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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이라니!
3년 전, 나는 집안 일로 인해 극도로 신경을 쓰던 중 심신이 쇠약해져 쓰러지고 말았다. 가까스로 의식은 되찾았지만 뜻밖의 해괴한 증상이 찾아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부들부들 떨리고, 입에서는 원인 모를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의사들은 원인을 못 찾겠다며 신경안정제만 자꾸 놓았다. 9대를 연거푸 맞아도 증상이 가라앉지 않자 의사는 혀를 차면서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가슴속에 한 맺힌 여자귀신이 들어앉아서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계속 울어댄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됐고,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손짓발짓해가며 알렸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정신이 나가더니 이제 헛소리까지 한다”며 남편은 퇴원하는 대로 바로 정신병원으로 가자고 야단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온 큰아들은 나를 보더니 통곡을 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불효 탓이라며 오십 줄에 앉은 아들이 통곡하는 모습은 나의 가슴을 더욱 미어지게 했다. 밤새 한잠도 못잔 채 날이 밝았다. 퇴원수속을 마치면 곧바로 정신병원으로 가게 될 기구한 운명의 시간. 그런데 바로 그 때 뜻밖에도 큰며느리가 연세중앙교회 교구장과 함께 병실로 들어섰다.
기도로 귀신을 쫓아내고
시집온 지 10여 년째인 큰며느리는 그간 예수 믿는다고 우리 집안 식구들에게 핍박을 많이 받아오던 터였다. 그러다가 지난 밤에 제 시누이에게 “아무래도 어머니 증상이 교회 사람들에게 기도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병실로 온 것이다.
당시 아들 내외는 서로 다른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문제로 충돌이 잦았었다. 그래서 전혀 다른 교회에서 신앙의 새 출발을 해보라는 가족의 권면을 받아들여 교회를 물색하던 중, 가장 은혜롭다고 꼽은 교회가 연세중앙교회였다. 며느리가 먼저 등록한 상태라 교구장을 모셔온 것이다. 한동안 서로 대화가 없었던 아들 내외가 나의 병실에서는 하나가 됐다.
“어머니, 교구장님이 기도하면 아멘, 아멘 하세요.”
“맞아요, 아멘을 크게 하셔야 해요.”
부창부수(夫唱婦隨)로 내게 단단히 일러줬다. 연세중앙교회 교구장은 단번에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귀신을 내쫓는 기도를 해주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나의 사정을 알아주는 분의 간절한 기도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아멘! 아멘!” 소리가 병실이 떠나가라 질러댔더니 그 길로 그 망측한 귀신역사가 깨끗이 사라지고 정상의 몸이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큰아들 내외, 나 그리고 큰딸까지 연세중앙교회 교인이 됐다. 큰아들 내외는 십 수 년 핍박만 받다가 가족들과 같이 교회 가는 것이 좋아서, 나와 큰딸은 아들 내외가 올바른 신앙으로 하나 되는 것이 좋아서, 매주일 빠짐없이 예배를 드렸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 가족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큰 딸의 병을 고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큰딸(전명순 성도)에게 놀라운 은혜로 역사하셨다. 사실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하였을 당시 큰딸은 일생일대의 큰 고난에 빠져 있었다. 사업에 실패하면서 진 빚 때문에 심적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20여 년 동안 정육점을 낀 식당을 운영하면서 몸이 많이 안 좋았다. 어깨를 많이 써서 팔이 등 쪽으로는 조금도 돌아가지도 않았고, 무엇 하나 들어 올리지도 못했으며, 오른쪽 손가락 하나가 틀어져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X-레이 촬영 결과, 왼쪽 어깨는 힘줄이 죽어서 시퍼렇게 보인다며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해서 식당도 처분했다. 그렇다고 놀고 있을 형편이 아니라 다시 개업을 했지만 몸이 말을 안 들으니 늘 눈물이요, 한숨이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닌 지 두 달쯤 됐을 무렵, 설교 도중에 윤 목사님이 찬양을 부르시자 고달픈 인생살이에서 지친 마음이 위로받아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억눌렀던 마음의 응어리들이 찬양으로 녹아내려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만 것이다. 한참을 울다보니 왼쪽 어깨가 후끈거렸고 예배시간 내내 못 견디게 뜨거워했다. 이마와 온 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속은 메슥거려 토할 것 같다가 급기야 헛구역질까지 해댔다.
“아이고, 교회 다니다가 사람 죽겠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죽을 힘을 다해 참았다며 딸은 예배를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성전을 빠져나와 동생에게 하소연을 했다. 아들이 그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랐다.
“누님, 그거 하나님이 치료해주시느라고 그렇게 뜨거운 거야! 하나님이 어깨 아픈 것 깨끗히 고쳐 주셨어!“
나도 딸도 미덥지 않은 말이라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아들의 말이 사실이란 것이 확인됐다. 화장실 사용도 마음대로 못할 정도로 등 쪽으론 조금도 돌아가지 않던 딸의 왼쪽 팔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더니, 종이 한 장 들어 올리지 못하던 팔이 아무렇지도 않게 물건을 번쩍 들어올렸다. 병원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그날 당장에 고쳐버리셨다.
하나님께서는 큰딸의 육신의 병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근심 걱정에 짓눌렸던 마음의 병도 싹 고쳐주셨다. 딸네 식당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지역 기도모임을 하자 밤마다 꿈에 나타나 괴롭히던 수천 마리의 시퍼런 구렁이들이 모조리 집밖으로 나가는 꿈을 꿨다고 한다. 그 후 섬뜩섬뜩하던 무서움증과 근심 걱정으로 찌들었던 마음의 고통도 다 사라졌다. 특히 주일날 설교가 심령에 쏙쏙 들어오고 주일날이 기다려진다고 고백했다.
퇴행성 관절염을 고침 받고
큰딸이 영육간의 병을 다 고치고 얼굴빛이 환해지자 이번엔 아들이 나더러도 관절염을 고쳐버리라고 성화였다. 50대 초반부터 퇴행성관절염이 왔으니 25년째 앓은 병이다. 밤마다 송곳으로 콕콕 찔러대는 통증이 엄청났다. 자식들이 좋다는 것은 다 해줬다. 금침도 80대다 맞았고, 뼈 주사도 더 이상 맞지 말라고 할 때까지 맞았다. 3-4년 전부터는 아예 걸음도 못 걸어서 수술하려고 사진도 찍었지만 죽어도 수술만은 하고 싶지 않아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어머니, 정신병원에 갈 뻔했던 병도 고쳤잖아요. 다리 고치는 것은 그것보다 더 쉬워요. 윤석전 목사님이 ‘떠나가라’ 기도하실 때 제발 관절염 고쳐달라고 ‘아멘’ 하시라니까요!”
아들이 교회 올 때마다 성화를 했지만 오래 써서 닳고 닳은 퇴행성 관절염이 어떻게 낫는단 말인가?
그러다가 교회 다닌 지 1년이 될 무렵, 워낙 통증이 심해져서 견딜 수 없게 되자 하나님께 매달리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손으로 무릎을 잡고 윤석전 목사님이 “떠나갈지어다!” 기도하실 때 “아멘, 아멘” 하며 외쳐댔다. 순간, 무릎이 후끈하고 온 몸이 으쓱한 기운이 들었지만 그러나 보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로 퇴행성 관절염이 싹 나았다. 25년 앓았던 그 지긋지긋한 병이 재발도 없이 싹 나았다. 운영하는 독서실 3-4층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려도 끄떡없다. 우리 집에서 전철 역까지 장달음을 쳐서 오가도 하나도 아프지 않다. 벌써 2년째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가고 싶은 데도 다 가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와 같이 병원에 다녔던 관절염환자들은 내게 어디서 수술했느냐고 묻는다.
“하나님이 고쳐줘서 재발도 없습니다.”고 말하고 예수 믿으라고 전도도 한다.
퇴행성 관절염이 낫자, 하나님이 정말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사람도 만드신 분이란 것이 믿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이 먹어 닳고 닳아서 생긴 병이 어떻게 이처럼 멀쩡하게 나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확실히 믿어지니까 그제야 이방 종교가 다 헛되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인도해준 아들 내외가 너무 고맙다. 예전엔 교회 다닌다고 핍박도 많이 했는데 이렇게 연세중앙교회로 오게 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옳은 길을 가르쳐 주니 너무너무 고맙다. 아들, 며느리지만 보답할 길은 그저 눈물로 기도하는 일 뿐이다.
“주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해준 이런 좋은 교회에서 아들 내외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신앙생활 잘 하다가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만나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위 글은 교회신문 <7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