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살에 위암선고 받았는데 ...

등록날짜 [ 2004-06-18 11:13:47 ]

말도 안돼요 내가 위암이라니!

내가 스물다섯 살 때인 1996년 초가을이었다. 위에 통증이 너무 심해 신촌 S 병원 내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증상을 자세히 묻더니 방사선과로 데리고 가서 바륨이라는 흰 죽을 먹이고 엑스선투시를 했다. 바륨을 먹으면 위장이 코팅이 돼서 엑스선투시가 가능하며 위내시경에 비해 고통없이 위암이나 위십이지장궤양 등을 검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엑스선투시가 끝나자마자 의사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배를 여기저기 눌러보고 언제부터 이렇게 아팠냐고 물었다. 2년 전에도 만성위염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악화돼서 그런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주 월요일에 결과를 보러 갔더니 위암 초기라고 했다.

“말도 안돼요! 내가 위암이라니....”
어머니께서도 오진일 거라며 검사 결과를 인정하려 하지 않으셨다. 좀더 검사를 해보자는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우리 모녀는 서둘러 병원문을 나섰다.

그러나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만성위염 진단을 받은 후 2년 동안 위의 통증이 점점 심해진 것이 사실이었고, 또 그렇게 큰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가 잘못 되었을 리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렇구나! 내가 위암에 걸렸구나.’ 암인 것을 인정하자 견딜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 당시는 아버지께서 심장질환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하신 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때여서 충격을 받으실까봐 아무 말씀도 드릴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도 장사하느라 저녁 늦게 피곤에 지쳐서 귀가하셨기 때문에 검사 결과가 오진이 아니라는 말씀을 차마 드릴 수가 없었다. 부모님께서 앞으로 딸자식 병수발하며 당하실 고통을 생각하니 위암으로 인한 육신의 아픔보다 부모님 걱정으로 인한 마음의 아픔이 더 쓰라리고 아팠다. 그래서 어머니를 볼 때마다, “이제 소화도 잘 되고 아프지 않아요” 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그렇게 혼자서 밤낮으로 위암의 두려움에 떠느라고 사흘 동안 잠 한숨 자지 못했다. 어쩌다 겨우 잠이 들면 시커먼 것이 나타나서 “너는 암이야! 너는 곧 죽어!” 하고 외쳐대는 악몽에 시달리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곤 했다. 먹는 것마다 토해서 물만 조금 마셨다. 위는 점점 쓰리고 구역질이 났으며 입에서 역한 냄새까지 심하게 났다. 체중도 많이 줄었고 정신은 점점 더 혼미해졌다.

방언 받고 은혜 받았던 기억이

병원에 다녀온 지 나흘째. ‘어제가 수요일이었는데 교회에 갈 걸 잘못했구나’ 하고 후회했다. 그러면서 일년 전인 1995년에 흰돌산 기도원 하기성회에서 은혜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성회 마지막날 기도시간, 꼭 감은 나의 두 눈엔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방에 가고 친구들의 생일 파티 때면 으레 술도 마시곤 하던 모습이 비춰졌는데 너무나 초라한 내 모습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님, 다시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주님 위해 살겠으니, 나 좀 붙들어 주세요!” 그 때, 방언이 터져 나왔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성회에 다녀와서도 시간을 아껴서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했고, 자주 아픈 위 때문에 건강을 지켜 달라는 기도도 빼놓지 않았다. 친구들과는 아예 어울리지 않았고 죄를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딱 한 달만에 친구들의 유혹에 이끌려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 해 가을, 다른 교회에 다니는 형제와 교제하게 되었는데 주일에는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데이트를 했다. 담임 목사님께서는 귀한 청년의 때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라고 애타게 설교하셨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그 형제의 사랑이 더 소중했다. 그런데 막상 위암 선고를 받고 보니 그 형제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오히려 예전에는 그렇게도 만나기 싫었고 전화 오는 것조차 귀찮았던 교회 청년회 사람들이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저 류시현이에요... 저 좀 만나주세요!”

세상과 짝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신 것 회개해

다음 날, 처음으로 청년회 구역예배를 드리고 금요철야 예배도 참석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평소에 자주 듣던 말씀인데 그날은 담임 목사님께서 한 말씀 한 말씀 전하실 때마다 어쩌면 그렇게 나를 살려 줄 말씀으로 들리던지 위암에서 나을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기도 시간에 그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통회자복하며 회개할 수 있도록 상한 심령을 허락하셨다. 성령께서 예배에 빠지지 말고 기도하라는 감동을 주셨지만 늘 거역하고 세상과 짝하며 살았던 죄, 성경에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전 10:20-21)고 했건만 진리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가족들이 우상숭배하는 자리에 함께 앉아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시며 주님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죄, 스물다섯 해를 살아온 나의 지난날들이 모두 죄뿐이었다.
아랫배가 끊어질듯 오열하며 회개했다. 바로 그 때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저주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신 그 고귀한 사랑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를 위한 사랑이었다는 것이 가슴 저리도록 심령에 깊이깊이 체험되어졌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위장은 샘물을 마신 듯이 시원해지더니 씻은 듯이 위암의 통증이 사라져 버렸다. 할렐루야!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 후로,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시간만 나면 기도하고 전도를 했다. 모든 예배가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졌고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아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아멘! 아멘!’ 하며 은혜를 받았다. 틈만 나면 성경을 읽었다. 어느 날은 읽고 있던 성경책의 활자가 갑자기 입체로 내 눈 앞에까지 툭 튀어올라왔다. “보라 네가 다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5:14) 깜짝 놀라서 성경책을 덮어버렸다. 한참 후에야 하나님께서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암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하라고 말씀으로 확신시켜 주신 것임이 깨달아졌다. 섬세하게 감찰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나 감사했다.

그 동안, 결혼을 약속한 그 형제에게는 위암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나았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갑자기 변한 내 모습에 몹시 당황해했다. 너무 유별나게 믿는 것 아니냐고 나무라기도 했다. 결혼 문제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고전7:16) 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 형제를 믿음으로 인도하라는 응답으로 알고 1997년 4월 5일,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받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그와 결혼식을 올렸다.

우상숭배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금식하며 기도해

남편은 성실하고 효성스러운 사람이었다.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 있으면 부모님부터 먼저 드렸다. 나도 남편을 따라 맛있는 것이 있으면 시댁어른들께 먼저 드리며 섬겼다.
그런데 시댁은 남편과 시동생이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는데도 아직 제사를 끊지 못했고 남편과 시동생까지 제삿상에 절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결혼 후에 첫제사를 지낼 때는 시어머니께서 예전에 교회에 다닌 적이 있으셨기 때문에 제사 지내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도록 막아주셨다. 그러나 추석이 가까워지자 시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추석 때는 온 가족들이 다 모이니까 내가 막아 줄 수 없구나.” 하시며 미리 각오를 시키셨다.
추석날이 점점 다가오자 우상숭배하는 자리에 앉아 우상의 제물을 만들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나 때문에 채찍에 맞으시고, 나 때문에 저주받으시고, 나 때문에 십지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을 생각할 때 어떻게 그 은혜를 저버리고 우상숭배를 하여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의 연약한 힘으로는 시댁어른들을 설득할 용기가 없었고 남편도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오직 주님께만 매달려 금식하며 기도했다. “주님, 시어른들이 우상숭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천국에서 다시 만나 영원토록 함께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추석 전날, 시댁으로 갔더니 시어머니께서 차례 지낼 음식을 준비하자고 하셨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남편을 붙들고 “제발 나의 방어막이 되어 주세요!” 하며 사정을 했다. 시어머니께서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나셨던지 내 가방과 신발을 문밖으로 집어던지시며, “그렇게 하기 싫으면 집으로 가거라!”고 하셨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신발을 신고 가방을 주워 들고서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남편은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다고 화를 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시댁으로 가서 시어른들 앞에 무릎을 끓고 진심으로 사죄를 드렸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동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눈물로써 간곡한 말씀을 아뢰었다. 그 후, 하나님의 은혜로 시어른들의 마음이 풀어지셨고 우리 부부에게 제사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내려주셨다. 우리는 앞으로 더욱 더 부모님을 잘 섬기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친정의 우상숭배 완전히 무너지고 시댁에도 구원의 손길이

이렇게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자 하나님께서 더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셨다. 어느 날, 남편이 나와 함께 예배 드리고 싶다고 하며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예배 시간마다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더니 온전한 주일성수는 물론 모든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진실한 성도가 되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하여 방언의 은사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아버지께서 우리 교회에 등록하셨고 그 후로는 그렇게 좋아하시던 약주를 일절 드시지 않으셨다. 시어머니께서도 “이런 일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되겠느냐!”고 하시며 기뻐하셨다. 시아버지께서는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은혜를 받으시더니 이젠 남전도회 정회원이 되셨다.
친정어머니도 작년에 우리 교회에 나오셔서 예배 시간마다 손수건이 없이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실 정도로 많은 은혜를 받으시더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 기쁨을 모를 거야” 하며 기뻐하셨다. 그리고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고 고백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친정어머니에게 믿음의 결단을 주셔서 어머니께서 등록하신 그 해에 친정의 우상숭배를 완전히 무너지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크고도 놀라운 은혜이다. 이제 우리 부부의 기도 제목은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가 주님을 영접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는 것이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우리 부부를 사랑해주신 주님, 항상 주님만 섬기며 충성하며 살겠어요!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1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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