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행복한 성탄절을 기다리며

등록날짜 [ 2006-12-12 15:37:03 ]

하나님도 만나고 쌍둥이 엄마도 되고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의 성탄절을



● 자녀를 소망하는 결혼 5년차
작년 7월경, ‘혹시나’ 하고 산부인과를 찾았더니 ‘역시나’였다. 임신이 아니라 무배란증이었다. 단식하면 체질이 바뀌어 임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을 듣고 1주일이나 죽을 고생한 것이 오히려 임신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속이 상하다 못해 좌절에 빠졌다.
‘도대체 난 왜 이러나! 되는 것도 없네!’
시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셔서 걱정하실 일이 없지만 친정어머니는 유방암 말기로 언제 사망하실지 모르는 상황이라 꼭 좋은 소식 안겨드리고 싶었는데....
서른셋에 결혼 5년차. 구로구 궁동에 ‘창미술’ 학원을 개업해 3년째 운영하는 미술전공의 캐리어우먼. 작년까지의 나의 이력이다. 평범한 이력에 남다른 것이 있다면 결혼 5년차임에도 아직 엄마가 되지 못했다는 것.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앓은 후 두 번이나 유산을 한 이후 통 임신이 안 됐다. 좋다는 건 다 해봤지만 허사였다. 학원을 그만두고 아이 낳는 데만 전념할 생각으로 중개업소에 내놓았다. 하지만 번번이 계약이 취소되었고 그 사이에 학원생 어머니의 전도를 받아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하게 되었다.

●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그렇게 낙망하지만 말고 어머니 모시고 흰돌산수양관에 가보세요”
단식 후 암담한 나의 속내를 털어놓자 구역장의 권면의 말이다. 내겐 너무 무리다 싶었다. 주일날 단 한번 드리는 예배, 그것도 남편 잠깨기 전에 얼른 드리고 가는 형편인데, 휴가철에 성회를 가자고? 그것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병약한 어머니를 모시고?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교회 분들이 친정어머니를 자주 찾아가 심방해주시고 위로해주시니 뭔가 가슴에 찡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정말 나도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보자 싶은 마음이 생겼다. 석장이나 되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어머니를 설득시켰다. 반대하던 언니들도 한발 물러섰다. “평생 절에 다녀도 누구 한 사람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교회에선 저렇게 자주 찾아와 주시니 고맙구나. 바람도 쐴 겸 어머니 모시고 다녀오너라”고.

● 하나님 말씀으로 울고 웃으며
오천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이 많은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 이곳 흰돌산수양관이란 델 모여들었을까. 저들도 나와 어머니처럼 누군가 의지할 데를 찾아 이곳까지 왔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하나님이 그렇게 멀리 계신 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꼭 만나고 가자 싶었다. 교구장님과 구역장님이 안내해주는 대로 어머니를 모시고 앞자리에 앉아서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들었다. 정말 은혜를 받았다. 죄악 속에 사는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해주실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내 죄를 사해주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신 예수님께 가슴 깊이 묻어둔 죄를 꺼내어 회개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 파킨슨 씨 병으로 고생하시다가 외아들 며느리를 보셨지만 간병을 받으시기는커녕 되레 나 때문에 마음고생만 하시다가 멀리 아르헨티나 큰딸 네로 가셔서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지병으로 인해 불교로 개종하셨다가 수십 년 만에 그곳에서 재개종하시고 하나님 품에 안기신 것을 생각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불효한 죄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 회한이 가득한 마음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눈물로 쏟아놓으니까 가슴이 날아갈듯 시원하고 기쁨이 넘쳤다. 죄사함의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인가! 친정어머니는 나보다 더 은혜를 받으시더니 나보다 먼저 성령을 받으시고 방언을 말하셨다.
수천 명의 인파속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울고 웃으며 넘치도록 은혜를 받고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중병에 걸린 수많은 병자들이 고침 받으려고 몸부림치며 하나님께 다가가는데 임신 못하는 것쯤은 별 문제꺼리도 아니구나 싶었다.
3일 밤낮을 은혜 받고 집으로 내려오니까 세상이 달라보였다. 친정어머니도 나와 똑같은 느낌이라고 고백하면서 고이 간직했던 염주며 불상을 다 내다버리셨다. 그리고 바로 교회에 등록하신 후 63세에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다.

● 쌍둥이라구요?
성회에 다녀온 후론 임신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의사가 무배란증이라고 한데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9월 중순경, 하혈기가 비쳐서 병원에 갔더니 뜻밖에도 임신 5주라고 했다.
“예? 무배란증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이를 가져요?”
내가 무배란증이란 진단을 내린 담당의사가 한참이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임신 5주면 성회에 다녀와서 바로 임신이 됐다는 말인데, 무배란증인 사람이 어떻게 한 달도 안돼서 임신이 된단 말인지 의학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의사도 도무지 모를 일이라며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어쨌든 우리 집안은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런데 그 다음 주, 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중의 아이가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고 했다.
“예? 쌍둥이요?”
양가 아무도 쌍둥이가 없는 가정에서 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그 희박한 확률로 내 아이들이 우리집안 쌍둥이의 조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친정어머니는 병환 중에도 환하게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하나님은 정말 너무 재밌는 분이시다.”
정말 어느 누가 봐도 태중의 아이가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의 작품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확실하게 역사하셨다.

올해 1월 초에 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주무시듯 천국에 가셨다. 병원에서는 벌써 세상을 뜨셨어야 할 분인데 참 오래 사셨다고 말한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어머니는 목사님 말씀 테이프를 귀에 꽂고 은혜 받으셨다. 불신자인 큰언니도 어머니가 마지막 쇠진한 기운을 다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얼마나 사모하고 교회분들의 심방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그 믿음의 여정을 알기에, 하나님 믿는 사람의 주검은 이다지도 환하고 남다른 거냐고 감탄하며 어머니가 간직한 믿음을 마음으로 흠모하는 모습이다.

● 쌍둥이랑 남편과 함께 드릴 성탄예배를 꿈꾸며
나는 요즘 쌍둥이 엄마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바쁘게 지낸다. 그 바쁜 중에도 얼마 남지 않은 성탄절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작년 성탄절 내 마음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그 행복한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예전에는 성탄의 의미도 모른 채 남편과 맛있는 것 사먹으면서 하루를 보냈는데 그때서야 성탄절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해주기 위해 죽으시려고 고의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날인 것을 알았다. 내 생애 그렇게 행복한 성탄절은 처음이었다.
올해는 쌍둥이랑 사랑하는 남편이랑 함께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하고 싶다. 우리에게 생명주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그분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또 한 번의 행복한 성탄절을 기다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10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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