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나의 모습
남부러울 것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 주일마다 교회만 다니면 천국 가는 줄 알았다. 하나님이란 존재는 나에게 신이었을 뿐,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 보혈은 옛날 동화처럼 들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IMF로 인해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면서, 평안하고 부유했던 우리 집은 한 순간에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채권자들의 빚 독촉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어린 나로서는 바라보는 것조차 감당하기 힘든 날들이었다. 중학생이 돼서도 집안의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다.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다닐 수 없고, 남들 다 가지는 것들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부모님을 원망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급속도로 타락하기 시작했다. 만나지도 말아야 할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 시간에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했으며, 세상 유혹의 늪에 점점 빠져들면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새 사람이 되려했지만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다니던 개척교회 목사님과 상의 끝에 나를 흰돌산수양관 중고등부동계성회에 보냈다. 반 강제로 성회에 참석한 나는 ‘왜 내가 여기 있어야 하지? 이 많은 사람들 속에 왜 불편하게 앉아 있어야 하지?’ 하는 불만이 먼저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도만 하면 눈가가 촉촉이 젖었고, 문제아로 낙인 찍혀 살아왔던 나의 삶이 한심해 목놓아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는 새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각오로 집으로 돌아 왔다. 한 달 정도는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했지만 개학이 되면서 또다시 예전 친구들을 만났고 예전의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니 더 심해졌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대학진학을 포기하라는 어머니의 말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분명 학자금대출 받으면 갈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때부터 더 삐뚤어지기 시작했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번 돈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타락한 문화에 완전히 중독되어버렸다.
내가 너를 기다렸단다
2007년 1월, 어머니에게 반강제로 끌려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다. 집에서 교회까지 오는 데 1시간 30분정도 걸리는 거리인지라 너무 힘들고, 주일 낮 예배시간에도 거의 졸거나 딴 생각을 하고 청년부 새 가족반 모임만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흰돌산수양관 청년대학부동계성회에 같이 가자는 권유에 억지로 따라갔다. 짐을 꾸리면서도 내 마음에 얼마나 감정기복이 심하던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흰돌산수양관에 가서 첫 예배시간부터 눈물로 회개했다.
‘내가 너를 찾았단다. 내가 너를 많이 기다렸단다.’
마치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하나님, 나 같은 사람도 용서 받을 수 있을까요? 다시 새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나의 더러운 죄를 다 씻어 주신 사건이 옛날 동화가 아닌 나를 위해 당하신 고난이라는 것이 믿어졌다. J피 김무열 집사의 간증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금 새 사람이 될 기회를 주고 계시는구나’라는 감동이 밀려왔다. 아마도 그때 내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돌아올 수 없는 저 먼 곳으로 이미 가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삶의 시작
하나님과의 첫 만남이 이렇게 시작되고, 주일저녁예배와 기도모임, 삼일예배, 금요철야예배까지 다 드리면서 나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는 교회까지 오는 시간이 전혀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쁨이 되었다. 이제는 비전이 생기고, 성령님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많이 후회도 되지만,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
지금은 대학부 정회원이 되었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교회와 목사님 전도사님 직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과 충성이 이제 나의 일이 되었다. 칠흑같은 어둠에서 건져내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13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