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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에 받은 사형선고
“위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습니다. 상태가 심각하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요즘은 의술이 좋아서 살 확률도 있으니 너무 좌절하지 마시구요.”
내 몸속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어 그 자리에서 곧장 S의료원으로 향했다. 위내시경 사진을 내밀었더니 그곳 의사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육안으로 봐도 암이 분명하군요. 상태가 심각하니 당장 수술 받도록 응급으로 입원을 하십시오.”
의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내게 꽂혔다. 후두로 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르더니 인적이 없는 공원에 들어서자 ‘꺼이꺼이’ 통곡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내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명목상의 크리스찬이었던 나는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연세중앙교회에 다니게 됐고, 윤석전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뜨거운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어떤 유혹과 핍박이 와도 절대로 예수님을 떠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랬기에 내게 속히 생활기반을 잡게 하려는 생각에서 누이와 어머니가 사랑으로 행한 수많은 핍박과 간섭에서도 꿋꿋이 신앙생활의 길을 달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게 왜 이런 불행이 찾아왔는지, 나처럼 열심히 신앙생활 하지 않는 사람도 건강하게 잘만 사는데 왜 내게 이런 불행을 주시는지, 억울하고 서러워서 하늘이 무너져라 통곡을 했다.
“핍박 받아가며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 대가가 바로 이겁니까?”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며 몸부림쳐 울부짖었다. 그런데 얼마나 그렇게 인사불성이 되도록 울부짖었을까. 뜻밖에도 두려움이라는 절망에 휩싸여 칠흑같이 어둡고 답답했던 나의 심령 깊은 곳에서 찬양 한 곡조가 은은히 울려 나고 있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위암이란 사형선고 앞에 그렇게도 간단히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 순간에도 내 영혼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며 찬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초라하기 짝이 없는 부끄러운 나의 신앙 현주소를 확인하는 순간, 뜨거운 회개의 눈물과 함께 제발 살려만 주시라고, 내 평생 하나님만을 위해 살겠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두 시간이 넘도록 찬양을 했다. 그러자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으며 버리지도 않으리라’는 분명한 확신을 주셨다.
집에 돌아오니 가족들이 모여 내 문제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날이 금요일이라 나는 조용히 교회로 향했다. 금요철야예배 설교 말씀 속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넘쳐났다.
5년 이상 생존율 50%
토요일 오전에 S의료원에 응급으로 입원을 했고, 이틀 후인 월요일에 첨단장비로 조직검사, CT 촬영, 위장관 조영술 등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응급환자라 다음날 바로 결과가 나왔다. 위암 3기! 암세포가 위벽을 뚫고 림프선에까지 전이가 된 것이 CT 사진상으로도 확연히 드러났다.
위암 3기면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50%라고 했다. 죽을 확률도 50%라는 뜻이니 두렵고 떨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고 계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두려움과 절망도 나를 결박하지 못했다.
수술 날짜가 일주일 후로 잡혔다. 병실에서 하루종일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귀에 꽂고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찾으신다.’는 말씀이었다. 다윗왕이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한 가정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가슴을 아프게 한 죄를 뼈를 깎는 상한 심정으로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다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을 들으며 내가 하나님 앞에 뼈를 깎는 상한 심령으로 내놓을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영적 오만과 교만이었다.
‘나는 가족에게 이렇게 핍박 받아가면서도 그 먼거리에서 매일철야기도를 하는데 교회 바로 옆에 사는 너희는 그것도 못하냐’며 얼마나 많은 형제자매를 정죄했던가. 그리고 청년회원 간에 물질로 봉사할 기회가 있으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지 않고 나의 의로 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지 못해 S의료원 부속 교회로 뛰어가 몸부림쳐 울었다.
“하나님, 이번에 저를 살려만 주신다면 앞으로 절대로 교만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면 어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몇 시간씩 몸부림쳐 뼈를 깎는 회개와 서원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한 병실을 쓰던 환자가 죽어나가는 암병동에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웃음을 잃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수술 일자를 나흘 남겨둔 금요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당하신 금요일마다 구역예배드리고 철야예배드리며 뜨겁게 보혈의 공로를 찬양하던 감격이 그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수술을 앞둔 환자는 절대 외출금지였지만 간호사에게 사정사정해서 교회로 달려갔다. 금요일 저녁을 오롯이 나를 위해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주님의 은총을 부여잡고 기도와 찬양과 예배로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예배 후엔 목사님께 믿음으로 기도 받고 날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몸과 마음 가득 부여안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뜻밖의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 전, 암세포가 위벽을 뚫고 림프선에까지 전이됐다고 했는데 어찌 된 것이 배를 가르고 보니 일주일만에 암세포가 위점막층에만 돌기 형태로 있는 위암 1기a 상태가 돼 있다는 거였다. 검사결과 대로라면 위 전체를 잘라내고도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위의 2/3만 절제해도 항암 치료를 전혀 받을 필요가 없는 깨끗한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위암 3기였던 것이 일주일만에 1기a로 되는 경우는 이제껏 한번도 없었던 일”이라며, 내과 의사가 외과까지 직접 와서 확인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하나같이 신기한 일이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기에 감사의 눈물만 흘렸다.
“죽을 병에 걸린 네가 이렇게 멀쩡한 몸이 되었다니, 하나님이 안 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냐? 엄마랑 나도 이제부터 하나님 믿을란다.”
그날로 누이의 가정과 어머니, 그리고 형님네 가정까지 우리 온 가족이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됐다.
덤으로 주신 삶을 주님께
퇴원 후, 내가 주님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를 놓고 기도했을 때 해외선교에 대한 감동이 왔다. 해외단기선교는 건강한 사람도 힘에 벅찬 일인데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가서 걸림돌이나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가족들도 위암 수술을 받은 사람이 음식과 기후가 다른 곳에 가면 자칫 죽을 수 있다고 결사반대였다. 하지만 기도할 때마다 계속 마음의 감동이 오자 성령님이 주신 감동이라 믿고 해외단기선교팀에 합류하였다.
수술한 지 6개월만인 2000년 12월에 간 첫 선교지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2001년도에는 중국 길림성, 그 다음해엔 흑룡강성으로 선교를 떠났다. 하나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위암 3기였으나 일주일만에 1기a로 변해 수술 한 번으로 암이 치유된 간증을 하게 하셨다. 통역을 통해 간증을 들은 선교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자신들의 불치병도 고침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뜨거워져 선교팀이 손을 얹고 기도할 때, 많은 병자가 치유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올해는 위암에서 치유된 지 5년이 되는 해이다. 단 한 번의 재발 없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며 작년에는 결혼하여 믿음의 가정을 꾸렸다.
제발 살려만 주시라고, 평생 주님 위해 살겠다고 몸부림치던 그 날의 기도처럼, 나의 하루하루의 삶이 주님을 위한 것이기를 오늘도 간절히 소원해 본다.
위 글은 교회신문 <6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