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들의 섬김에 마음문 열려

등록날짜 [ 2007-05-07 14:42:39 ]

뇌졸중 아내 업고 수년간 예배 참석시킨 직분자에 감동

올해 79세인 나는 뇌졸중으로 1급 편마비 장애를 가진 아내의 뒷바라지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로 낙을 삼으며 하루하루 감사속에 살고 있다. 만약 5년 전 연세중앙교회 직분자들이 우리 집을 방문해서 전도해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문전박대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친절하게 아내를 교회로 업고 와서 예배드리도록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와 아내가 지금 이렇게 마주하고 있을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감사가 절로 나온다.
공자님의 후손으로 곡부 공씨 21대 종손인 나는 종친회 수석 부회장을 수십 년씩 지내고 한동안 성균관에서 유학을 가르칠 정도로 철두철미한 유교적 생활철학을 기반으로 칠십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내가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크리스천이 된 것은 병석에 있는 아내와 연세중앙교회 직분자들 때문이다.
아내는 10년 전 고혈압과 당뇨로 인해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편마비가 왔다. 수족을 거의 쓰지 못하고 정신도 온전치 못하게 된 아내에게 건강을 되찾아주려고 열세 군데 병원을 전전하며 7년에 걸쳐 재활치료를 받게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결국 2002년에 퇴원을 했고 그 후로는 내가 아내의 손발이 되어 보살피고 있다.
연세중앙교회 직분자들이 아내를 전도하기 위해 우리 집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아내가 퇴원하던 해 가을께부터였다. 당시 이노희 교구장이 바람도 쐬어줄 겸 주일마다 아내를 교회로 데리고 가겠다고 하기에 몇 번 문전박대를 하며 거절했다. 의사가 퇴원할 때 절대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의를 준 데다, 수족을 못쓰는 사람을 외출시키려면 업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등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노희 교구장은 끝내 자기들이 책임지겠다며 아내를 교회로 데리고 갔다. ‘몇 번 그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도 따라나섰다. 그러나 연세중앙교회 직분자들은 몇 개월째 주일마다 정확히 제 시간에 우리집을 방문해 아내를 교회로 데리고 갔다. 해가 바뀌어 직분자가 교체되었지만 새 지역장의 남편까지 나서서 아내를 업고 교회로 데리고 가는데는 내심 놀라웠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편에서는 ‘설마 교회 사람들이 해 봐야 얼마나 더 하겠냐’는 생각에 마음의 문을 좀처럼 열지 않았다.
굳게 닫혔던 나의 마음이 여지 없이 활짝 열린 것은 아내와 내가 침례를 받던 때였다. 2003년 3월인데 아직 날씨가 쌀쌀하기도 했지만 병자인 아내가 침례를 어떻게 받을까 싶어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아내의 차례가 되자 지역장의 남편이 양복차림 그대로 물 속으로 들어가더니 아내를 뒤 쪽에서 안아 줘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마음속에 버티고 있던 커다란 기둥이 여지 없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새해가 되자 새롭게 우리 가정을 담당한 지역장의 남편도 역시 매주 우리집을 방문해서 아내와 나를 교회로 데리고 갔다가 예배 후에는 노량진까지 데려다 주었다. 조성군 안수집사였다. 당시 조성군 안수집사는 궁동 대성전 건축본부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데도 한 주도 빠짐없이 2년 동안 우리를 그토록 애지중지 섬겨주더니, 요즘엔 조동수 집사가 바통을 이어 우리 내외를 잘 섬겨준다. 그렇게 직분자들에게 빚 아닌 빚을 지고보니 예수를 잘 믿는 길밖에는 그 빚을 갚을 길이 없다 싶었다. 그래서 이왕 예수를 믿을 바에야 윤석전 목사님이 전해주는 복음의 핵심 그대로 행동하며 살리라 결단하게 됐다.
그래서 집안의 종손으로서 내가 책임져야하는 시사를 폐할 결심을 굳혔다. 예전엔 유교사상에 젖어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이 진정 조상을 위하는 일인 줄 알았지만 기독교의 본질적 사상을 깨우치고 보니 제사가 악한 영들에게 속아서 자손 삼사대가 저주받을 행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나는 선산의 조상 묘를 모두 합장하여 정리하고 종친들에게 더 이상 내게 해당되는 시사는 지내지 말라고 선언했다. 종친들 사이에 말도 많았지만 나의 결심은 확고했다.
요즘 나의 일과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아내와 함께 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삼일예배날은 틀림없이 오후 2시에 우리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구역예배는 10시에 드리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아내도 나도 예배드리는 날, 교회가는 날을 준비하고 기다리게 된다. 남들이 볼 때는 사업도 망하고 아내도 병들고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도대체 어떻게 사는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론 나 자신도 내가 이렇게 평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란 것인가. 내 나이 80세가 다 되다 보니 아내를 돌보는 것이 때론 기력이 딸려 피곤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얼굴 맞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또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할 그 날이 있기에 더욱 감사할 뿐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1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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