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들의 권유로 찾은 연세중앙교회... ‘종합병원’이던 몸 건강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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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겨울에 갑자기 하혈을 하기 시작하더니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며칠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갈수록 심해져서 몸속에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 콸콸 쏟아졌다. 의사들도 원인을 못 찾겠다며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병원을 옮겨서 재검진을 받았다. 초음파상으로는 자궁으로 계속 피가 고여 드는데도 역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러다 죽나 보다’ 싶었다.
하혈이 한 달가량 계속 되자 25년째 앓고 있던 허리디스크까지 극심한 통증을 동반했다. 10미터에 한 벌 꼴로 ‘으악’ 소리 내며 주저앉곤 했다. 마음 같아서는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널 것 같은데 늘 도로를 건너기 전에 저절로 주저앉아버려 툭 하면 운전자들에게 욕을 먹곤 했다. 얼마나 디스크가 심했는지 무릎 연골이 다 녹아내렸다고 했다. 그랬다. 정말 난 종합병원이라고 할 만큼 온몸이 질병덩어리였다. 그런데도 병원 한 번 가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벌기에 바쁜 나를 사람들은 미련하다고 했다. 아들 둘을 대학 졸업시킬 때까지는 어떤 고통이 와도 이를 악물고 살리라는 결심이 나를 그런 상태로 내몰았던 것이다.
직업군인인 작은아들이 집에 왔기에 고통을 호소했더니 대뜸 “어머니, 빨리 연세중앙교회에 가세요”라고 했다. 작은아들은 평일에는 군부대 교회에서, 주일에는 연세중앙교회에서 몇 년째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20년넘게 신앙생활한 나는 무늬만 집사일뿐 주일날도 예배드리고 장사하러 갔고 교회에서 변변히 충성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나의 상태가 사람의 인내로 버텨낼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른 것을 느낀 작은아들은 그 자리에서 나를 연세중앙교회로 데리고 갔다.
연세중앙교회에 처음 간 날, 화장실에 들락거리느라 맨 뒷자리에 앉아 간간히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들었는데 구구절절이 내게 하시는 말씀이었다. 주일성수도 못하고 충성도 못하고 하나님 앞에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내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다음날이었다. 하루에 패드를 40여개씩 사용할 만큼 심하던 하혈이 30개로, 다음날은 20개로 점점 줄어들더니 한 달 보름만에 거짓말처럼 말끔해졌다.
하지만 소리지를 만큼 아픈 다리의 통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연세중앙교회 다닌 지 3년만에 등록교인이 된 후로는 사정이 달랐다. 사실 작은아들이 지방으로 발령나면 따라갈 생각으로 등록을 하지 않았는데 아들이 그 자리에 계속 있게 돼자 작은아들과 나란히 등록을 했다. 정식교인이 되고 나나니까 교구기도모임에 참석해서 뜨겁게 합심기도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전도하려고 교회신문 ‘영혼의 때를 위하여’를 집집마다 전해주었다. 그런데 정말 10미터만 걸으면 주저앉을 만큼 아프던 다리가 신문을 꽂아두던 그날부터 100미터를 걸어야 조금 아플 정도였다. 그 다음부터는 윤석전 목사님이 설교 끝에 질병 치유하는 기도를 할 때면 ‘오늘 아픈 다리 꼭 낫고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멘’하고 신문전도도 계속했더니 올 3월부터는 다리 통증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할렐루야!
나는 요즈음 하나님께서 종합병원이던 내 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치유하고 계시는 것을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 아들의 권유에 못 이겨 연세중앙교회에 온 지 어느덧 4년, 만약 그 때 아들의 손에 이끌려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들을 통해, 생명있는 교회 만나게 하시고 믿음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11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