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남편이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켜
“여보, 왜 그러세요?” 1995년 3월 이른 새벽, 잠을 자던 남편이 누운 채로 구토를 했는지 온 방안에 오물냄새가 진동을 했다. 깜짝 놀라 남편을 흔들어 깨웠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몸은 어느새 뻣뻣해지고 피부도 새파래졌는데 이를 가는 요란한 소리만 아니면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두렵고 다급한 그 순간,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이 생각났다. 얼마나 많은 불치병자들이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의 기도를 받고 완치되었던가! 차가운 새벽길을 달려 사택의 문을 두들겼다.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한걸음에 달려 오셨다. 119 구조대원들도 순식간에 들이닥쳐 남편을 용산 J 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CT 촬영결과, 뇌출혈이라고 했다. 모두들 수술실로 들어가고 복도에 혼자 남자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주님! 제발 남편을 살려주세요!”
추락 사고에도 목숨 건진 남편을 보자 감사와 회개가
텅빈 수술실 복도에서 오열하며 기도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뇌출혈을 일으키기 3년 전에도 남편은 바로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전라북도 임실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별다른 기술이 없었던 남편은 방송국에서 무대장치 일을 하다가 고층 건물 유리닦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위험한 만큼 수입이 좋은 편이어서 이 일만 전문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물 꼭대기에 묶어놓은 밧줄이 풀어지는 바람에 3층에서 일하던 남편이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추락도중, 환풍기에 부딪히는 바람에 목숨은 건졌지만 팔꿈치와 엉덩이뼈에 큰 골절상을 입어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 때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주님, 남편의 목숨을 건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신앙생활 잘 할게요.”
처녀시절에는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전도왕이 될 만큼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불신자인 남편과 결혼한 후엔 차츰 교회를 멀리 하였고, 명절이면 시댁에 내려가 내 손으로 차례 지낼 음식을 만들어서 시댁어른들께 “예수 믿어도 조상님 잘 섬기는 착한 며느리 얻었다”는 칭찬을 들으며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떠나 세상에서 방황하는 나의 마음은 항상 불안하고 답답했다. 마침내 ‘아, 이제 내 신앙이 다 죽었구나!’라고 탄식할 즈음에 남편이 추락사고를 당했는데,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주시지 않았더라면 추락한 그 자리에서 남편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이제라도 신앙생활을 잘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성령충만을 받자 핍박 받으면서도 믿음 지켜
골절상으로 3개월동안 대소변을 받아내던 남편이 완치되어 퇴원을 하자, 나는 연세중앙교회에서 새로운 각오로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주님의 거룩하신 사랑 앞에 감사의 눈물만이 하염없이 쏟아져내렸다. 그리고 곧 방언의 은사를 받았는데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주시는 그 평안의 기쁨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아이들도 여름성경학교에서 방언 은사를 받고부터는 항상 기도하고 순종해주었다.
남편도 병원에 있을 땐, 퇴원만 하면 신앙생활 잘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막상 퇴원을 하자 태도가 돌변해서 나와 아이들을 교회에 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계속 예배에 참석하자 남편은 아예 생활비를 주지 않았고, 한번 집을 나가면 며칠씩 소식을 알리지도 않았다. 집에 들어오는 날은 이혼하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때로는 그러는 남편이 밉고 원망스러웠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을 생각하니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했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께서 간에 물집이 생기는 희귀한 병에 걸리셨는데 유전여부를 알아보려고 직계 가족이 모두 종합검사를 받은 결과, 남편에게 그 병이 유전되었다고 했다. 희귀한 병이라 아직 알려진 치료방법이 없다고 해서 항상 걱정하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느닷없이 뇌출혈을 일으켜서 새벽에 수술실로 실려 들어간 것이다.
혼수상태인 남편의 입에서 “주여! 주여! 주여! 주여!”
수술실에 들어간 지 5시간만에 남편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혈종은 제거되었으나 잔류하는 피가 계속 흘러나오게 하기 위해 머리에 길다란 호스를 꽂은 채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남편을 보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이틀동안 혼수상태가 계속 되자 ‘저러다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죽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사모님께서 병실로 찾아오셔서 남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믿음의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은 능력이시고 생명이십니다! 지금 담임 목사님과 전교인이 김학모 형제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꼭 살려 주실 것입니다. 믿음 가지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남편에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에 관한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들려주라고 하셨다. 혼수상태인데 무슨 소리가 들릴까 의아했지만 순종했다. 그랬더니 혼수상태 삼일째 날 새벽, 남편의 입에서 “주여! 주여! 주여! 주여!” 하는 소리가 연거푸 터져 나왔다. 비록 육신은 혼수상태일지라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려주면 영혼은 듣는다고 하시더니, 정말 남편의 영혼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힘입고 살고자 저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을 찾는가 싶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지난 몇해 동안 남편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붙들어 주신 주님께 감사했다. ‘아, 이제 내 남편은 산다!’는 강한 확신도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눈을 떴다. 겨우 사람을 알아보는 정도였지 몸은 여전히 전신마비상태였고 말 한마디 못했지만 뛸듯이 기뻤다. 그 때부터는 밤낮으로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들려줬더니 하루는 남편의 눈에서 주루룩 눈물이 흘러나왔다. “여보,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오른쪽 뇌혈관이 거의 다 막혀 수술할 수도 없어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는 둣해서 머리에 꽂아둔 호스를 제거했더니 눈이 돌아가고 팔다리가 뒤틀리는 심한 경련이 일어나서 다시 호스를 꽂아야 했다. 시한폭탄과 같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재출혈을 막기 위해 뇌혈관 검사를 했다. ‘모야모야(일본어:아지랑이)병’이라는 희귀한 뇌혈관 질환이었다. 뇌혈관의 어느 부위가 막히면 신생모세혈관들이 아지랑이가 피어나듯 무수히 생겨나서 막힌 부위에 혈액을 공급하게 되는데, 그 신생혈관들이 너무 약해서 뇌출혈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의 경우는 오른쪽 뇌로 가는 큰 혈관이 거의 다 막혀 수술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2-3주 후에 재출혈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그 때는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만약 산다 하더라도 평생 동안 반신불수로 살게 될 것이라고....
검사 결과에 가족들은 아연실색(啞然失色)했다. 시숙과 시누이들은 기왕에 죽을 목숨이면 다른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아보자고 했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해줄런지도 알 수 없었지만 수술을 받게 되더라도 도중에 사망할 가능성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댁식구들의 의견이 너무나 완강해서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어느 새, 4월이 되었다. 주일날 교회에 갔더니 부활절을 앞두고 고난주간 성회가 열린다고 했다. 죄인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우리의 모든 슬픔과 질고를 대신 짊어지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이제 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게 된 이상, 남편에게 도중에 죽을지도 모르는 수술을 받게 할 수는 없다는 결심이 섰다. 그리고 고난성회에 참석하면 주님께서 남편을 치유하시리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월요일날 시숙께 전화를 했더니 병원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고, 병원측에서도 퇴원을 허락해서 119에 실려온 지 27일만에 퇴원을 했다.
모두 외면했으나, 하나님은 돌아보아주셨나이다!
퇴원한 그날 저녁이 고난성회 첫시간이었다. 남자 집사님들이 남편을 업어서 앞자리에 앉혀주었는데 몸을 가누지 못해서 의자 밑으로 미끄러지는 남편을 껴안듯 붙들고 앉아서 말씀을 들었다. 남편은 병원에 있을 때 설교 테잎을 많이 들어서인지 담임 목사님의 말씀은 잘 알아들었고, 설교를 마칠 때마다 담임 목사님께서 각별한 사랑을 쏟으며 기도해주시면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글썽이며 “아--멘--” 하곤 했다.
퇴원할 때 병원에서 약을 많이 조제해 줬지만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약은 전혀 먹이지 않았다. 그러나 뻣뻣했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부드러워지고 의식도 조금씩 좋아졌다. 성회가 끝난 후에도 공예배는 물론 매일철야예배도 빠짐없이 참석하게 했고 집에서도 늘 담임 목사님의 설교 테잎을 들려 주었다. 사모님께서는 수시로 집으로 오셔서 애절히 기도해주시곤 했다.
그렇게 몇개월이 지나는 동안, 업혀서 성전을 오가던 사람이 휠체어로 오가게 되었고, 또 몇개월 후엔 부축해 주면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얼마 후엔 걸음을 배워 혼자 걷게 되었다. 그 때, 본인과 가족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전교인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일년이 되어갈 무렵엔 의식도 점차 또렷해지고 몸도 거의 정상인의 모습을 되찾았다. 남편은 벌써 죽어 땅에 묻혔을지도 모르고 평생 반신불수로 살아야 할 죄인을 고쳐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고 하더니 성전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는데 그 2개월 동안에 몸과 의식이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그 즈음, 기도원 신증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자원해서 충성을 할 정도였다. 할렐루야!
병원에서도 더 이상 어찌 할 방법이 없다고 했고, 퇴원 이후엔 친형제들마저 한번도 찾아주지 않았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의식이 흐리다는 것을 알고 돈 거래를 숨기며 연락조차 하지 않으려 했지만 , 능력이시요 생명이신 하나님만은 나와 남편을 버리지 않으시고 돌아보아주셨다. 그리고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께서는 친자식을 돌보듯 진액이 다하도록 기도로 기도로 품고 사랑해주셨다.
질그릇 같은 육신, 오직 주님 위해 살기를 간구해
그러나 간사한 것이 사람이던가? 주님이 살리신 이 몸,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살겠다던 남편이 친정할머니의 장례에 가서 마을 청년들과 밤을 새워 믿음의 사람이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고 말았다. 믿음을 쌓는 것은 인내의 세월이 필요하지만 믿음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남편의 영적인 상태는 말할 수 없이 나빠지더니 급기야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사모님께서 간절히 기도하여 다시 깨어난 이후로, 벌써 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에 회개하고 단 한 순간도 세상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기에 처음과 같이 완전히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말과 걸음이 약간 서툰 것 외에는 다시 건강을 회복했다.
지금 우리 가정의 생계는 처녀시절에 배운 미싱기술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어려움 없이 꾸려 나가고 있다. 남편은 늘 피곤에 지쳐 돌아오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지만 나는 남편이 살아서 나와 아이들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리고 두번씩이나 죽을 목숨 살려주신 주님께 기도하는 남편을 볼 때 더욱 감사하다. 오늘도 남편과 나는 언제 질그릇 같이 깨질지 모르는 육신을 죄에 드려 불의의 병기로 사용당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 의의 병기로 살기를 간구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