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등록날짜 [ 2008-08-12 13:39:29 ]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충성한다고 수줍게 고백하는 그녀

두 달간 진행되는 2008 흰돌산수양관 하계성회가 벌써 중반에 접어들었다. 일일충성으로, 상주충성으로 일하는 성도들이 있기에 영성회복의 장으로 한국 전역은 물론 국외에서까지 몰려든다. 동·하계 두 달간 상주충성한 지 10여 년이 되는 조금자 권사는 3박 4일의 고된 충성을 마치고도 금요일이면 구역장으로, 토요일엔 전도부원으로, 주일에는 어김없이 성가대원으로 파트를 지킨다.
“사는 동안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59세의 나이에도 남달리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그녀지만 주님을 향한 은혜의 고백에는 주저함이 없다. “주님 앞에 충성하지 못하고 전도하지 못한다면 오늘 살아 있는 이 목숨은 가치가 없어요. 주일에 한 영혼도 전도하지 못하면 아침 먹을 자격이 없다는 절박한 마음에 아침을 안 먹고 교회 올 때도 있어요. 지난주도 성가대에 섰는데 내가 한 영혼도 못 살렸다는 것이 너무 초라하고, 내가 오늘 뭐 했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파요.”


자기 자신을 주의 일에 다 내놓고 빈틈없이 주의 일로 채우려는 열정은 어디서 나왔을까?

“39세 때 부인병으로 한 달에 두 번이나 수술을 받고 보니 온 몸의 기력이 다 쇠진했어요. 집 근처 슈퍼에만 다녀와도 3일 동안을 꼼짝 없이 누워 있어야 했지요. 좋다는 약을 다 먹어봐도 그 약을 소화시킬 만한 위 기능도 상실되어 육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가족에게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가보다'라고 유언 아닌 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었는데 10여 년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 나머지 몸이 또 다시 아프기 시작했어요. 영적으로 육적으로 너무나 피폐해지니까 먹고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하나님, 세상 것 하나도 안 바랄 테니 제발 한번만 더 살려 주세요'라며 간절히 기도하던 중 연세중앙교회로 오게 되었고,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며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그 후 예전처럼 다시 먹고살기 위해 맞벌이로 일하려니 양심에 가책이 되더라고요. 하나님께 세상 것 바라지 않기로 서원했으니 오직 주님 일에 충성하며 내 자신을 주님께 다 드리기로 작정했지요. 맞벌이를 해도 빠듯한 형편인데 남편에게 이후로는 당신이 돈 안 벌어주면 굶겠다고 선언하고 충성만 하니 어려움이 많았죠. 세금도 밀리고, 전화도 끊기고, 아이들까지 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어요. 말할 수 없는 위기 속에서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으니 하나님 일을 해야 한다는 결심, 충성의 자리를 묵묵히 지킬 때 하나님께서 온 가족을 성령 안에서 하나되게 해주실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였어요."


경제적 어려움을 오직 하나님 은혜로 이겨냈다.

“내가 돈 벌어서 살림에 보태고 헌금도 하다가 일손을 놓으니까 단돈 만 원도 아쉬웠어요. 거지 중에 상거지가 된 심정이었죠. 당시 남편은 꽃가게를 했는데 운영이 시원찮아서 돈을 가져다 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러던 중 제가 다시 몹시 아팠어요. 어차피 주님 손 안에 있으니 주님이 치유해주신다고 생각하며 매일 철야기도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50일 동안 감사헌금을 하라는 감동을 주셨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내가 죽는 것보다 살아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50일 동안 하루 만 원씩 감사헌금하게 해달라고 했더니 쾌히 승낙했어요. 정말 당시로서는 매일 만 원씩 헌금한다는 것이 너무 힘겨운 일이었지만 다 하고 나니 기적적으로 군포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남편이 다른 사업을 하면서 물권이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교회 근방으로 이사 오면서 더 기도하고 충만해지니까 아프던 몸도 자동으로 회복되었죠. 그러니 충성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충성을 막 시작하던 96년도 무렵,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구역예배 후에 덜 익은 국수를 먹고 배탈이 나서 일주일 가량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죽을 고생을 했어요. 당시 실천목회연구원 강의가 목요일에 수양관에서 열렸는데, 목사님들께 국수 삶아 점심 대접하는 충성을 하겠다고 서원하였기에 아픈 몸이라도 이끌고 기도원 가는 전철을 탔지요. 수원역에 내리고보니 온 몸에 진땀이 나고 한 발짝도 걸을 수가 없었어요. 수양관에 갈 수도,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죽어도 가자’는 마음이 나를 이끌었죠. 기어가다시피 수양관행 버스를 타고 기도하기를 ‘하나님, 버스에 내려서 수양관까지 걸어갈 힘이 없으니 차 좀 준비해 주세요.’ 놀랍게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실천목회연구원에 참석하는 목사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태워주셨어요. 수양관에 도착해서 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는데 일을 손에 잡자마자 죽을듯 고통스럽던 통증이 말끔히 사라지고 몸에서 힘이 솟는 거예요. 그 후로도 수차례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누가 충성하러 가라 하지 않아도, 몸이 아파도, 집안 일이 있어도 무조건 충성이 있다하면 짐 꾸려서 갑니다.”


10여 년을 상주충성하며 눈물 나는 기억도 많다.

“몸이 작으니까 1000인분 대용량 솥에 카레 등을 끓일 때 저으려면 몸이 휘청거리는데 처음 하는 사람들은 며칠씩 드러누워야 할 정도로 힘든 일이죠. 원래 몸이 약하기 때문에 연약해질 때는 눈물을 쏟으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힘주셔서 정말 힘든 일도 거뜬히 할 수 있어요. 남들은 속모르고 힘세다고 말하지만 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입니다. 그렇게 백 퍼센트 하나님의 은혜로 일하는 거니 10년 충성했다 해도 나를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어요. 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은혜로 한 것이기에....
상주충성하려고 월요일에 기도원 가려면 집에서 혼자 가정예배 드리다가 눈물이 펑펑 나게 울 때도 있습니다. 국팀에 나이 많은 사람만 있고 젊은 사람이 없으니 젊고 능동적인 일군들 보내 달라고 말이죠.”


충성하느라 가족에게 소홀해 미안한 적도 많다.

“10년이 넘도록 주님 앞에 변함없이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자녀들이 하나님 일이 잘 되기를 바라며 저를 위해 기도 해 준 덕분입니다. 남편과 자녀들이 집에서 뒷바라지해주기를 바라지 않고 당연한 일로 알고 도와주는 것이 너무너무 감사해요. 딸이 고3 때 다른 엄마들처럼 따뜻한 도시락도 싸주지 못하고 충성할 때는 참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책임지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내가 열심히 충성하면, 지금 당장 보이는 것이 없고 잡히는 것도 없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이 자녀들을 통해서도 일하실 것이라는 확신 말이에요.”


충성실에서만 10여 년 있었으니 때론 힘들어서 다른 기관으로 가고 싶지 않았을까?

“주님의 날 위한 십자가의 사랑, 영원한 생명 주심, 측량할 수 없는 그 크신 사랑을 생각하면 나는 그저 초라할 뿐이에요. 또 목사님이 사력을 다하며 전하는 하나님 말씀 앞에 내가 순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고통스러울 때가 많아요. 오늘까지 영육 간에 지켜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감히 충성실에서 충성하는 것이 싫다 좋다 말할 수가 없어요. 그저 한해 한해 직분주시면 감사한 마음뿐이죠. 무엇보다 충성실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 일이면 무엇이든지 소홀히 할 수 없는 마음, 주의 일을 위해 죽고자 하는 마음의 중심이 있어요. 나에게도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셨기에 충성의 자리를 떠날 수가 없어요.”


충성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충성하면서 일일이 기도하지 못한 일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것을 자주 느껴요. 성회때만이 아니라 모든 삶 속에서 가정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형통하게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겠다고 기도했기 때문에 육신의 것을 구하려 하면 양심에 걸려요. 그래서 몸이 아무리 아파도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해 본적이 없어요. 몸이 아프면 ‘남들은 전도하는데 나는 전도는 커녕 내 영혼도 주체 못해서 병들었다’고 생각될 때 눈물밖에 없어요. 그래서 몸부림쳐 기도하면 육체는 저절로 회복이 되더라고요. 정말로 하나님이 내가 이 땅에 살 가치가 있다면 지켜주실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데려가실 것이라며 마음을 내려놓고 사니 어디가 아파도 육체 때문에 구구절절이 구하지 않게 되죠.”

온 가족이 하나되어 충성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평안하다고 말하는 그녀. 그렇게 충성하는 사이, 시부모님도 차례로 구원해 주셨다. 그녀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함께 느끼며 부러움과 동시에 도전도 받는다. 그녀를 쓰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14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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