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위기, 주님 만나 해결했죠

등록날짜 [ 2009-03-03 10:43:15 ]

시어머니는 팔십 평생을 절에 다니신 보살님이다. 늘 절에서 살다시피하며 온갖 봉사를 도맡아하시고 중국으로 성지순례도 여러 차례 다녀오셨다. 이처럼 대대로 불교 집안이다 보니, 나도 결혼생활 18년 동안 불교행사 때면 시어머니를 따라 빠짐없이 절에 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불공을 드려도 우리 집안엔 늘 갈등이 많았는데 고부 갈등에 부부 갈등까지 겹쳐 결국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 그런데 이혼 직전에 시어머니가 백혈병 진단을 받자 이혼을 미루다가 항암치료가 80% 진행될 무렵 소송을 하러 변호사 사무실에 갔다가 뜻밖에도 전도를 받았다. ‘그래, 이혼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거 하나만 더 노력해보자. 그래도 안 되면 그때 이혼하자.’ 난생처음 전도자를 따라 교회에 갔고 교회에 다니면서 차츰 평안을 찾았다.
내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 남편이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나서 대전에서 광명시로 이사를 했다. 대전 교회 목사님은 서울로 이사하면 꼭 연세중앙교회에 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얼마나 은혜로운 교회면 저렇게 당부하실까 싶어 연세중앙교회에 온 첫날, 교회의 규모에 놀랐고, 윤석전 목사님의 말씀에 또 한번 놀랐다. 설교를 듣는 동안 온 몸이 뜨거워지면서 땀이 흘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는지를 전해주실 때 그 사랑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에 그대로 와 닿아 펑펑 울면서 예배를 드렸다. 성경말씀은 또 어찌나 꿀송이처럼 단지 2시간씩, 때론 저녁부터 새벽 4시까지 눈물콧물 범벅이 되도록 울며 읽었다.
내가 교회 다니는 것을 아신 시어머니는 역정을 내셨다. “교회 다니는 며느리 밥 안 먹는다. 이제 너랑은 끝이다!" 시어머니는 항암치료까지 견디셨지만 팔십 고령이라 병이 재발했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어머니가 입원해 계실 때는 우리 집에서 지역기도모임을 하면서 시어머니 기도부탁을 했다. 그리고 날마다 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래야 어머니를 전도할 수 있겠기에…. 하루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너의 시어머니 그냥 두면 지옥 가는데 불쌍하지 않느냐. 너희 시어머니는 시간이 없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면서 간절한 기도가 나왔다. 기도를 마치자 시어머니를 전도할 때인 것 같아 병원으로 갔다. 그날도 어머니는 넋두리처럼 자신의 고달픈 인생역정을 쏟아내셨다. 예전 같으면 ‘또 그 소리’ 하며 짜증이 났을 텐데, 그날은 그 말이 귀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말씀이 내 귀에 거슬리지 않으니 내가 하는 말도 어머니의 귀에 거슬리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에 복음을 전했다.
“어머니, 천국 가셔야 돼요. 그러려면 예수님 믿어야 해요. 어머님이 천국에 가셔야 자식들 다 만날 수 있어요." 평소 같으면 분명 “너나 믿고 천국가라” 하실 분인데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니!"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내친김에 목사님께 기도까지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다음날 목사님을 모시고 왔다. 어머니는 평생에 처음으로 예배드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셨다. 평생을 불교신자로 살아오신 어머니가 예수를 영접해서 좋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곧 돌아가실 것 같아 기도했다. ‘어머니가 하나님 사랑받을 수 있도록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그 후 어머니는 한 달 간 병원에서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들으셨고, 퇴원할 땐 교회부터 가보자고 하시더니 차로 교회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좋다! 정말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 주일날에 예배에 모시고 갔더니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말씀에 얼마나 크게 “아멘! 아멘!" 외치시는지 우리 부부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날 이후 마흔 일곱의 건강한 내가 팔십 고령의 꺼져가는 촛불처럼 병약하기만 한 시어머니에게 신앙적으로는 오히려 이끌려 다니는 처지가 됐다. 어머니는 흰돌산수양관 장년부하계성회에 참석해서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고 싶어 하셨다. 어머니의 의지를 꺾을 수 없던 주치의는 마침내 허락을 했고 내가 간호사 몫을 대신해야했다. 어머니는 그 힘든 몸으로 성회 3박 4일 동안 단 한 번도 설교 시간에 숙소에 계신 적이 없이 앞자리에 꼿꼿이 앉아 말씀을 들으셨다. 오묘한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가는 어머니의 눈빛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했고, 그 진리의 말씀 앞에 울며 울며 회개하시다가 방언의 은사도 받으셨다. 그리고 나를 향해 하신 말씀. “며눌아, 왜 내겐 평생 예수 믿으라고 한 사람이 없었는지 모르겠구나…. 진작 하나님을 믿었으면 좋았을 텐데….”
올 1월경, 어머니는 거의 눈을 뜨지 못하셨지만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테이프를 듣다가 “아멘, 할렐루야!"를 가늘게 외치시곤 했다. 그런 어머니를 끌어안고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속삭이자 어머니는 힘겹게 눈을 내게 맞추시고 “그래 나도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셨다. 가슴이 뭉클했다. 어머니의 임종하는 모습과 교우들이 장례를 돕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남편과 아이들이 더욱 마음문을 열게 됐고, 지금은 우리 식구 모두와 친정식구들까지 주님 안에서 구원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5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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