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예수] 이기적인 나를 바꾸신 하나님

등록날짜 [ 2011-05-19 09:40:19 ]

교회에서 비로소 타인을 사랑하는 법 알게 돼
늘 불평만 하던 내가 언제나 환한 미소가 가득

중국 하얼빈에서 한족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중국은 1970년대부터 한 가구 한 자녀 정책을 펴서 대부분 한 자녀인데, 나도 무남독녀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라다 보니 모든 것이 나 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또 결혼 전까지 패션의류판매업에 종사해서 패션에 민감하고 늘 나를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한류 드라마를 보다가 한국에 가서 살면 정말 멋지게 살 것 같은 생각에 어머니 친척의 소개로 한국 남자를 소개받아 스물일곱 살 때 한국으로 시집왔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 생활해보니까 드라마 속 현실과는 거리가 먼 신혼생활에 정이 붙지 않아 남편과 자주 다퉜다.

시어머니는 팔베개해줄 정도로 친딸처럼 대해주고, 열한 살 차이 나는 남편은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할 정도로 성실하고 생활력도 강하며 환경도 넉넉한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말을 못하니 친구도 없고 대화할 사람도 없고 지리를 잘 몰라 마음대로 외출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처럼 멋지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꿈이 산산이 부서진 것 같아 짜증이 났다.

무엇보다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한국 남자들은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는 고루한 사상에 찌들어서 가정일을 모두 아내가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중국은 남녀평등 사상이 뿌리내려 밥하고 빨래하는 등 가사도 남녀구별 없이 아무든지 부지런한 사람이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아내가 집안일에 지쳐 있어도 남편들이 과일 깎아 달라, 커피 타 달라 이것저것 시키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 중국에서 나고 자란 내겐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물론 남편은 나를 끔찍이 아끼는 사람이라 일부러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지만, 중국과 한국의 생활방식이 다르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하는 행동이 나의 혈기를 치솟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 가슴 답답한 신혼생활을 석 달째 하고 있을 무렵, 숨통이 확 트이는 일이 생겼다. 시누이가 연세중앙교회에 데리고 갔는데, 거기에 중국 사람들 모임이 있어서 마음껏 대화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고향 말로 마음껏 수다를 떨고 오는 것이 좋아서 주일이면 꼭 교회에 갔다. 그러자 그런대로 마음이 안정돼서 아이만 생기면 한국에 정을 붙이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임신을 기다렸다.

그런데 빨리 임신이 되지 않아 교회 친구에게 말했더니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라”고 했다. 난생처음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아이를 주세요” 하고 기도했더니, 놀랍게도 바로 임신이 됐다.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구나!” 믿어졌다.

그런데 첫 애가 돌이 되기 전에 또 임신하게 됐다. 연년생으로 아기 둘을 낳아 키우다가는 한국에 와서 멋지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평생 집안 살림에만 파묻혀 지낼 것 같아서 서둘러 낙태했다. 그런데 교회분들이 심방을 와서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며 낙태가 죄라고 일러줬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아 반발했다. 하지만 교회분들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속 권면하자, 내가 중국의 사회주의 유물사관에 젖어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을 낙태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예배드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나의 죄를 간절히 눈물로 아뢰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사해주시고 다시 기쁨을 주시는 체험을 했다.

일 년 후에 다시 임신하자, 이번엔 태중의 아이가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란 걸 깨닫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출산했다. 둘째딸은 유난히 귀엽고 예뻤다. 딸아이 둘 키우기가 쉽지 않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온종일 주일 성수를 하고 집에 돌아가면 저녁 7~8시, 그 시간에 남편의 저녁을 준비하는 것이 힘들지만 마음은 기쁘다. 주님께 “힘들더라도 주일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예전에 5분도 못 하던 기도가 요즘은 30분이 금방 지나갈 정도다. 방언으로 기도도 하며 성령님의 감동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사실 나는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사랑이나 관심을 둔 적이 별로 없다. 심지어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둘째를 낳은 후부터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남편에게 관심이 가고, 그를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 남편을 위해 아내로서 어떻게 내조할까 고민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지금도 가끔 남편과 다툰다. 그러나 내 잘못을 발견하고 바로 화해하고 남편에게 원망을 돌리지 않는다.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모성애, 인내, 사랑, 책임감 같은 것이 새록새록 싹트는 것을 느낀다. 예전엔 나만 위했지만 이젠 남편과 아이를 위하고, 불평불만으로 가득 찼던 얼굴도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요즘 교회 친구들이 내게 이렇게 말한다.

“묘묘가 완전히 딴사람이 됐어. 믿음이 성장하더니 정말 좋은 엄마, 남편을 사랑할 줄 아는 아내가 됐어.”
나는 하나님 앞에 정말 티끌같이 미미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사랑을 주셨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믿음과 사랑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복이 너무도 많아 감사할 따름이다.

<다음은 중국어 원문>

 

 

위 글은 교회신문 <24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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