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07-09-14 10:23:24 ]
▶ 우상숭배 버리니 은사까지 체험 |
완강하셨던 부모님 추석성회 참석하여 구원받고 질병에서 자유 2004년, 친구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그해 12월에 경기도로 이사해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자연히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런 중에 여러 가지 환경의 문제들과 내 불투명한 미래와 수많은 짐들이 나를 짓눌러와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우울증세로 힘들어하던 나는, 2005년 겨울에 고향후배의 권유로 연세중앙교회에 처음 오게 되었다. 교회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기에 몇 번을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러나 처음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는데 모든 말씀이 전부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져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다. 충격적인 말씀에 은혜를 받고 보니 거리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쌓이자 주일 성수를 하게 되었고, 교회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눈물로 찬양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 우울증세가 사라졌고 긍정적인 자세로 바뀌게 되었다. 연세중앙교회에 다니면서 너무나도 밝은 모습으로 변화된 나의 모습을 보신 부모님은 내심 기뻐하셨다. 그러나 친정 부모님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숭배가 죄인 줄을 모르셨기에 명절에 차례를 지내고 제사를 지내며 살아오셨다. 그해 6월 11일은 총동원주일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부모님을 구원해야겠다는 생각에 기관식구들에게 기도부탁을 하고 나도 열심히 기도를 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완강하신 아버지를 볼 때마다 정말로 나의 초대에 아버지가 응해 주실까, 또한 어느 날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 복용하는 약만으로도 배가 부를 정도로 아프신 어머니가 교회에 오실까 하는 조바심이 생겼다. 그래서 더욱 부르짖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충동원주일 날 부모님은 예배에 참석하셨고 등록까지 하셨다. 하나님의 역사는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해 어머니는 그때까지 먹던 그 많던 약을 믿음으로 버리고 추석성회에 참석했다. 그동안 몰라서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뜨겁게 회개하고 방언은사를 받았으며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지금은 너무나도 건강하게 신앙생활하고 계신다. 할렐루야! 어디 그뿐이랴! 2007년 장년부 하계성회에 참석하신 아버지는 전립선 암 초기로 자주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데 긴 예배 시간을 너끈히 견디시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질병으로 어두웠던 얼굴이 환하게 바뀌셨다. 우리 가족을 죄 가운데서 건지시고 이곳 연세중앙교회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정말로 감사드린다. 지금 우리 가족이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기도와 순종으로 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 물질에 매였던 과거 회개하며 기쁨찾아 |
내가 만난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에게도 체험되기를 간절히 소원 교회는 19세 때부터 다녔으니까 햇수로는 수십 년 신앙생활한 셈이다. 하지만 심한 하혈로 인해 몸이 좋지 않자 능력 있다는 분을 찾아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느라 정작 믿음은 자라지 않았다.
몇 년 전에는 남동생의 사업이 망하자 보증을 섰던 우리 가정도 물질적으로 무척 힘들어졌다. 올 1월에 불교신자였던 남편이 연세중앙교회 박우청 집사님의 전도로 하나님을 믿게 되고 미신을 숭배하던 삶을 완전히 버리고 새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아들이 교통사고로 입원을 하게 되자 반발심에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교구장님과 지역장님, 그리고 박우청 집사님의 헌신적인 섬김으로 인해 마지못해 이번 장년부 하계성회에 참석하게 됐다. 성회참석하면서 무엇보다 물질적 축복을 받고 싶었던 내게 하나님께서는 첫 예배부터 회개를 먼저 시키셨다. 물질이 없다고 치매 걸리신 어머님을 보살펴 드리지 못했고, 딸의 월급을 몽땅 생활비로 쓰면서도 자식들에게 늘 불평과 불만으로 짜증을 냈던 잘못 살았던 지난날의 나의 모습을 눈물로 통곡하게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더럽고 추한 내 마음을 깨끗케 하시고 성령이 임하시고 방언의 은사까지 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안하고 기쁨이 넘쳤다. 그렇게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자 아직도 몸이 다 회복되지 못해 앉아 있기도 힘든 아들을 청년부 하계성회에 참석시켰다. 내가 만난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들에게도 만나게 하고 싶었다. 앞으로 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얻고 새롭게 변화되어 주님의 큰 일꾼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 침샘에 박혀있던 돌 튀어나와 |
체험 없던 신앙 끝나고 ‘나의 하나님’ 눈물로 고백합니다 7월 중순. 너무 아팠다. 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던 오른쪽 어금니쪽의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손 닿는 곳에 칼이라도 있다면 내 손으로 어금니 밑부분을 그어대고 싶을 정도였다. 동네 병원에서 1주일간 처치했지만 침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음식을 먹지 못한 채 1주일을 고생하다 마침내 K종합병원을 찾았다.
“침샘에 1cm짜리와 3mm짜리 돌이 박혀 있어요. 돌이 침샘분비를 막아 안에서 침이 곪았기 때문에 통증이 심했을 겁니다. 항생제 투여해 염증을 가라앉히고, 돌이커서 전신마취 후 목부위를 절개해 돌을 빼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안면 마비가 올 수 있지만 6개월정도면 회복될겁니다.” CT촬영과 각종 검사 후 담당의의 말이었다. 1Cm짜리 돌조각이 그토록 날 뒹굴게 했던가. 열흘정도 입원해 염증을 치료하고 수술하라는 권고 대신 퇴원했다. 다음 주면 장년부 하계성회인데, 나는 이번에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온 가족이 함께 참석해서 은혜 충만, 성령 충만 받기로 작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퇴원 후, 주일학교성회에 기관장의 권유로 수양관 충성을 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하는 충성이었는데, 쓰레기 분류하는 일이었다. 한 청년이 미소 띤 얼굴로 충성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저 나이에 놀러다니기에 바빴었는데.... 장년부 성회 기간 내내 눈물로 회개했다. “주님, 나의 교만함과 가치관, 생각 모두 부숴 버리고, 오직 성령님으로만 충만케 하소서...” 장년부 성회 후, 생업과 관계된 직장문제를 뒤로 미루고, 하계성회가 끝나는 8월까지 충성하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이력서를 냈던 좋은 직장들에서 연락이 왔지만, 거절하고 충성하러 수양관을 향했다. 너무 감사했다. 비록 쓰레기 청소와 분리수거는 냄새나고 더러웠지만 이렇게 충성할 수 있는 건강 주심이 감사해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감사함으로 충성하며 지낸 직분자 성회 셋째날! 여느 때처럼 쓰레기를 치우고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오른쪽 턱밑쪽이 아파왔다. 그동안 놀랍게도 성회기간 동안 밥도 먹고, 아프다는 생각 없이 지냈는데..., 끔찍한 고통이 시작되는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곧바로 마음을 다잡고 손가락으로 아픈 부위를 문지르며 방언으로 기도를 하였다. 그러다 문득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생각났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 말씀을 믿으면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암병도 낫는다”고 하셨는데 나도 그 말씀을 붙잡으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 생각이 나자마자, 거짓말처럼 입안에서 뭔가 빠지는 느낌이 들면서 혓바닥 위에 뭔가가 굴러다녔다. 돌이었다. 손바닥 위에 그 돌을 놓고 얼마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믿음이 약한 내가 의심할까봐 눈으로 직접 확인케 함으로, 정말 거짓말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주님은 세심하게 역사하신 것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돌은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크기였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예배 시작할 때마다 부르던 이 찬양에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흐른다. 피상적으로 듣던 설교 말씀의 느낌이 다르다.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 눈물밖에 안 나온다.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 많이 받았다. 이제부터는 주신 체험을 평생 간직하고 의심하지 않으며, 기도하며, 충성하며 찬양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주님 살아계심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증거하며 감사함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 |
위 글은 교회신문 <11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