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인생길에 보호자 되신 나의 하나님

등록날짜 [ 2004-07-24 15:10:29 ]

시한부 인생을 살리신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처음 만난 것은 열일곱 살 때였다. 당시 나는 ‘다카야수’ 라는 희귀 혈관병으로 ‘길어야 6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탓에 외할머니가 전 재산을 바쳐 손녀를 살리려 애썼지만 이미 나는 콩팥, 양쪽 어깨, 뇌로 가는 혈관들이 실오라기처럼 가늘어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열 손가락이 피범벅이 되도록 벽을 긁으며 온 방을 헤매는 무서운 통증으로 울부짖으면서도 나는 살고 싶었다. 미치도록 살고 싶었다. 외증조부 때부터 4대째 예수 믿는 가정이었지만 교회라곤 근처도 안 가던 내가 처음으로 성경책을 끌어안고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정말 죽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내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으니 제발 제게 나타나 보여 주세요.” 얼마나 간절히 울면서 기도했던지 꿈속에 정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인자한 미소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고 당신이 하나님이시냐고 묻는 내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꿈에서 깨어나자 무서운 통증이 씻은 듯 가라앉고 몸이 날아갈 듯 가볍더니 내 입에서 연달아 찬송이 흘러나왔다. 너무나 신기하고 감사해서 그 길로 기도원을 찾아가 간절히 기도하던 중에 다카야수가 깨끗이 치유 받는 놀라운 체험를 했다.

남편과 돈을 더 사랑했으나
그 후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기도원의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중, 하반신 마비로 고통받다가 하나님 은혜로 치유 받은 한 청년과 사귀게 됐다. 부모님을 일찍 잃고 외롭게 자라다가 나를 끔찍히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자 온통 생각과 마음이 그 사람으로 꽉 차 버렸다. 결혼한 후 시댁인 대구에서 살림을 할 때는 아예 남편이 우상이 돼 버렸다.
사랑을 독점하고픈 마음에 남편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몹시 싫어했으며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오면 정신없이 찾으러 다녔고 그런 나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다가 임신 7개월 때 조산을 하게 됐다.
태아의 발이 걸려 있어 수술을 해야 할 상황에 뜻밖에도 다카야수까지 재발해 있었다. 다카야수 때문에 제왕절개수술를 받지 못하고 며칠째 사경을 헤매자 그제야 다시 하나님께 매달려 살려달라고 몸부림쳤다. 8시간의 대수술이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아이가 몇 개월 살지 못하고 죽자 나는 또다시 하나님과 멀어졌다.
몸을 추스린 후, 남편과 함께 카드발급 총판 일을 했는데 당시 카드발급이 폭주하던 시기라 많은 돈을 벌었다. 2-3년 동안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돈도 써보고 “사장님, 사모님” 소리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해졌다. 그렇게 성공가도를 달리던 내 인생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남편이 외도로 행방을 감춰버렸고, 카드발행총판은 수억대의 빚을 지고 망하고 말았다. 남편에게 배신당한 충격으로 너무나 괴로웠다.

다시 회복시키신 하나님
남편으로 인한 화병이 극에 달해서일까. 어느 날 갑자기 어지러워서 쓰러졌는데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의사는 아무 증상이 없다는데도 하루에도 열 댓 번씩 심한 어지럼증과 숨막힘증이 찾아왔다. 경기나 간질을 하듯한 죽음을 맛보는 고통은 삼십여 분씩이나 계속됐다. 나는 그때서야 까마득히 잊어 버렸던 하나님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죽음의 고통 속에서 지난날의 잘못된 삶들을 회개했다. 그제서야 나는 나와 내 가정이 당하는 모든 고난이 내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며, 하나님보다 남편과 돈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끝없는 통회자복과 눈물의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숨통을 조이는 고통은 2년간이나 계속됐다. 육체의 한계를 넘는 괴로움 속에 100일 작정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는 날, 꿈에 바싹 마른 체구의 목사님인 듯한 분이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그 순간 가슴을 꽉 막고 있던 무엇인가가 기름 녹아 흐르듯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꿈에서 깨어나자 신기하게도 어지럽고 숨통을 조이던 고통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일 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 2000년도에 서울에서 윤석전 목사님이란 분이 부흥성회를 인도하신다기에 참석했는데 강단에 서 계신 목사님이 뜻밖에도 일 년 전 꿈에 나타나서 내게 안수기도를 해주셨던 바로 그 목사님이었다!
꿈에서 만난 목사님을 실제로 보면서 나는 그 성회에서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았다. 죽을 병에서 고쳐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고마워서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복음증거를 위해 생애를 바치며 산다는 윤목사님의 간증을 듣자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받았나 절실히 깨달아졌다. 죽을 고비에서 여러 번 살려주신 하나님을 그저 나를 도와주는 수호신 정도로 여기고 내 인생을 육신의 정욕으로만 채웠던 사실을 깨닫자 심령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오열의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남편을 부르시는 주님
그 후 하나님께서는 나의 작정기도를 통해 남편의 어지러운 주변을 조금씩 정리해주셨다. 그러나 오랜 방탕생활에 젖은 남편은 모 제과회사에 다니면서도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며칠씩 소식을 끊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에 취해 집에 들어서면 무릎을 꿇고 목을 놓아 울곤했다. “하나님, 제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그리고 나를 붙들고 울었다. “당신이 나 좀 살려 줘! 나, 하나님 앞에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뭔가 나를 붙잡고 안 놔준다. 나도 이렇게 살기 싫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나 지옥 가겠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통곡하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나도 같이 손잡고 울었다. 너무나 불쌍했다.
생각다 못해 남편의 방황을 막고 극심한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빚을 얻어 치킨 집을 열었다. 주일에 장사가 잘 되지만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살지 않기로 작정했기에 문을 닫고 남편과 함께 교회에 나갔다. 그런데 남편은 교회에 가서 앉자마자 곯아 떨어져서 예배 끝나면 눈을 떴고, 집에 돌아와서는 계속 술을 마셨다. 나는 숨이 막히는 병은 나았지만 극심한 어지럼증과 자궁근종으로 고통 받고 있던 상태였기에 남편으로 인한 심적, 육신적 고통을 참아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딱 한번 술을 끊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2002년도에 윤석전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3박4일간의 부흥성회에 참석한 직후였다. “이제껏 내가 마귀에게 속아 인생을 헛살았다”고 고백하더니 한순간에 술 담배를 끊고 열심히 신앙생활했다. 그러나 그것은 딱 일주일뿐, 곧 알코올 중독 상태로 다시 돌아가버렸다. 남편을 불러내 술을 사주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남몰래 울어가며 남편을 위해 기도하던 중, 어느 주일 찬양예배 때였다. 첫 찬양이 시작할 때부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하나님, 저 힘들어요.” 그 한마디를 하고 계속 울고 있는데 마음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서울로 가라, 연세중앙교회로 가라.’
확실한 음성이 들렸다.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서울로 가라는 감동을 주셨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치킨 집을 팔아봐야 빚 갚고 나면 2백만 원밖에 남지 않으니.... 그렇지만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남편이 완전히 변할 수만 있다면 단칸방에 사과 궤짝 하나를 놓고 살더라도 서울로 가고 싶다는 마음 간절했다.
결국 나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했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서울시내에 보증금 200만 원짜리 월세방을 구할 수 있었다. 대구 교회 목사님도 이사날짜가 가까이 오자 심방을 해주시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씀을 주셨다. 남편이 주변 친구들로 인해 악한 역사에서 벗어나기가 힘드니, 대구를 떠나서 영적으로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서울에 가서 꼭 승리하라는 위로의 말씀이셨다.
결국 2002년 6월 20일, 하나님의 은혜로 이사를 왔고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다. 남편은 모든 공예배와 그 당시 있던 매일철야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더니 2주 만에 술을 끊었다. 담배는 곧이어 열린 흰돌산수양관 여름성경학교 때 보조교사를 하면서 끊었다. 남편이 180도로 완전히 달라진 것도 그 때였다. 교사들이 아무리 주의를 줘도 아랑곳하지 않고 까불고 장난치고 말썽 부리던 아이 하나가 윤 목사님이 애타게 전하는 설교말씀에 은혜를 받더니 영안이 열려 천국과 지옥의 현장을 체험하고 폭포수같은 눈물로 통회자복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저럴 수가 없다!’는 깨달음과 함께, ‘저 아이도 변하는데 나는 뭔가?’라는 각성으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고, 지난날의 방탕한 삶을 통회자복하며 회개했던 것이다. 그 날 이후 2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남편은 단 한번도 예배에 빠진 적이 없이 시간시간 은혜받고 변화되어 날로 믿음이 성장하고 있다.
완전히 부서지고 깨어진 우리 가정을, 사람의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 주님께 진실로 감사를 드린다. 아직까지도 부족한 모습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안에서 회복하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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