
위 글은 교회신문 <1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