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6-21 14:59:48 ]
앞만 보고 달리던 내 청춘 결국 우울증만 생겨
말씀에 거하니 참기쁨과 행복, 내 안에 이뤄져
우리 교회로 전도받은 지는 벌써 6년이 지났다. 디자이너로 성공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대구에서 상경했을 때가 스물한 살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아버지의 잇따른 사업실패로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장사, 포장마차, 식당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하셨다. 그리고 틈틈이 교회 가서 기도하셨다.
사춘기 때는 예쁜 옷을 보면 사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어도 그럴 돈이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났나,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울기도 하고 원망도 했다. 돈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남달리 컸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 버는 족족 누구에게 뺏길세라 모으기에 급급했다. 어린 여자애가 모아야 얼마나 모았겠는가마는 그때는 그 돈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살다 전도받아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처음 예배드린 날, 어머니께 전화했더니 어머니께서 혼자 서울에서 생활하는 내가 걱정돼서 좋은 교회로 인도받길 기도했는데 응답받았다고 기뻐하셨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 교회에 등록했어도 신앙생활을 잘하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등쌀에 못 이겨 교회 다니긴 했지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막연히 ‘주일에는 교회 가야지’라는 생각만 있지 사정상 다른 일이 급하면 예배쯤이야 뒤로 미루기 예사였다.
의류 디자이너 일은 밤새는 일도 많은 데다, 늘 한 시즌 앞서 디자인을 해야 한다. 남보다 항상 유행에 민감하며 한발 앞서는 부지런함이 있어야 한다. 주일 오전에는 디자인에 필요한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를 배우러 다녔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보다는 기술을 익혀 디자이너로 성공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예배에 빠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직분자들은 그런 나에게 오후 예배만이라도 와서 드리라고 강권했다. 할 수 없이 오후에 교회에 나오긴 했지만 마음은 온통 좀 더 좋은 회사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성공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일 년 뒤 나는 이름 있는 의류 회사 디자이너로 이직했다. 일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지만 성공에 거의 도달했다는 기쁨이 몰려왔다. 사실 나는 내성적이고 조용하며 혼자 지내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오직 성공만 향해서 바쁘게 달릴 때는 별로 문제 될 게 없다가 회사에서 인정받아 거의 모든 디자인을 주도적으로 맡으니 우울함과 공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이 순간순간 밀려와 눈물이 났다. 그때가 8월 즈음으로 우리 교회는 한참 성회 기간이었다.
지금까지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휴가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적이 없었다. 보통 의류공장이나 동대문 상인들 휴가에 맞추기 때문에 7월 초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청년대학 연합하계성회와 휴가가 맞아떨어졌다. 직분자들은 하나님께서 성회 가라고 주신 기회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겨우 며칠 쉬는 아까운 휴가를 성회 가서 종일 말씀 들어야 한다는 것은 내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말로는 성회 간다고 안심시켜 놓고 성회 당일 아침 일찍 짐 싸서 대구로 내려가 버렸다.
대구 집에서 쉬고 있는데 문자와 전화가 빗발쳤다. 애써 전화를 외면하려고 해도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계속 신경이 쓰였다. 결국 3일째 날 “절기 끝 날이 가장 큰 날이다. 오늘 은사집회가 있으니까 꼭 와서 들어야 한다. 꼭 와라. 기다리고 있겠다”는 직분자의 애절한 사정에 할 수 없이 짐을 싸서 수요일 저녁 집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그전에는 들리지 않던 설교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가슴이 요동치며 회개와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공허하고 외롭고 우울한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주님은 나를 위로해 주시고 만져주셨다. 마치 빗물에 흙탕물이 씻기듯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마음이 씻기고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마 이날처럼 태어나서 많이 운 적은 없었을 것이다.
성회에 다녀온 뒤, 갑자기 교회 가고 싶고, 기도하고 싶고, 말씀이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퇴근하고 나서도 교회에 들러 기도했다. 삼일예배와 금요예배도 드리기 시작하면서 내 속에는 예배에 대한 사모함이 커지고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물질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몸이 아파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악착같이 일하고, 십일조도, 감사헌금도 안 하던 내가 하나님 앞에 도둑이었던 것을 깨닫고 지금까지 안 드린 걸 계산해서 그동안 모았던 적금을 깨 한꺼번에 다 드렸다.
그리고 그토록 들어오려고 노력한 유명 브랜드 의류 회사인데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니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 세상 욕심이 사라지고 신앙생활 잘하고 싶은 마음만 남았다. 그래서 의류 디자이너 일을 그만두고 신앙생활 하기 좋은 일반 회사로 옮겼다.
내적으로도 변했다.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는데 옆 사람이 보이고 남을 배려하며,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성적이고 어둡던 성격이 하나님의 은혜로 많이 밝아지고 환해졌다. 가족들은 자기밖에 모르던 애가 변했다고 어리둥절해했다. 사실 직분자가 된 지금, 예전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나는 참 관리하기 어려운 회원이었음이 분명했다. 직분자들 속을 얼마나 썩였는지 미안하기만 하다.
나는 얼마 전 결혼을 해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요즘 ‘하나님은 내가 무엇하기를 원하실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전에는 오직 성공을 향한 집착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뤄 드리고 싶은 소망이 가득하다. 세상 욕심 다 내려놓고 주님만 바라보니 신혼 재미보다 신앙생활 재미가 더 좋다.
위 글은 교회신문 <24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