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수술 2년 만에 또 설암이라니!
2006년 3월 무렵, 아내가 결국 설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처음 혀 밑에 좁쌀만 한 종양이 발견됐을 때 바로 수술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내가 자궁암 수술을 받은 것이 86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것이 2002년, 2005년도에는 설암(舌癌)선고까지 받고 보니 아내도 나도 암 수술 자체가 무섭고 두려워서 한약으로 치료하려던 것이 일 년 사이에 병을 더 키운 꼴이 되고 말았다. 혓바늘만 돋아도 통증이 심한데 혀 밑에 종양이 커다랗게 자라나 아예 혓바닥을 밀어젖히고 흉측한 형체를 드러냈을 때는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는가! 의사는 혀의 3분의 2가량을 잘라내고 허벅지 살로 혀 이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후엔 혀가 잘 안 움직여 말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는데 그나마 살 확률이 50% 남짓이라는 말에 아내는 “얼마나 더 살겠다고 혀를 잘라요. 이대로 살다가 죽을래요.”라며 수술받기를 거부했다.
30여 년 동안 굿과 불공으로
30여 년 인쇄소를 운영하면서 매월 초사흘 날이면 굿판을 벌이거나 전국의 유명 사찰을 다니면서 불공을 드리던 터라 병원치료를 안 받을 거면 이참에 절로 들어가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수소문 끝에 침술과 뜸이 용한 스님이 계시다는 춘천 모 사찰을 찾았다. 권사이신 팔순 노모는 눈물로 만류했다. “하나님께 기도드려야지 왜 절로 가느냐?"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가는 길이 다릅니다."라며 짐을 꾸렸다.
기암절벽의 경치 좋은 산골짜기에 지어진 사찰에서 불공을 드리고 스님의 처방대로 침 맞고 뜸을 뜨고 암에 좋다는 온갖 진귀한 것을 다 해다 먹이느라 2~3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속세를 떠나 모든 것을 잊고 지내니까 스트레스가 확 풀어지는 것 같았다. 아내의 병세가 어지간하면 그 사찰을 사서 여생을 거기서 기거하려고 주지 스님에게 얼마면 팔겠느냐는 말을 건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찰 매입 의사를 밝힌 그날 저녁 아내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됐다. 아내의 입 안은 시퍼렇다 못해 불그죽죽하게 살 썩은 빛을 한 종양 덩어리로 가득 차 버렸다.
급히 서울로 올라와 병원으로 갔더니 주치의가 호통을 쳤다. 그렇게 위급한 환자가 몇 번을 전화해서 오라고 할 때는 안 오더니 왜 이제 와서 그러냐고, 당신 같은 사람은 치료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치료할 환자 많으니까 어서 가라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얼른 병원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 번만 받아달라고 간절히 빌었더니 의사는 겨우 마음을 돌리고 아내의 상태를 살폈다.
설암 4기! 상태가 위급해서 수술할 수도 없는 상태이니, 우선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좋아지면 그때 혀 절제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암은 혀가 움직이는 부위라 방사선 치료가 잘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같이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되면 병원에서도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기도 한번 받고 싶어요”
설암에는 약도 없어서 생으로 통증에 시달리느라 아내는 거의 실신 상태였다. 입원날짜를 받아놓고 집으로 돌아오자 통증과 두려움에 뜬 눈으로 날을 새운 아내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여보, 이제 내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네요. 무섭고 두려워요. 아무리 굿을 하고 불공을 드려봐도 소용이 없으니 마지막으로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님께 기도 한번 받아보고 싶어요.”
한 달 전쯤, 춘천 사찰에 있을 때 이종사촌 동생인 최 목사가 우리 부부를 만나자고 하더니,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님께 기도 받지 왜 절로 들어갔느냐고 야단이었다. 연세중앙교회는 내가 운영하는 원일 인쇄소의 20년 고객이어서 윤 목사님께 직접 전도를 받은 적도 여러 번 있다. 교회사무실 안수집사도 아내의 소식을 듣고는 몇 번이나 목사님께 기도 받기를 권했다. 그러나 온통 미신과 불교에만 마음이 뺏겼던 나는 누구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나 죽음을 목전에 둔 아내의 마지막 소원이 기도 받는 것이라니 얼른 그러자고 했다.
2006년 7월 2일, 아내와 나란히 연세중앙교회 예배당에 앉아 저녁예배를 드리니 만감이 교차했다. 외가로는 목사가 여럿 배출된 뿌리 깊은 기독교 집안이고, 나도 어린 시절에는 교회에 다녔는데 30여 년을 미신과 불교에 빠져 살다가 현대의학으로도 고치기 어려운 병든 아내와 함께 하나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고 생각하니 ‘돌아온 탕자’ 같은 기분에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특히 춘천의 사찰을 사들이려고 주지와 상의하던 그날 아내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한 것을 생각하면 ‘어쩜 하나님께서는 죄의 수렁에 빠진 나를 건지시려고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 아내가 병든 것이 나 때문인 것 같은 생각에 하나님이 더욱 두렵기만 했다.
윤 목사님께 기도 받고 나자 아내는 오랜만에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기왕 하나님께 매달리기로 작정했으니 윤석전 목사님이 강사로 서는 장흥 집회도 따라가자고 했다. 어차피 병원에 가려고 한 날짜까지는 며칠 여유가 있기에 내친김에 차를 전라남도 장흥 집회 장소로 몰았다. 우리 부부를 발견하신 윤 목사님께서는 깜짝 놀라시더니 설교를 마칠 때마다 아내의 자리로 오셔서 간절히 기도를 해주셨다.
기적 중의 기적!
윤 목사님께 자주 기도를 받아서인지 말기 암 환자가 내리 4일을 연속 성회에 참석하고서도 힘들다는 말이 없이 오히려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어느새 믿음이 생겼는지 마음이 평안하다며 밝은 표정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머리카락이 빠질 거라고 두려워하던 항암주사를 맞을 때도, 방사선 치료를 할 때도 마치 수십 년 기독교를 믿은 사람처럼 시간시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아내가 하나님을 믿은 것은 짧은 시간이지만 큰 믿음을 가진 분들의 기도 덕분에 기도의 응답은 무척 빨랐다. 암이 얼마나 전이 됐는지를 알아보려고 MRI와 CT 촬영을 했는데, 뜻밖에도 설암 4기임에도 양쪽 임파선에는 전혀 전이가 되지 않았다는 결과였다. 의사들은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정말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계신 것 같았다.
열흘 후 더욱 기막힌 기도 응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장흥성회까지 따라가서 윤 목사님께 기도 받은 지 2주가 되었을 무렵이고 항암주사는 2번 정도 맞았을 때였다. 새벽녘에 아내가 자다 말고 울면서 나를 불렀다. “이것 보세요, 입 안의 종양이 없어졌어요.” 아내의 입 안을 들여다보니 정말 입 안 가득 차지하고 있던 종양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어제 저녁까지도 분명 그렇게 고통을 주던 종양이, 문병 온 사람들마다 죽을 사람이지 살 사람이 아니라고 하던 그 고통의 암 덩어리가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너무나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담당 의사들과 주치의들 모두 깜짝 놀라면서 “설암 4기 환자가 2주 만에 이렇게 호전을 보인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라고 했다.
어느새 우리 부부가 하나님을 섬긴 지 일 년 육 개월째다. 지금 아내는 건강한 몸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다. 단지 침샘이 아직 정상이 되지 않아서 불편한 점이 있다. 의사에게 그 점이 불편하다고 했더니, 아내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당신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 중의 기적인 사람이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해야 할 사람이 침이 잘 안 나온다고 불평하시오?” 하면서 나무란다. 아내를 보는 사람마다 모두 죽는다고 했는데 그런 아내가 멀쩡히 살아서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이 꿈만 같다. 하지만 죽을 사람도 살려주신 하나님이시니까 침샘도 곧 고쳐주실 줄 믿는다.
우리 부부를 믿음으로 인도해주신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님과, 사무실 안수집사님, 항상 집까지 찾아와서 기도와 예배로 사랑을 베풀어 준 교구장님 지역장님께 지면을 빌려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못난 자식을 위해 기도해주신 팔순 노모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죄악에 빠져 살던 탕자를 살려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12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