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평안과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주신 하나님

등록날짜 [ 2004-09-25 23:28:22 ]



내 자식만큼은 믿었는데...
우리 부부는 슬하에 아들만 둘을 뒀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어서 맞벌이를 해야 했지만 자식들만큼은 고생시키지 않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희망과 기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맞벌이를 하다보니 방과 후 아이들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내 자식들만큼은 부모 마음을 헤아려 반듯하게 커 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기대와는 달리 둘째 아이는 동네 형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하더니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가출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영리한 아이여서 기대가 컸던 터라 실망도 그만큼 컸다. 하지만 그 아이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이켜 학업에 열중하게 하려고 학습장애극복 프로그램에 참가시키고, 신경정신과 박사에게 수개월간 상담과 치료를 받게 하고, 담임교사를 찾아가 눈물로 선처를 호소하기도 하고, 저가 원하는 대로 유명한 대학의 학생에게 과외를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의 학업부적응, 가출 등의 태도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너무 머리가 좋았던 아이라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고 아무리 타이르고 때론 무섭게 매질을 해도 이미 닫힌 마음을 바꿀 해결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암흑처럼 변한 집안
아이는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이를 말리는 부모에게 반감이 생겨 더 자주 반항하고 가출을 했던 것이다. 아이는 내게 심하게 맞을 때마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 아내와도 아이 문제로 자주 다투게 되니 집에 들어가는 것이 괴로웠다. 가족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고 답답해서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늦게서야 귀가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아이의 친구들이 불량배들에게 붙들리자 그 아이들을 풀어주기 위해 도둑을 위장한 불량배에게 문을 열어주어 집안의 물건을 모두 털어가게 한 사건이 생겼다. 아이들에게 해가 가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으나 도대체 우리 아이의 앞길엔 어떤 운명이 놓여있기에 이렇게 험궂은 일을 만나는지 화가 치밀어 올랐고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했다.

자살할 수 있으니 굿을 하라고...
이 일로 아내는 유명하다는 철학관을 찾아가 아이의 운명을 점치고 절에 이름을 올리는 등 무속의 힘을 빌었다. 그러다 한 곳에서 아내는 충격적인 소리를 들었다. 둘째 아이가 우울증이 심하고 자살 충동이 있어서 19살이 되기 전에 자살할 수가 있으니 굿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너무나 놀라서 다른 점집에 찾아가 점을 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때부터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공부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도 가출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혹시나 이 아이가 자살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급기야 아내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의논하여 선산에서 굿을 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이의 마음을 바꿀 수 없으니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에게 아이를 의탁한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은 교회
6년째 계속된 둘째 아이의 가출, 그리고 점점 눈에 띄게 심해지는 우울증. 그동안 수없이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여보고 굿도 했지만 그 어디에도 해결책이 없어 고민하던 바로 그 무렵, 큰 아들이 함께 교회에 나가자고 권유했다. 갖은 방법을 다 써도 동생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했으니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믿어보라는 것이었다. 큰 아들은 제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연세중앙교회에 다니면서 믿음을 키우고 있었다.
아내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다급한 심정으로 큰 아이의 도움을 받아 가까운 교회로 새벽예배에 나가기 시작했다. 큰 아들은 내게도 함께 교회에 나갈 것을 권유했지만 나는 둘째 아이가 내 뜻대로 말을 듣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를 술로 삭이던 터라 몇 번이나 교회에 가겠다는 약속을 어겼다.
하루는 큰 아이가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는 내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스무 살이 넘도록 잘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자기는 여태껏 아빠를 크게 실망시킨 일이 없었는데 동생을 살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 살자고 하는 일에 왜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느냐며, 몇 번이나 교회에 같이 가겠다던 약속을 어긴 아빠에게 너무나 실망했다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찡했다. 제 동생이 수년째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면서 저절로 성숙해버린 큰 아들, 어릴 때부터 머리 좋은 제 동생을 많이 편애했는데도 불구하고 잘 참아주던 무던한 아들, 그 아들이 부모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제 동생과 부모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했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가 내 마음을 울렸다. 게다가 아내가 “당신이 계속해서 아이와의 관계가 악화되어서 만약 아이가 우울증이 심해져 자살이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에요?”라는 말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정말 다 키워놓은 자식이 나 때문에 자살이라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래,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이가 좋아지고 우울증이 나아진다면 한번 하나님께 맡겨 보자라는 생각에 아들을 따라 동네 교회에 나가게 됐다.

제사도 끊고 매일 새벽기도 나가 아들 위해 기도해
큰아들이 간절히 기도한 때문인지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100일 작정 새벽예배를 결심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었던 나는 장사가 몇 배 잘 되는 주일날 선뜻 문을 닫기가 어려워 망설였지만, 큰아들의 권유로 과감히 문을 걸어닫고 교회에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찾아다니던 제사도 쉽게 끊을 수 있었다. 제사를 지내면 조상의 음덕으로 자손들이 잘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자손 삼사 대에 저주를 쌓는 일이라고 성경을 찾아가며 권면하는 큰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두 번 다시 제사를 지내고 싶지 않았다. 대신에 새벽기도와 예배에 참석하면서 마음을 쏟아 하나님 말씀을 듣고 둘째 아이가 절대로 자살하지 않도록 지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온 가족을 치유하시는 주님의 사랑
하나님을 믿은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둘째 아이의 어긋난 행동을 보고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말씀으로 자식을 가르쳐야 하는데 나는 내 뜻대로, 내 욕심으로 아이를 가르쳤으니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이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에 한마디를 하더라도 다정하게 하게 되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다 보니 아이도 차츰 대화의 문을 열었고 서로의 생각과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아들이 아닌 나를 변화 시켜주셨던 것이다.
우리 가족이 교회에 다니면서부터 둘째는 단 한번도 가출한 적이 없었고, 아무런 말썽도 피우지 않았다.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다니고 있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취업의 형태로 산업정보학교로 출석하여 응용무용을 일년간 배우도록 허락했다. 처음으로 아들의 뜻을 받아들여 주었던 것이다. 아들은 자신을 인정해준 내게 그 이후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고 다정하게 내 품에도 스스럼없이 안기곤 했다. 몇 년만에 작은 아들을 품에 안아 보았을 때,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라는 깨달음에 두 눈에 눈물이 흘렀다.

믿음 안에서 행복이 넘치는 가정
내게 믿음을 갖게 해준 큰 아들이 너무나 대견하고, 큰아들에게 올바른 믿음의 본을 보이시고 참된 신앙의 교육을 시켜주신 연세중앙교회 목사님을 존경하게 되어 말씀 테이프를 자주 듣다가 매일 철야예배까지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 직장생활 때문에 주일 성수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내도 돈버는 일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자신과 자녀의 영혼과 육신이 복 받는 길임을 깨닫고 요즈음엔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새 하나님을 믿은 지 3년여, 요즘 나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기도 중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며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고 너무나 감격하여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있으며, 가정에는 평화가 넘치고 자식들의 얼굴에서는 행복이 넘치니 정말 살맛이 난다.
지금 작은 아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백 댄서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변화시키셔서 언젠가는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쓰임받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있다. 우리 가족을 하나님께로 인도해 준 큰 아들은 지금 군종으로 쓰임 받고 있다. 주일예배밖에 없던 부대에서 삼일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더니 얼마 전에 전화가 왔다. “엄마,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삼일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다음엔 금요철야와 주일저녁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요즈음 우리 부부는 기도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세밀한 것까지 응답해 주시는 그 은혜에 오직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절실히 체험하며 살고 있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참된 행복을 주신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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