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무당굿을 자주 보며 자랐다. 어머니가 무당에게 어깨를 뭔가로 맞는 광경이나 무당이 춤을 출 때 두드리던 그 소리, 앞뒤 마당에 시루떡을 던지며 소원을 빌던 어머니와 할머니, 명절에 제사 음식을 만들고 절하며 빌던 일들, 집안 여기저기에 붙어 있던 부적들 모두가 나와 친숙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집안 환경이었지만 나는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친한 친구의 집에서 ‘휴거’라는 책을 읽고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1993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작은 교회에서 반주자로 믿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교회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을 품고 계신 아버지와 말다툼을 할 때나 다른 친구들이 가족 모두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볼 때는 혼자 믿음 생활하는 나의 모습에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언제 주님이 우리 가족을 구원해 주실까?’ 그즈음 나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은 같은 교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었다. 2001년, 독일로 유학을 떠난 이후로는 식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고, 유학생활이 길어질수록 내 믿음생활도 힘들어져 갔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으라’는 음성
유학의 마지막 코스인 졸업연주시험을 한 달쯤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손과 팔목이 심하게 부었고, 손에 깁스까지 하게 되었다.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자 하는 수없이 휴학하고 한국으로 들어오기로 했다. 한국으로 들어오기 삼일 전, 꿈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으라, 진실로 믿으라’ 나의 믿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하고 진정한 믿음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한국에 들어오자 모든 것이 하기 싫었다.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커졌고, 손을 치료받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 오류동역에서 전도하는 연세중앙교회 분을 만났다. 두 시간이 넘는 열띤 이야기 속에 나는 연세중앙교회를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큰 교회라는 이유로 그분의 이야기에 반박했다. 그분은 자신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치료받았고 그 큰 은혜 때문에 이렇게 전도하는 거라며 교회신문에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그 후, 알 수 없는 나의 신앙적인 목마름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 한 학생의 피아노 레슨을 하던 중 우연히 연세중앙교회의 윤석전 목사님의 이름과 흰돌산수양관 수련회에 가서 체험한 그 학생의 간증을 듣게 되었다. 학생은 연세중앙교회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집에서 10분도 안 걸리니까 나이 많으신 할머니까지 함께 예배드릴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았다. 독일로 출국하기 전 주에 어머니, 아버지, 동생, 할머니 모두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해 첫 예배부터 큰 은혜를 받았다. 새신자 심방 때, 교구목사님과 같이 오신 교구장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 오류동역에서 나를 전도하던 그분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우리 가족을 인도하고 계시는구나!’하는 생각을 뒤로 한 채 학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허벅지에 자라던 주먹보다 큰 혹 사라져
2년이 지난 후, 귀국해 보니 가족들 모두가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고 있었다. 그동안 끊지 못하던 제사며 우상숭배를 완전히 끊고,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가족에게 놀라운 체험과 은혜를 주셨다. 어머니는 원래 천식이 있어서 항상 기침과 가래 때문에 고생하셨는데, 점점 더 기침이 심해져서 가슴이 아프고 나중엔 팔을 못 들 정도가 됐다. 교구목사님께 기도 받으면 낫는다는 동생의 말에 기도를 받았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가슴이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허벅지에는 주먹보다 큰 혹이 있었다. 8년 전에 생긴 것인데 점점 증세가 심해졌고, 통증 때문에 의자에 제대로 앉기도 힘들어 하셨다. 식구들이 ‘빨리 병원 가라’는 말에도 그 혹이 악성 종양일까 두려워 한의원에 가서 침만 맞아 오신 어머니는 “하나님이 고쳐주시겠지. 가슴도 고쳐주셨는데….” 하셨다. 한번 고침을 받은 체험이 있어서인지 어머니는 예배시간마다 윤석전 목사님께서 ‘악한 영들아, 질병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고 외치는 통성기도 때, 그 아픈 다리에 손을 대고 그저 ‘아멘’이라고 화답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나와 동생에게 다리를 만져보라고 했다. 그 주먹만 하고 단단했던 혹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어머니도 언제 그 혹이 없어졌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단지 예배시간에 기도하려고 손을 대 보니 혹이 없어졌다며 기뻐했다. 할렐루야!
어머니의 병 고침의 체험은 우리 가족의 믿음에 큰 자극을 주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정확히 알게 하셨고, 나에게도 하나님을 더 붙들고 의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방언이나 신비로운 체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나는 나 스스로 믿음 자체를 어떤 틀에 넣고 자유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믿음은 지식이나 이론의 방식이 아닌 사랑의 하나님으로 비롯됨을 다시금 깨달았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손목 디스크 치유 받아
피아노 귀국독주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올해 2월 중순경이었다. 연습량이 갑자기 많아지자 예전에 아팠던 손목과 팔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연습도 할 수가 없었다. 손이 아픈 그 주 수요예배 때, 교구목사님의 ‘엔학고레(부르짖는 자의 샘)’라는 제목의 말씀을 듣고 큰 소리로 부르짖어 눈물로 기도했다. “하나님, 나의 죄 때문에 손이 아픈 것이라면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모두 용서해 주세요! 손목이 낫게 해 주세요.” 기도시간이 끝나고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손뼉을 칠 때, 손이 시원하면서 아프던 자리가 손뼉을 세게 쳐도 아프지 않았다. 다음날, 손에 무리가 가는 피아노곡을 쳐보고 손이 나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성령으로 나은 것이면 다시 아프지 않을 거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 가족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구하길 기다리셨나 보다. 우리 가족이 함께 믿음 생활하게 해주심도 주님의 오래 전 계획이었음을 믿는다. 이제 우리 가족의 또 다른 기도제목이 생겼다. 우리 가족 모두가 성가대에서 입술로 찬양하고 손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다. 이 기도제목도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위해 계획하셨으리라 확신한다.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15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