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어린 시절
어릴 적부터 지긋지긋하게 가난했다. 여섯 살 때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살아오신 아버지 밑에서 얻어맞으며 살아온 우리 가족의 인생은 거의 지옥에서 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릴 때 큰 사고까지 당해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에게 우리 가족은 언제나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이었다. 식당일, 파출부, 보험, 부업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려 가시는 엄마, 피가 나도록 얻어맞으면서 중학교 때부터 가출을 시도했던 언니, 내성적이고 속으로 상처를 삭히며 살아온 여동생, 좀처럼 웃는 얼굴을 보기 어려운 막내동생을 보면서 나만큼은 꼭 성공해야 한다는 다짐을 했었다.
나는 가족들 중 특이하리만큼 활발했다.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 있거나 친구들과 놀 때는 현실을 잊을 만큼 정신없이 놀기도 했다. 실컷 얻어맞고 가족 모두가 아버지를 피해 있을 때에도 아버지가 불쌍해 옆에 있어드리기도 했다. 집안형편은 날이 갈수록 더 나빠졌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누구에게도 말 못할 상처를 끌어안고 나 자신을 학대하면서도 좋아하는 미술공부의 꿈을 버릴 수 없어 고등학교 때부터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직장생활 후 남보다 3년 늦게 들어간 대학에서도 일을 하며 4년 장학금을 받으려고 죽자 사자 학업에 매달렸다.
일본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수님의 일본유학 추천은 한국 땅에서의 모든 괴로웠던 기억을 다 잊고 새 출발할 기회로 여겨졌고, 한국에 있으나 일본으로 건너가나 경제적으로 없는 건 마찬가지였기에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일본 땅으로 건너갔다. 나는 그곳에서도 밤을 새워가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고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일본에 온 지 2년 만에 교통사고로 무릎을 다쳐 5평 정도 되는 단칸방에 누워서 ‘대체 우리 가족과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2004년 8월 어느 날, 딱 한 번만 교회에 가보자고 마음먹고 혼자 교회로 간 날 하나님을 만났다. 기도라는 걸 처음 받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님의 강한 임재를 느끼며 몇 시간을 울었다. 극치의 외로움 속에 있던 나는 처음으로 참 평안과 희망을 얻었다. 그날부터 ‘주님’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쏟아졌다. 주님께서는 수많은 상처를 치료해주셨고, 위로해주셨고, 희망을 주셨다.
그 후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기 시작하면서 신앙생활의 훈련에 들어감을 느꼈다. 하나님은 상처로 말미암은 모난 성격을 고쳐주시기 시작했고, 외로움을 이기고 포기하는 훈련, 또한 죄 속에 있었을 때의 나의 추한 모습들을 생각나게 하시어 회개케 하셨다. 또한 주머니에 돈이 바닥났을 때에도 주님으로 인한 극치의 기쁨을 맛보게 하셨다. 무엇과도 비교도 할 수 없는,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과 깨달음과 진정한 평강을 깨닫게 해주셨다.
영적인 갈급함
일본에서 처음 다녔던 교회는 평신도 선교사가 인도하는, 95퍼센트가 유학생으로 구성된 교회였다. 미국 목사님의 설교를 비디오로 들어가며 예배를 드렸고 예배 때 주시는 말씀과 자주 열리는 집회를 통해 신앙의 의문점들을 해소해갔다. 그러나 격려와 칭찬보다는 수군거림이 많았고, 은혜를 나누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예배도 뜨겁고 모두 열심을 내면서도 기쁨이 없었다. 평상시 내가 은혜의 감격을 표현할 때도 시시하게 여길 뿐, 영적인 기쁨과 답답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 교회 구석에 앉아 우는 날이 많았다.
2006년 봄,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비자를 연장해 가며 교회 일에 매달렸다. 몸이 부서질 정도로 일하면서도 기뻤다. 하지만, 내게 일어나는 영적인 문제들에 대한 상담이 이루어지지 않아 늘 답답했다. 그해 여름부터 교회 내에서 여러 가지 오해와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겹치면서 캄캄한 교회 구석에 앉아 주님 앞에서 한없이 울었다. 그때마다 주님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위로해 주셨다. 하루 3시간, 아니 온종일이라도 성경을 읽으라는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다. 죽기 살기로 말씀만 붙들기로 작정하고 노트에 쓰기 시작했다.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써내려갔다.
나의 소원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열심 내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날마다 간절한 맘으로 성경을 써내려간 지 두 달쯤 됐을 때부터 나는 또 다른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외로움도, 인정에 치우치는 마음도 모두 청소되기 시작했고, 천국을 보았으며, 안 믿으려야 안 믿을 수 없도록 성경에 나오는 역사가 나와 내 환경에서 경험되는 것을 느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2007년 박사과정 입학을 결정하고 비자문제로 3월에 한국에 들어왔다. 여전히 교회에 대한 고민을 간직한 채였다. 서울의 큰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 처음 전도할 때부터 온갖 욕을 해대던 막내 남동생이 뜻밖에도 연세중앙교회 책자를 받았다며 어떤 교회냐고 질문하기에 처음으로 연세중앙교회 홈페이지를 열어봤다. 밥을 굶어도 그렇게 미칠 것 같지 않은 갈급함에 싸여있을 때 난생처음 들은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지난 몇 개월 동안 내 가슴속에 응어리진 고통의 덩어리들이 풀어져 내리는 생명의 말씀이었다.
교토에 돌아와서도 거의 매일 듣는 윤석전 목사님 말씀은 내게 사막의 샘물과 같았다.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기쁨을 맛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제는 질투하고, 애매하게 무시하고, 욕하는 사람 앞에서도 온전히 “사랑합니다”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느꼈을 때였다. 다시 한 번 교회에서 깊은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야만 했다. 피눈물 나게 섬겨왔던 교회 구석구석에 나의 손길이 있었고, 나의 찬양과 캄캄한 예배당에서 더 사랑하게 해달라고 부르짖던 기도가 있었던 교회. 나의 모든 것을 드렸던 교회에서 쫓겨나듯 나와서 몇 시간을 집에 와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예배드릴 장소를 위해 기도하면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갈 길을 인도해주셨다. 영적으로 침체된 일본인 교회에 가서도, 새벽기도를 위해 찾았지만 맘대로 기도할 수 없는 한국인 교회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갈급함으로 인해 학교에서 밤을 새워가며 윤석전 목사님 설교말씀을 들었고, 새벽기도 시간은 윤석전 목사님의 새벽예배 말씀을 들었다. 지친 몸까지 흔들며 찬양할 만큼 기뻤다.
주님은 나의 사랑
몸이 너무 피곤하고 지쳐 있던 2007년 여름, 집에 있는 시계가 망가졌고 핸드폰 전원도 나가버렸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버지. 내일 주일예배 가야하는데 몸이 너무 무겁고 힘듭니다. 아버지 방법으로 깨워주세요.’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행복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참새들이 창가에 몰려와서 나를 깨운 것이었다. 반쯤 열어놓고 잔 창문 틈으로 보이는 참새와 햇빛을 보고 주님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받고 피곤도 잊은 채 일본교회로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예배를 드리러 갔다. 매일아침 일어나자마자 “아버지 사랑합니다.” 라고 외치며 일어난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실수 많고 부끄러워 숨고 싶어 하는 나를 너무 많이 감동시켜 주신다. 그래서 종일 하나님을 찾고 또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올해 9월, 계획에 없던 학교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어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윤석전 목사님께 기도 받고 와서 힘내서 잘 하자’라는 마음에 연세중앙교회로 전화를 드렸다. 윤석전 목사님의 융숭한 환대를 받고 교회에 등록도 하고 귀한 선물까지 받고 돌아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의 꿈 나의 소망
지금은 집에서 두 시간가량 걸리는 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요즘 하나님의 교회들이 하나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기도한다. 가족 중 먼저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해, 온가족의 이름을 올리며 기도하며, 일본에서 만난 여러 나라의 친구들, 또한 내가 접하고 있는 많은 일본의 영혼을 위해 부끄럽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현재 교토대학에서 매월 나오는 장학금을 받아가며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다. 2008년 시작과 함께 ‘평안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학교 대표로 작품을 출품했다.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하게 해주신 것도 하나님 은혜다. 섬유공예 중에서도 아무도 하지 않는 ‘띠' 공예 분야를 개척하고 연구를 하며 구체적으로 꿈과 비전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네!” 하며 버릴 수 있는 믿음을 키우기 위해 오늘도 기도한다.
연세중앙교회를 위해서, 윤석전 목사님을 위해서, 모두가 마음이 하나 되어 하나님을 섬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토 땅에서도 기도하는 내가 되기를 원한다. 또한 교토에 말씀에 순종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감당할 수 있는 교회가 세워지길 간절히 기도하며 나는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로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위 글은 교회신문 <12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