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과 이중적인 신앙 치유

등록날짜 [ 2009-12-30 09:46:45 ]


나와 아내는 양가 모두 기독교 집안이다. 그래서 양가 모두 사돈에 팔촌까지 전도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다. 내 친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목사님이시며, 처남도 목사다. 그런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후에 신학교 종교음악과에 다니면서 작은 아버지가 담임하던 교회의 찬양 인도자로 사역하였다. 작은아버지가 부흥성회에 가시면 삼일예배 설교까지 하던 내가 어쩌다가 알코올 중독의 늪에 빠지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왔는지 고백하려 한다.

이중적 신앙생활
내가 처음 술을 입에 댄 것은 작은 아버지의 교회를 떠나와 일반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하루 2시간도 못자면서 목회훈련을 받는 것이 너무나 고되고 힘들어서 야반도주하듯 찬양 사역자의 길을 뿌리치고 나와 대학 때의 전공을 살려 중소기업 연구소에 취직했다.
새로 다니게 된 교회에서 청년회장을 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니까 남부러울 것 없는 여유로운 삶에 희열을 느꼈다. 어느 직장이나 그렇듯이 회식 자리에 가게 되면 자연스레 술판이 벌어지는데 나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다 그런 거지 뭐’ 하면서 술을 마시게 됐다. 그리고 술을 마신 날이라도 예배가 있는 날이면 몸에 배인 습관으로 교회에 갔다. 신학교에서 종교음악을 전공할 정도로 나름 찬양에 대해 자신이 있었기에 술을 마시고도 예배 전엔 찬양을 인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직장에서는 술 마시고 교회에 와서는 신앙이 좋은 척 이중적인 모습으로 교회에 다닌 지 십 년이 넘어갈 무렵, 직장도 잃고 물질도 잃는 사건이 벌어졌다. 직장에서 사장의 친인척과 의견 충돌로 갈등하다가 결국 사표를 쓰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구 빚보증을 잘못 서서 물질적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되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에 분노하면서 술기운에 의지해 지내는 날이 더욱 많아졌다. 차츰 하루도 술 마시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는 날이 계속됐다.

술의 노예
목회하는 처남의 교회로 옮겼을 때도 나의 이중적인 태도는 여전했다. 결국 교회에 덕을 끼치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교회를 떠나야했다. 처남은 실천목회에 다니던 터라 연세중앙교회에 가라고 권면했다. 그래서 2006년 4월에 서울로 이사를 하고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다. 성령 충만한 교회로 옮겼으니 새벽예배도 드리면서 제대로 신앙생활 잘 하겠노라고 결심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술 중독의 늪에 너무도 깊이 빠져 있었다.
술로 인해 직장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가정에서 나는 폭력을 쓰기 시작했고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딸아이는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40대 중반의 내 자화상이 왜 그렇게 처참히 일그러졌는지, 날마다 나 자신을 자학하며 술을 마셨고 술이 깨면 또 마셨다. 술기운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서든 술을 사다 마시고 깨면 또 마시고... 한 달 동안을 100% 알코올의 힘으로만 연명하자 보다 못한 아내가 교회분들의 도움을 얻어 대전의 모 알코올중독 치유센터로 나를 보냈다.

회한의 눈물
치유센터에서 첫날밤을 보내는데,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 주마등처럼 술로 점철된 나의 이중적인 신앙생활의 모습이 회한으로 다가왔다. 치유센터 내의 성전으로 들어갔다. 술로 망가진 내 몸과 마음과 정신, 나의 영혼을 치유하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어서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보혈의 찬송을 밤새도록 큰소리로 불렀다. 그리고 주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를 했다. ‘주님 술 마시며 하나님을 기만했던 것 잘못 했습니다.’ 이튿날도 계속 피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삼일째 되던 날, ‘이제 술을 안 마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원목을 찾아가서 그만 서울로 가겠다고 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곳은 허락 없이 나갔다가는 다시는 받아주지 않는 곳이라 원목은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만류했지만 나는 서울로 올라오고야 말았다.

앗, 마비된 손과 발이!
집으로 돌아오자, 주님을 의지하는 길만이 내가 술의 유혹을 물리치고 아내와 자식들 곁에서 사람구실하며 살 수 있는 길이기에 예배와 기도생활에 몰입했다. 특히 새벽예배는 생명줄이었다. 윤석전 목사님이 진액을 쏟는 듯한 간절하고 진실한 설교 한 말씀 한 말씀이 다 내게 주시는 말씀이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늘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지난날 내가 육신의 소욕으로만 살았음을 뼈속깊이 절감하면서 일분 일초라도 육신의 생각에 나를 방치하지 않으려고 늘 예배와 기도와 찬양하고 성경쓰기를 하며 성령님만 의지했다.
그렇게 술을 입에 안 댄 지 한 달이 되어갈 무렵,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왔다. 마비된 부위의 뼈 마디마디가 몹시 아파 구부리거나 펴는 동작을 할 수 없었다. 2~3분이면 올라갈 수 있는 전철역 계단을 50분이 걸려 올라가야했는데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건넬 정도였다. 그렇게 온 몸에 이상 징조가 와도 새벽예배만큼은 빠질 수가 없었다. 새벽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충만을 입어야만 내가 살기 때문이었다. 마비가 온 지 한 달이 되어가던 날,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벽예배를 마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고 돌아왔다. 아내는 직장으로,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없었다. 평소엔 아내가 퇴근해서 먹을 것을 챙겨주기 전에는 전혀 식욕이 없었는데 그날은 무척 시장기가 느껴졌다. 무어라도 끓여 먹을까 해서 냄비를 들었는데 뜻밖에도 마비됐던 왼손으로 꽤나 무거운 냄비를 집어 들었던 것이다. 깜짝 놀라는 순간, 마비됐던 왼쪽다리에도 저절로 힘이 꽉 주어지면서 사슬에 묶였다가 풀어지는 듯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놀라서 밖으로 나가 걸어도 보고 뛰어도 봤다. 아무 통증이 없이 자유롭게 움직여졌다. 손가락도 통증없이 움직여졌다. ‘아! 나 같이 못난 놈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고쳐주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생각에 목이 메었다.

술만 보면 구토가
그 뒤, 몸이 완전히 회복되자 노동판이라도 마다 않고 일을 했는데 어디를 가나 새참시간에는 술판이었다. 술을 보는 순간 어지럽고 구토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 년을 그렇게 주님의 보호하심으로 술을 끊고 신앙생활하던 중에, 교회에서 경비하는 일을 해보라는 권유가 들어왔다. 술이 즐비한 세상보다는, 24시간 나를 사랑으로 감시하는 눈이 많은 교회에서 일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 교회에서 일하였고 어느덧 1년 반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술을 끊은 지는 3년이 넘었다.
참혹하리 만큼 처참하게 깨어진 육체로 완전히 죽을 사람이었는데 주님이 이렇게 고치시고 살리셨다.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고 성령을 의지하여 살 수 있도록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신 담임목사님께 감사드린다. 이젠 아이들에게 맛있는 요리도 손수 해주고 살갑게 장난도 치면서 가정을 꾸리고 있어 행복하다. 무엇보다 사람 앞에 잘 보이려던 껍데기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신앙생활하도록 회복시키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17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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