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 증후군’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며
1995년 5월, 동선이가 생후 한 달이 되었을 무렵에 태열이 심해서 소아과 아동병원에 갔다가 선천성 심장병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심장 전문 신촌 S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했더니 심장에 난 구멍이 워낙 커서 수술해야 한다며 3일 후에 입원할 준비를 해서 다시 오라고 했다.
그날 병원 복도에서 심장수술을 한 아이들을 처음 보았는데 가슴의 수술자국이 너무나 크고 흉해서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다운 증후군 아이들에게서 선천성 심장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의사의 말을 듣자 동선이에게는 염색체에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이 곧이 들리지 않았고, 자라면서 얼굴이 점점 이상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만 가중되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심장병 아이는 키워도 다운 증후군 아이는 도저히 못 키울 것 같아 병신 자식을 키우느니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 씌워 놓았다. 너무나 괴로운 그 시간, 내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은 나를 전도한 이영숙 교구장님이었다.
눈물의 기도에 응답하신 살아계신 하나님
전화를 받고 달려온 교구장님은 나와 동선이를 껴안고 기도해 주시고 주일낮 예배만 드리던 나를 매일철야예배와 기도 모임에 참석하게 하고 함께 기도해주셨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고 성장해서도 자주 예배를 드렸지만 단 한번도 애절하게 하나님을 찾아본 적이 없던 내가 난생 처음으로 한밤중에 성전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하나님, 제 아이가 다운 증후군만 아니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제발 우리 동선이 살려주세요!”
3일 후, 입원하기로 약속된 신촌 S병원을 찾았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3일만에 담당 의사가 바뀌어 있었는데 그는 수술하지 않아도 되겠다며 1주일에 한번씩 정기 검진만 하러 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3일 동안 미칠 듯이 나를 억압하던 다운 증후군의 공포에서 완전히 해방되었고, 하나님께서 나 같은 부족하고 작은 자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기도를 마치자 불덩어리같던 열이 내리고
동선이가 생후 한달 보름이 될 무렵, 나는 다시 한번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믿음 있는 자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분임을 체험하게 되었다. 심장병 아이들은 감기가 한번 들면 2-3개월 정도로 오래 간다.
그날도 동선이는 감기로 불덩이같이 열이 나고 기침을 심하게 했다. 심장병 아이에게 약을 함부로 먹이면 큰일 난다고 해서 해열제도 먹이지 못하고 밤새도록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괴로워하던 그 밤 내내, 사모님께 기도 한번만 받으면 감기가 금방 나을 것 같은 간절함이 불일듯 일어났다. 다음날 교회로 갔더니 사모님께서 동선이의 몸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밤새 울며 보채던 아이가 곧 잠이 들었는데 거짓말같이 열이 내리고 감기 기운도 사라졌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마가복음 16장 17-18절 말씀이 그대로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으로 ‘적당히 해!’하며 비웃었고, 기도로 불치병에서 고침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미친 소리로 취급하며 단 한번도 하나님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무슨 천국과 지옥이 있느냐며 사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설교를 수없이 들었으면서도 구원에 대한 확신이나 성령 체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거듭난 삶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주일낮 예배와 구역예배를 드리며 ‘이만하면 됐지’ 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살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믿노라 하면서 구원도 못 받고 일생을 살다가 영원한 멸망을 피치 못할 죄인을 불쌍히 여기셔서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고, 내 목숨보다 귀한 아들 동선이를 통해서는 그분께 무릎 꿇어 간절히 기도하게 하시고 그분이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체험하게 하셨다.
하나님께 맡겨야 할 아이
사모님께 기도받은 후로 나의 기도는 더욱 뜨거워졌다. 간절히 기도하고 병원에 갈 때마다 동선이가 점점 좋아져서 1주일에 한번 병원에 가던 것을 15일만에, 한달만에 가게 되었다. 백일이 될 무렵, 뇌파검사를 했을 땐 놀랍게도 심장의 결손 부위가 거의 다 막혀서 의사들이 깜짝 놀랐고, 그 때부터는 일 년에 한 차례씩만 검진하자고 했다.
돌 무렵, 동선이는 또 한번 감기로 고생을 했는데 병원에서 조제해준 약을 먹였더니 기침까지 하며 더 심해졌다. 그 때 정말 동선이는 약으로 고쳐질 아이가 아니고 하나님께 맡겨야 할 아이인 것을 깨닫고 인간의 방법에 의지했던 것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의지해서 간절히 기도를 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열이 내리고 기침도 그쳤다. 그 후, 동선이는 자기 스스로 몸이 아플 때마다 무릎 꿇어 회개하고 “예수 피! 예수 피!”하며 기도하면 금방 아프지 않게 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돌 때 체험한 성령의 은사
정상아보다 발육이 느릴 줄 알았던 동선이가 의외로 발육이 빠르고 돌이 지나자 완전히 정상이 되어갔다. 그럴 무렵, 내 마음에 교회에 가기 싫은 마음이 차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교구장님이 우리 집에서 기도모임을 하자고 했다. 약 40일간 교구 식구들이 우리 집에 모여 기도를 했고 그 후에는 성전에서 기도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어느 날 동선이를 등에 업고 기도를 하는데 등에서 “랄랄랄라”하는 방언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내 기도 소리를 흉내내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들으니 기도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교구장님께 들어보라고 했더니 진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때에 내 신으로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리라”(요엘 2:29)
고 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의 영혼이라도 사모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이심을 알았을 땐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로도 갓 돌이 지난 동선이는 교구장님이 심방오시면 자기가 먼저 예배 상을 펴고 앉아서 예배드릴 준비를 하고 교구장님들이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주면 눈물을 흘리며 “아멘!”하며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틈만 나면 밥상 위에 올라가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시늉을 하고 나를 상으로 이끌어서 예배를 드리자고 조르곤 했다. 나는 동선이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내가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 잘 하기를 바라셔서 아이를 통해 깨닫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도 모임과 예배에 한두 번 빠지면서 점점 더 게을러지고 나태해져서 결국 1997년 후반부터 2년 동안은 아예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엄마, 왜 교회 끊었어?
교회에 나가지 않는 2년 동안 나는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죽을 고생을 했다. 동선이가 기도로 건강해진 것을 생각하면 교회에 가서 사모님께 기도받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번 악한 영에 속아 교회를 떠나고 보니 죽어도 교회에 가기가 싫었다. 누구의 권면도 귀에 들리지 않았고, 직분자들이 모두들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동선이가 교회에 다녀와서 “엄마, 왜 교회 끊었어? 지옥이 얼마나 징그럽고 무서운데 교회에 안 나가?”라는 말을 할 땐 이러다가 하나님이 영영 나를 건져주지 않으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흐른 1999년 말, 이사문제로 교구장님과 만나게 되어 교회에는 나가지 않고 기도 모임에만 나가기로 했다. 기도를 시작하자 그 동안 여러 교구장님들이 얼마나 많이 나를 위해 기도했을까 생각하니 그분들의 사랑에 가슴이 저렸다. 그래서 기도 모임을 하는 동안에 차츰 교회도 다시 나가게 되었다.
내가 교회에 다시 나가자 가장 기뻐한 사람은 동선이였다. 어쩌다가 내가 성경책을 보고 있으면, “아, 이제는 집사님 되려고 그러는구나? 엄마는 언제 집사님 될 거야?” 라고 물었다. 멀리 이사하려다가 생각지도 않게 교회 근처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을 때는 교회에서 감사헌금봉투와 십일조 봉투를 잔뜩 가져다 주면서 감사헌금 봉투를 낼 때는 자기 이름도 꼭 써달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2000년 9월엔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한 지 7년만에 처음으로 흰돌산기도원의 추석축복대성회에 참석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보니, 진리를 알지 못해 한평생 우상숭배의 사슬에 매여 악한 영들의 종노릇하며 사신 시어머니가 안타까워 종일토록 울었다. 또 남편에게는 평안한 안식처가 되어주기보다는 늘 그의 마음에 부담을 준 것 같아 죄스러워 울며 회개했다. 그 성회에서 담임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은 모두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었는데 우리 집안에서 나만이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살면 머지않아 시댁과 친정의 모든 식구들이 구원받는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예수님께 드립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를 예수 안에서 맞이하려는 흰돌산기도원의 송구영신 예배시간. 불과 몇주 전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했는데도 나보다 훨씬 진실한 눈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남편과 딸 아영, 동선, 그리고 나, 우리 네 사람은 30일 날 미리 정성껏 작성한 기도제목을 잘 접어들고 예배를 드렸다.
올해 일곱살인 동선이는 1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다가 어느 새 잠이 든 모양이다. 동선이가 기도 제목을 적어놓은 하얀 봉투에는 그림까지 곁들여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예수님께 드립니다.
1. 우리 가족이 구원받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제가 나쁜 짓 하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그것을 보고 마음으로 다짐을 했다. ‘그래 동선아, 이제 너를 위해서라도 신앙생활 잘 하고 기도 많이 할게 !’
주님, 이 철없는 어미를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기도하며 충성하며 전도하며 살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