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달래려고 날마다 술을 마시다가
내가 열여섯 살 때였다. 삼재(三災)가 끼였으니 용띠인 아버지와 나, 남동생 셋 중 한 사람이 집을 나가지 않으면 상(喪)을 당하게 된다는 점쟁이의 말 한마디에 나는 하루아침에 집을 떠나 혈혈단신 객지생활을 해야 했다. 가족과 떨어지자 밤마다 외로움과 서러움에 울며 지내다가 열아홉 살 때 가난한 집안의 맏이인 서른 살 노총각에게 시집을 갔다. 남편은 건축현장 일로 늘 지방으로 돌아다녔고 나는 홀시어머니와 시동생 둘, 시누이 둘 틈에서 시집살이를 했다. 아이라도 일찍 생겼으면 좋았으련만 결혼한 지 수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아 시어머니의 구박이 심했다. 이래저래 외롭고 서러운 마음을 달래려고 한 잔 두 잔 술을 마셨다. 분가해서 혼자 살면서는 아예 밤마다 술을 벗 삼고 술을 남편 삼아 살다 보니 어느 틈에 알코올 중독이 되고 말았다. 결혼 10년 만에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술은 뗄 수 없는 나의 삶이 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악한 영까지 덮쳐
일주일이면 5일은 항상 술에 취해 지내다 보니 급기야 악한 귀신에게 붙잡히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무당집에서 파출부로 일할 때였는데 무당의 말이 “며칠 후에 좋은 일이 있을 거다”고 하더니 내게 귀신이 들어온 것이었다. 시커먼 귀신들이 휙휙 지나가는 것이 보이고, 귀신들이 내 입을 통해 말도 했다. 내게 해괴한 변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지방에서 일하던 남편이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귀신들려서 황당한 행동을 하는 나를 보고는 어떻게 손 써야 할지 모르는 남편이 예수 믿는 친정 동생 내외를 불렀다.
“굿을 해서 무당을 만들 건지, 교회로 데려가서 귀신을 쫓아낼 건지 선택하라”는 동생 남편의 말에 남편은 교회를 택했다. 그날부터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며 직분자들의 기도와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나는 점점 제정신을 되찾았고, 남편도 나를 통해 간접적으로 악한 귀신을 체험하고는 하나님을 믿게 됐다. 남편과 나는 함께 새벽예배며 철야예배까지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몇 년째 교회에 그렇게 열심히 쫓아다녀도 나는 여전히 술을 끊지 못한 상태였다. 술만 마셨다 하면 밤새도록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또 악한 영들도 늘 내 주위를 맴돌면서 틈만 나면 정신을 혼미케 하곤 했다.
교회 다닌 지 4~5년 되었을 무렵, 시어머니를 다시 모시게 되면서 이사를 했고, 당시 노량진에 있던 연세중앙교회에 다니게 됐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남편은 연세중앙교회에 오자마자 설교말씀을 듣고 바로 성령을 받더니 수십 년 먹고 마시던 술과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점점 더 술을 많이 마시게 됐고 주일이면 아예 교회도 못 가는 날이 많아졌다. 심방을 온 직분자들의 말에 의하면, 성령 충만한 설교말씀을 들을 때 악한 영들이 내게서 떠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나를 교회 못 가게 생각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그 생각을 물리치고 예배에 성공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술 먹은 다음날 교회에 가려고 하면 ‘술 먹은 년이 교회는 무슨 교회냐', 흰돌산수양관에 가자는 직분자들의 권면을 따르려고 하면 ‘거기 가면 은혜는커녕 이틀도 못 버티고 술 마시러 나올 건데 창피하게 가긴 어딜 가냐'며, 끊임없이 내 마음속에서 나를 정죄하는 소리에 교회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술자리를 찾곤 했다.
남편과 딸을 봐서도 끊고 싶었지만
“이곳이 당신 새 사람 만들고 우리 가족이 살 곳”이라며 열심히 교회 다니자고 하는 남편을 봐서라도, 커가는 딸아이를 봐서라도 나도 하나님을 잘 믿고 새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한없이 한스럽기만 했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훨씬 훌륭한 남편이 왜 지금까지 나 같은 것을 버리지 않고 살아주었는지.... 정말 고마웠다. 한번은 남편에게 나 같은 사람 버리지 않고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남편은 “당신이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하다가 이렇게 됐으니 다 내 죄지. 그리고 당신을 고치려고 교회 다니다가 예수님 믿고 영생을 얻었으니까 오히려 내가 고맙지" 라고 하는 말에 목이 메었다.
10년 전인 마흔일곱 살 때였다. 아침에 일어나 온몸이 엉망진창인 걸 보니 지난밤에도 술을 마시고 밤새도록 돌아다닌 모양이었지만 내겐 아무 기억도 없었다. 난 평생 술을 못 끊겠구나, 이러다가 언제 어디서 객사할지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 누구도 나를 술중독의 올가미에서 놓아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눈물이 나면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하나님이 생각났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 입에서 “시편 121편” 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튀어나왔다. 평소 성경책을 읽지 않았던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자꾸만 입에서 맴도는 것이 이상해서 곁에 있던 남편에게 읽어달라고 했다. 남편의 입술을 통해 들려지는 말씀은 분명히 나의 불쌍한 처지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꼭 지켜주시겠다고 내게 해주신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심방예배를 통해서 술 마귀는 떠나가고
그 후, 담당 교구장님이 우리 집을 자주 심방오시더니 심방예배를 드릴 때마다 뜨겁게 예배를 인도해주셨다. 합심 기도할 때는 술 마귀를 몰아내는 기도를 해주었는데 엄청나게 심한 구역질이 계속 나왔다. 교구장님과 구역장님이 그렇게 두세 시간씩 악한 영들을 물리치는 기도를 해주면 몸과 마음이 너무나 가볍고 시원했다. 그런데 교구장님의 심방예배는 그렇게 하루 이틀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무려 2주일이나 그렇게 뜨거운 기도와 함께 악한 영을 물리치는 기도는 계속 되었다. 참으로 놀랍게 술 마시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드디어 술중독에서 해방되었던 것이다. 20년은 족히 넘은 술중독이, 평생 못 끊을 거라고 하던 술이, 성령충만한 연세중앙교회 교구장님의 심방예배로 완전히 떠나간 것이다.
그 무렵 꿈을 꿨다. 무당집이 줄지어 들어선 골목으로 들어서자 구름떼같이 무당들이 나를 둘러싸는데 내가 십자가를 그으면서 “예수 피”를 외쳐대자 무당들이 다 자빠졌다. 나는 승리했다고 손뼉을 치고 뒤돌아서 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내게 꿈을 통해서 내가 악한 영들에게 예수 피 공로로 승리했음을 인지시켜 주신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예수의 피 공로를 의지해서 그렇게 승리를 하고 나자 하나님께서는 시어머니를 회복시켜 주셨다. 32년 천주교 신자이신 시어머니는 제사 문제로 우리 부부와 갈등이 심했는데 교구장님의 수차례 심방으로 교회에 나오시게 됐고, 최근 삼 년 동안 신앙생활 잘하시다가 올해 5월에 천국에 가셨다. 시어머니가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가시면서 절대로 제사 지내지 말라고 선포함으로 우리 집안의 제사는 완전히 무너졌다.
요즘도 내가 영적으로 조금 안 좋다 싶으면 어떻게 아셨는지 담당 교구장님이 심방을 오신다. 기도해주시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좋은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교구장님의 기도만을 의지할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 영력을 길러 나와 같이 악한 영에 매여 고통받는 불쌍한 사람들을 전도하려고 매일 지역기도모임에 참석하여 기도하며 전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전도해서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왜 그리도 힘이 드는지, 예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직분자들을 힘들게 했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진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나처럼 불쌍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보내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악한 영들의 횡포에서 건져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이 못난 자를 살리셨으니 나도 나처럼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12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