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간염 혼수상태... 말씀의 빛이 나를 깨워

등록날짜 [ 2005-06-03 11:30:10 ]




이렇게 죽는 거구나
“어떻게 혼자 왔습니까? 이미 간성혼수상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 2-3일 내에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요. 오늘밤이라도 당장 응급입원을 하세요. 절대로 혼자 있으면 안돼요.”

급성간염을 앓은 것이 벌써 4개월째였다. 계속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고 했는데도 GOT, GPT(간효소수치)가 500을 넘어서버렸다. 정상인이 40미만이니 자칫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온 것이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마치 수렁에 빠져들듯 온 몸이 땅속으로 꺼져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기도를 하려 해도 아무말도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 사람이 이렇게 죽는 거구나.'
남편이 흔들어 깨워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의사가 한 말을 남편에게 전하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직장 동료가 급성간염으로 3일 만에 사망한 적이 있어 사태를 짐작한 남편이 안절부절 못하고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녘에 교구목사님을 모셔왔다.

“왜 이런 병이 왔는지 짐작 가는 것이 없으세요?"
교구목사님의 말씀에 정신이 들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삶이 있는지부터 되짚어보시는 신앙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 순간 내 마음을 찌르는 것이 있었다.
사실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는 집사로, 기관장으로 열심이었지만 가정생활은 그렇지가 못했다. 시부모님과 한동네에 살고 있으면서도 시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일년이 넘도록 시댁 출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삶이어서 마음 한 구석은 항상 괴로웠었다. ‘나도 하나님 말씀대로 못 살면서 어떻게 구역식구와 기관식구들에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신앙양심의 가책도 느꼈었다.

깊어가는 고부간의 갈등
결혼한 지 10년. 매사에 시부모님과는 생각이 달랐다.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 식으로 무조건 순종하는 며느리였으면 좋은데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나는 늘 현대인의 사고와 합리주의를 내세워 시어머니에게 따지기를 잘 했다. 겉으로는 고부간의 갈등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나가는 척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원망과 미움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의 골이 더 한층 깊어진 것은 시할머니의 병색이 짙어지면서부터였다. 모진 시집살이에 지치신 탓인지 시어머니는 시할머니의 병구완을 내게 맡기셨다. 더군다나 시어머니가 직장에 다니다 보니 때맞춰 시할머니의 대소변 받아내는 일은 모두 내 차지였다. 어르신을 모시는 것이 복 받는 일인 줄은 알지만 우선 힘에 버겁고 괴로우니까 불만불평이 쌓였다. 게다가 고생을 모르고 자라온 내게는 대소변 수발을 드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시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나자 ‘요즘 시대에 나만큼 시댁에 잘한 사람이 어디 있어? 시부모님이 해야 할 일을 내가 다 한 셈이야!’라며 온갖 생색을 다 내다 결국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시댁에 발길을 끊고 말았던 것이다.

뉘우침, 죄의 사슬에서 자유
교구목사님께 지난날의 나의 모습을 눈물로 고백했다. 나도 처음엔 시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었다고...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온 삶의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친정부모처럼 애틋한 정을 느끼지 못했다고... 어려워서 피하고만 싶었었다고....
목사님께서는 성경을 여러 군데를 읽어 주시며 우리 부부의 부족한 모습을 깨닫게 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


고난의 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회개하고,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고치시고 치유하신다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리고 예배를 드렸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했으나 그것이 얼마나 외식에 가득 찬 것이었는지, 부모님과 하나님께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깨닫고 예배를 드리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게다가 급성간성혼수로 언제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고 보니 절박한 심정에 제발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다. 교만하고 오만했던 추악한 모습을 벌거벗듯 주님 앞에 내놓고 창피한 것도 모르고 엉엉 소리 내면서 울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마치 비디오를 켠 듯 시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교회에 다닌다고 날마다 핍박하고 성경책을 들이대며 매사에 따지시던 시아버지. 그런 시아버지에게 말대꾸 한 번 못하고 밤마다 성전에 가서 기도하시던 시어머니. 당신의 남편에게는 살가운 사랑 한번 못 받으면서도 자식들 가르치겠다고 평생 직장생활로 허덕이며 살아온 시어머니!
김종선 사모님이 내게 기도해주시던 때의 기억도 생생히 떠올랐다.
“주님, 강씨 가문을 살리는 며느리가 되게 하옵소서!"
과연 내가 그 기도에 응답받을 만큼 복된 마음 밭을 가꾸며 살아왔던가? 남편을 낳으시고 길러주신 분들인데... 부모의 마음은 항상 자식을 향해 있는데... 그런 시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구속받고 간섭받는 것 같아 얼마나 많이 원망했던가? 칼로 도려내듯 가슴이 아렸다.
“주님, 제가 죽일 년입니다. 제가 죽일 년입니다!”
뼈저린 뉘우침의 고백이 뜨거운 눈물과 함께 그치지 않고 흘러나왔다.
“부부는 한 몸이니 남편께서도 뼈를 깎는 아픔으로 회개하세요."
교구목사님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의 두 눈에서도 어느새 두 줄기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날이 밝아오자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 시부모님을 찾아뵈었다. 시부모님께서는 너그러이 우리의 잘못을 덮으셨다.
“앞으로는 서로 잘하고 화목하게 지내자.”
목이 매여 한참을 울었다.
부모님께 용서를 빈 그날 이후, 기력이 없어 링거를 꽂긴 했지만 정신을 잃은 적은 없었다.
10여일 후, 수원 흰돌산수양관에서 열리는 장년부성회와 직분자 세미나에 연이어 참석했다.
강사 윤석전 목사님께서 말씀의 빛으로 서치라이트를 비추듯 나의 죄악을 여실히 드러내주셨다. 그간 고부간에 하나 되지 못하게 하고 가족간에 사랑하지 못하도록 내게 역사했던 이간질하는 마귀 역사를 예수 이름으로 강력하게 몰아내주실 때 “아멘!"으로 화답하자 가슴속이 뻥 뚫린듯 시원해졌다.
상복부에 마치 큰 돌이 올려진 듯한 무거운 압박감도 풀어졌다. 상쾌했다. 정신이 맑아졌다. 주님이 간섭하시고 고쳐주심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계성회에 다녀온 후 병원을 찾았다. 한 달만이었다. 그런데 GOT, GPT 검사를 마치고 진료실로 들어갔더니 담당 의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했다. 그리고 차트를 여러 차례 뒤적이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GOT, GPT 수치가 500에서 150으로 떨어졌습니다!” 혹시 지난번 검사가 잘못돼서 GOT, GPT 수치가 잘못 나온 게 아니었을까요?”
의사가 오히려 내게 반문을 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신 거에요"
나의 말에 더욱 어리둥절해하는 의사에게 “예수믿으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GOT, GPT수치는 지극히 정상인의 수치인 20이 되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주위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겪는 젊은 부부들을 보면 나는 뼈아픈 체험을 바탕으로 권면해준다. 시부모님으로부터 좋은 환경을 물려받고 싶어하지만 과연 얼마나 그분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느냐고, 조금만 더 이해하고 효도하라고, 우리도 자식 낳고 길러보니 이렇게 소중하지 않느냐고, 시부모님도 우리의 남편들을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라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오늘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이루었나 되돌아본다. 그리고 시부모님께 고백한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

위 글은 교회신문 <7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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