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9-07 21:18:47 ]
운전 중 정신 잃고 중앙분리대 들이받아
뇌 절반이 종양으로 덮였으나 기도로 나아
치료해주신 주께 감사… 평생 전도할 것
3월 5일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하는 중이었다. 차를 직접 몰고 김포대로를 가고 있는데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져서 핸들을 놓쳤다. 그 순간 차는 중앙차선으로 향했다. 맞은편 차와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는 위급한 상황에서 중앙 차선 파이프에 부딪혔다. 사고가 난 지점은 중앙분리대가 끝나는 지점이었지만 다행히 파이프 하나가 때마침 그곳에 있어서 대형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사고가 아니었다. 병원으로 후송된 후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교통사고로 뇌종양을 발견하다
사고 처리 후 회사 동료가 나를 서울 구로구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했다. 응급실로 가서 CT와 MRI 촬영을 했는데 뜻밖에도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 glioblastoma)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사고를 통해 내 병을 알게 된 것이다. 사고가 아니었으면 뇌종양을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담당 의사는 미리 알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리 알았다고 해서 나을 것도 없었다. 이미 뇌의 절반을 종양이 차지하고 있는데다 워낙 악성이어서 수술이 시급한 상태였다. 의사는 “고통이 심했을 텐데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요?”라고 했지만 사실 난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그 흔한 두통 증세도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는데도 까맣게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의사들은 수술해도 몇 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다. 워낙 악성 종양이라 길어도 5개월 재발할 우려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수술 후 방사선 치료와 약물치료도 그저 몇 개월씩 목숨을 연장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아내는 억장이 무너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저 가벼운 혹 하나를 떼어내면 되는 줄 알았다.
뇌종양 수술을 받다
3월 14일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결과는 좋았지만 워낙 악성 중에도 악성 종양이라 경과를 지켜봐야 했다. 게다가 4~5년 전부터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어서 치료는 더욱 어려웠다.
그 와중에 윤석전 담임목사님께서 병원에 심방을 오셔서 기도해주셨다. 교통사고로 눈 주위엔 온통 피멍이 들고 수술을 앞두고 머리까지 박박 밀어 한없이 가엾어 보이는 나를 껴안고 목사님께서 한참을 우셨다. 성도를 사랑하는 목자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송구하고 죄송한 마음 정말로 형용할 길이 없었다.
4월 초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6주간 받아야 했다. 방사선 치료는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힘을 전혀 쓸 수가 없었다. 몸은 점점 말랐다. 평소 66kg이었던 몸무게는 51kg까지 빠졌다. 퇴원해서 집에 있으면서 방사선 치료로 인해 힘들어도 예배시간에 절대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렸고, 예배 후엔 목사님께 기도를 받았다.
그런데 방사선 치료 10여 일이 지났을 무렵 CT 촬영을 해보니 종양을 드러낸 그 자리엔 물이 꽉 들어차 상황이 위급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의사들은 수술하기보다는 머리에 구멍을 내서 물을 빼내자고 했다. 상황은 점점 위급해져 갔다. 의사는 아내에게 “남편분이 몇 개월 못 사니 준비하라”는 뜻의 말을 자주 했다. 내게도 “맛있는 거 많이 먹어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그 말이 건강해졌다는 뜻인 줄로 알고 웃었으니 눈치가 없어도 한참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뇌에 찬 물은 빼내지도 않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말라버렸고 응급상황은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이미 내게 일하고 계셨던 것이다.
수술 후 몸은 더 악화되고
6월 초, 방사선 치료를 다 마치고 항암제 약물치료에 들어갈 무렵, 교회에서는 50일 작정 기도회를 시작했다. 이 작정 기도회는 꼭 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앉아 있기도 어려웠지만 50일 내내 거의 서서 기도를 했다. 살고 싶어서 기도로 매달렸다. 사실 나는 교회 다닌 지는 10년째지만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은 없었다. 매일 그렇게 2시간씩 전 성도가 기도하는 가운데 함께 기도하니까 믿음이 생겼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시한부 인생인 걸 전혀 알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내 상태를 잘 아는 아내는 죽기 살기로 기도에 매달렸다. 평소 20분도 기도를 못 하던 아내가 작정기도회 때는 매일 2시간씩 두 손 들고 기도했다.
병원에서는 항암제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고 했지만 기도회를 하면서 믿음이 생겨 약을 먹지 않았다. 순간순간 약으로 치료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을 보여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오직 기도에만 매달렸다. 담임목사님은 예배 때마다 통성기도 시간에 매번 기도해주셨다. 눈물로 기도해주시는 그 애절함에 곧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뇌종양에서 자유함 얻고
작정 기도회가 40여 일이 지난 7월 14일 삼일예배, 여느 때와 같이 통성기도 시간에 담임목사님께서 기도해주시는데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조중익 집사, 많이 좋아졌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다음 날, 낮에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흐느끼는 음성으로 전화를 해주셨다. “조 집사,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신다는 응답을 주셨으니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감사하며 기도해.”
눈물이 흘렀다. 병든 성도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다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내게 전화하신 목사님의 음성을 들으니 순간 다 나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부터 정말 내 온몸에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느껴졌다. 내 손을 잡는 교우들도 하나같이 “조 집사님, 손이 따스해졌어요. 정말 이젠 온몸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아요”라며 기뻐해 주었다. 얼굴에 병색은 점점 사라지고 생기가 돌았다. 몸에 힘도 생겨서 짚고 다녔던 지팡이도 버렸다. 나았다는 확신이 생기니까 빨리 병원에 가서 다 나았다는 진단을 받고 싶었다.
그렇게 50일 작정 기도회가 끝나고 내 몸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살도 조금씩 찌기 시작했고, 밥맛도 좋아졌다. 놀랍게도 혈압과 당뇨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뇌종양을 위해 기도했는데 평소 앓던 병까지 깨끗이 나은 것이다.
8월 초, 흰돌산수양관 장년부 하계성회 때는 또 한 번 뜨거운 은혜의 체험을 했다. 그동안 믿노라 했지만 신부의 믿음을 갖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회개했을 때, 목사님께서 강단에서 내려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시는 순간 뜨겁고 강렬한 빛이 머리를 관통하는 듯하고 시원해졌다.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완전히 치유하셨다는 확신이 가슴 가득 밀려왔다.
성회를 마치고 8월 27일 뇌종양 MRI 촬영을 했다. 결과는 너무나 좋았다. 담당 의사는 뇌 속이 깨끗하다고 했다. 내가 앓은 뇌종양은 악성 중에 악성이라 수술이 아무리 잘 되어도 5개월 후면 또다시 재발하는 병인데, 재발은커녕 오히려 좋아졌다는 것이다. 담당의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의사는 고가의 항암제가 효과가 있었기 때문인 줄 알지만 나는 내 병은 오직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의사는 계속 항암제 치료를 권했다. 하지만 난 단호히 거절했다. 아내는 의사에게 지금까지 병원에서 준 항암제를 먹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의사는 약을 먹지 않으면 재발의 위험이 크다고 말했지만 나는 안다. 하나님께서 이미 다 고쳐주신 것을.
주님 오실 때까지 전도할 터
우리 집안은 암의 내력이 있다. 아버지께서 후두암으로 돌아가셨고, 형님은 간암으로 고통 속에 돌아가셨다. 나도 그렇게 심한 악성 뇌종양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순간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지만 이렇게 모두 나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병시중으로 힘들어했을 아내에게도 참 미안하고 고맙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그동안 기도해주신 담임목사님과 성도들에게 감사하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 모든 성도는 참으로 행운아들이다. 성령 충만한 우리 교회, 언제나 기도할 수 있는 우리 교회에 몸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다.
앞으로는 전도하며 살 것이다. 요즈음은 기도할 때마다 능력을 주셔서 성령 충만함으로 영혼 살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매일 기도 후에 전도하러 다닌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알리고 싶어서이다. 다시 한번 지난 6개월 동안 겪었던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믿음 잃지 않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간증을 전하며 전도할 것이다. 견고한 신부의 믿음을 가지고.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20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