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1-22 15:51:32 ]
아들 중2 때 교통사고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에 시달려
온갖 방법 다 동원해 치료했으나 결국 아무런 차도 없어
기도하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니 정상인처럼 회복
강경옥 성도(제51여전도회)
아들 진수와 함께 사진 김영진 기자
“다녀오겠습니다.”
기타를 멘 진수가 운동화를 챙겨 신으며 현관문을 나선다. 부랴부랴 뒤쫓아 가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차 조심을 단단히 이른 후에야 잘 다녀오라고 인사했다. 올해 스물한 살인 진수는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대학 실용음악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진수 혼자 대중교통으로 홍대 근처까지 개인지도를 받으러 가겠다고 했을 때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언제 어디서 쓰러질지 모르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 걱정 단단히 붙들어 매라는 듯이 집을 나서는 표정에다가 발걸음도 씩씩하다. 정말 내게도 이렇게 마음 편히 아들을 배웅하는 날이 올 줄이야!
누가 병명만이라도 알려주길
악몽은 2005년 5월 16일에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이던 진수는 저녁 5, 6시쯤 직장에 있는 나를 만나려고 사거리 골목길을 건너고 있었다. ‘저 차, 골목길인데 너무 빨리 달린다’ 싶더니 내 눈앞에서 진수를 들이박아 왼쪽 다리를 깔고 지나갔다. 진수를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다행히 단순한 염좌니 2, 3주 후면 낫는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진수는 그날부터 코피를 쏟고 온몸이 아프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2, 3주 후면 낫는다더니 학교에도 못 갈 만큼 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다리에서 시작한 통증은 온몸으로 퍼져 밤새도록 울부짖었다.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니 한방병원부터 정형외과, 신경과 등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다녔지만 원인이 뭔지, 병명이 뭔지조차 모른다고 했다. 6개월 동안 유명하다는 전문의를 찾아가 묻고 물어도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의사도 모른다면 이건 하나님께 물어볼 일이다’ 싶어 기도하며 지혜를 구했다. 아파 죽겠다는 아이에게 어미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얼마 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군데만 더 가보자며 찾은 병원에서, 자율신경검사, MRI, 체열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하더니 “이 정도 아플 때까지 뭐했느냐, 왜 이제 왔느냐”고 호통을 치며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알려줬다.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어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한마디로 세상 의학으로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라고 했다. 외상, 골절 등으로 신경이 손상했을 때 손상 정도보다 훨씬 심한 통증이 나타나고, 그 통증이 지속하여 사지 마비와 같은 이차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그제야 비로소 왜 그렇게 진수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스치는 바람에도, 햇빛에 눈을 찡그릴 때도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는지 이해가 됐다. “산모가 아기를 낳는 열 배 강도로 진수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다. 아니, 악몽이 시작한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그 차에 치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병원에서는 진수 몸에 주사를 12번을 놓고, 모르핀을 맞혔다. 또 진통이 올 때마다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했다. 의사는 우리가 할 방법은 고통을 경감해 주는 것뿐이라며 전기 자극으로 통증을 줄이는 전기 척추신경자극기를 삽입하자고 했다. 가족들은 무조건 말렸다. 사람 몸에 기계를 심는 것도 석연찮은데, 수술이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 잘돼도 고통을 최고 30%밖에 줄일 수 없다는데 왜 하느냐고 반대했다. 하지만 어미 마음은 달랐다. 산모가 겪는 고통의 10배가 아닌가. 그중의 30%만이라도 아프지 않다면 몇 개라도 달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구나 하나님께 기도하여 만난 병원이니 분명히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거라고 믿었다.
수술 당일, 진수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이 수술 꼭 성공할 거다”라고 확신을 준 뒤 수술실로 들여보내 놓고 그 길로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진수가 5시간 넘게 수술받는 동안 일 분 일 초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실까 봐 잠시라도 기도를 쉴 수 없었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는 나를 보자마자 “수술이 잘됐다. 이제 진수가 걷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의사 말로는, 전기 척추신경자극기 수술 직후에 곧바로 걷지 못하면 앞으로도 걷지 못한다고 했다. “자, 진수야 걸어봐”라고 했더니 힘이 없어서 못 걷겠단다. 아들이 반신불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남편은 “걷지도 못할 거 뭐 하러 수술했느냐”고 노발대발했다. 나는 담대하게 “2, 3일 뒤면 걸을 수 있다”고 담대히 선포했다. 수술을 성공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들을 반신불수가 되게 놔두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수술하고 삼일째 되던 날, 침상에 누워 있던 진수가 “엄마, 나 걸어볼래”라고 말하더니 씩씩하게 병실을 걸어 다녔다. 의사는 이렇게 수술이 잘된 것도 처음이고 수술 후에 바로 걷지 못하면 계속 못 걷는데 진수는 이 모든 상황을 역전시켰으니 기적이라고 했다.
가정형편은 날로 어려워지고
하지만 퇴원하고 집에 돌아오니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진수에게 온 신경이 몰려 있던 탓에 남편 사업이 기울었고, 덩달아 가정 경제가 힘들어졌다. 신경이 날카로울 대로 날카로워진 남편과 내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주 다투자 진수는 모든 게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수술한 지 2,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전기 척추신경자극기가 소용없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겪었다.
진수는 거의 날마다 코피를 쏟고 통증을 견디다 못해 기절했다. 병원에서는 “진수에게 스트레스는 독인데 왜 스트레스를 받게 했느냐”며 우리 부부를 나무랐고, 예전보다 더 강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너무 많이 사용하다 보니 뇌 신경이 죽기 시작했다.
진수는 감정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작은 일에도 버럭 화를 내고 사고와 판단까지 흐려졌다. 또 이틀 동안 혼수상태에 빠지는 등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장 병원비며 생활비가 없으니 도저히 진수만 돌볼 수 없어서 나도 일하러 나섰다. 이런 우리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SBS(서울방송)에서 진수를 돕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병원비며 수술비를 후원받을 수 있다는 말에 2009년 11월에 출연했다. 얼마 뒤 진수는 약물주입기를 배에 다는 수술을 받았다. 당시 이 수술은 비용이 워낙 고가인데다 건강보험 혜택까지 없어서 엄두도 못 내던 터라 ‘이제야 뭔가 되려나 보다’ 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내 희망 사항일 뿐, 수술 직후에는 많이 좋아졌다가 이내 상태가 나빠졌다. 면역력이 떨어지니 폐렴부터 방광염, 전립선염 등 모든 장기 기관이 기능을 잃기 시작했고, 눈의 시신경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에 진수는 더욱 스트레스를 받다가 폭식으로 이어져 몸무게가 90㎏까지 늘었다.
<사진설명> 2009년 11월 SBS TV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 당시 모습
기도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알아
‘이게 뭔가! 세상에서 최고 시술까지 받았고 해볼 수 있는 건 다했는데도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동안 직장에 다니랴, 진수 돌보랴 소홀했던 기도가 유일한 해결책이다 싶은 마음에,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가장 간절한 기도제목은 서울로 이사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전남 광주에서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입.퇴원을 반복하려니 차비는 둘째치고 온 가족이 지쳤다. 하지만 당장 서울에 집을 구할 형편이 안 됐다.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진수가 수술할 때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역사하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서울 병원에 갔다가 연세중앙교회에서 은혜롭게 예배드린 기억이 났다. 그래서 기도제목을 하나 더 추가해 연세중앙교회 근처로 이사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기도하니 남편도 서서히 마음을 다잡고, 진수도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이렇게 가정이 회복되니 올 수 없는 환경임에도 하나님께서는 서울에 집을 구하고 작년 8월에 온 가족이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하게 인도해주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연세중앙교회에 보내신 것은 진수를 위해 더 기도하라는 뜻으로 알고 금식하며 밤마다 철야기도에 들어갔다. 또 구역식구들은 기도모임 때마다 함께 아파하며 합심으로 중보기도 해주었다. 서울에 올 때까지만 해도 진수의 몸무게가 98㎏이었다. 병원에서 체중 때문에 염증이 더 심하니 살을 빼라고 말해도 진수는 꿈쩍도 안 했다. 그런데 연세중앙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은혜를 많이 받고 와서는 “엄마, 나 살 뺄래요”라고 말하더니 6개월 만에 정상 체중으로 돌아왔다. 또 교구목사님께 기도를 꾸준히 받으면서 우울증 약을 끊었고, 점차 마약성 진통제와 신경치료제까지 다 끊었다. 모든 것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그때까지도 진수는 몸속에 전기 척추신경자극기 2대와 약물주입기 1대를 달고 있었다. 이 기계들은 통증이 올 때마다 자동으로 마약성분을 신경계에 전달해 고통을 덜 느끼게 해주니 진수에게 꼭 필요한 기계들이다. 그런데 진수가 흰돌산수양관 청년성회에 다녀오고 며칠 뒤 기계가 없어도 될 것 같다며 다 빼달라는 게 아닌가. 성회에 가서도 통증 때문에 못 견디겠다고 몇 차례 전화하더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방언은사를 받는 등 성령을 체험하니 하나님이 고쳐주실 거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이 기계들은 보험도 안 될 뿐더러 한번 빼면 다시 삽입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산모 고통의 열 배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싶어 재차 물어도 “기계들 때문에 일상생활하기가 무척 불편하니 빼주세요. 아프면 기도하면 돼요”라고 말했다. 절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던 의사도 결국 진수의 고집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결국 진수는 두 달 전에 몸속에 있던 기계 3대를 다 빼고 마약성 진통제와 우울증 약까지 모두 끊었다.
요즘 진수에게 아프지 않으냐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고쳐주셔서 아프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대학선교회 찬양팀에서 기타로 충성할 수 있어서 감사하단다. 죽을 고비에서 살려주시고, 불치병도 고쳐주셨으니 손가락이 닳아 없어지는 날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다는 말에 나까지 은혜를 받았다.
이제는 꿈만 같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6년 동안 불치병과 싸우다 보니 아직 어린아이 같기만 한 우리 진수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이뤄 드리고 영광 돌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수를 고쳐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26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