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3-20 15:49:39 ]
수양관 직원으로 일하면서도 기도에 소홀하니 병이 재발
담임목사님과 사모님 안수로 믿음이 생기며 깨끗이 낫다
인주환 안수집사(섬기는안수집사회장)
1990년대 초, 내 나이 40세 때 위(胃)출혈을 심하게 한 적이 있다. 구급차에 실려 갈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혈압도, 맥박도 안 잡힙니다. 이봐요! 이봐요! 선생님 혈액형이 뭐예요?”
당시, 나를 흔들어 깨우는 의사의 다급한 소리에 비몽사몽 간 혈액형을 말하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 일로 두 주 만에 퇴원했다. 위출혈이 있으면 비릿한 피 냄새가 목으로 올라오고, 식은땀이 줄줄 나며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기억은 지금도 진저리가 쳐진다.
아무튼, 죽을 뻔한 그런 일을 겪고도 하나님을 갈급하게 찾지는 않았다.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사업차 사람들을 만나면 담배 피우고 고스톱 하기에 바빴다. 내 속에는 마흔이 넘도록 예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출석하던 교회가 지방으로 이사해서 새로운 교회를 찾던 중, 평소 잘 알던 친구가 설교 말씀 테이프를 건네주었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에 들어본 걸걸한 목소리. “십일조 안 낸 사람들은 다 하나님 것 떼먹은 도둑이다!” 원색적인 복음을 전하는 설교 말씀을 듣자, 그동안 쌓아온 가식적인 신앙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큰 충격이었다. 아내도 여러 번 그 설교 말씀 테이프를 듣고 직접 당시 노량진에 있던 연세중앙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다가 결국 성전 근처로 이사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연세중앙교회에서 뜨겁게 예수를 만난 후 ‘영적으로 살아야겠다’는 감동이 강하게 일었다.
예수께로 돌아오다
그렇게 말씀에 은혜 받고, 남전도회 생활에 정착하며 하나님과 관계가 열리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도 순간순간 경험했다. 당시에 우리 교회는 흰돌산수양관을 사서 한창 본당 증축과 숙소동 신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양관에서 일할 일손이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한번은 담임목사님께서 “인주환 집사, 수양관 직원으로 일하지그래?” 하신 말씀이 심령에 박혔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40년 동안 너를 위해 살지 않았느냐. 그러니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시며 감동하셨다. 그래서 사업을 정리하고 1997년 11월 말에 수양관 직원으로 들어갔다.
현재 있는 흰돌산수양관 숙소동 신축과 대성전 증축은 이미 완료되었고, 마감 작업과 마당 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이일저일 뛰어들어 바쁘게 일하니 몸은 힘들었으나 마음만은 감사에 젖어 살았다. 나 같은 강퍅했던 자도 하나님이 써주시니 그저 감사해서, 화장실에서나 잠시 틈이 날 때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잇살이나 먹어서 흘리는 눈물에 남부끄러웠지만, 마음속에 감사만이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감사로 수양관 직원으로 일한 지 3년쯤 됐을 무렵이다. 수양관 건물이 하나씩 완공되고, 진입도로가 깔리고,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와 성령 충만히 은혜 받는 모습을 보면 감개무량했다.
하지만 동계와 하계 각각 두 달씩 열리는 흰돌산수양관 성회가 원활히 진행되게 수종 들며 섬기던 내게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처음 수양관에 왔을 때만 해도 일과를 마치고 나면 마음 맞는 집사님과 함께 기도에도 열심을 냈지만, 점차 충성에 바쁘고 지치다 보니 그만 기도 줄을 놓쳐버렸다.
전국의 수많은 성도는 은혜 받고 기쁨에 겨워 돌아가지만 정작 수양관 직원인 나는 육신의 피곤함으로 말씀을 사모하지 못하고 기도 줄까지 놓치자 영적으로 몹시 갈급해지고 몸도 점점 쇠약해졌다.
또다시 찾아온 위경련…그러나 기도로 이겨내
그러던 중, 2000년 2월 동계성회 막바지인 목회자부부영적 세미나가 한창 진행 중일 때였다. 모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그때,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는데 피 냄새가 위장에서 확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응고된 피와 함께 대변도 시커먼 색으로 변해 있었다. 벌써 수 시간 전부터 위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해서 급히 내려오라고 해놓고서도 내 속에서는 갈등이 일어났다. ‘지금 병원에 가면 살 수 있는데…. 수혈받으면 살 수 있는데…. 여기서 지체하다 죽으려고 하냐?’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지금 수양관을 내려가면 지는 것이다. 내가 여기 어떻게 올라왔는데…’ 마음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피를 토하기 시작했는데, 나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놀랐을 것이다. 정말 이번에는 위출혈 부위가 무척 큰 것 같았다. 피가 밑으로 내려가다가 역류해서 토할 정도가 됐으니…. 식은땀이 말도 못하게 나고, 부축을 받아가며 화장실에 가서 피 토하기를 수차례…. 사태가 시급하다 보니 낮 집회를 마치자 담임목사님께 보고한 모양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것은, 담임목사님이 내가 누워있는 방으로 오시는 소리가 들리는데, 오시면서도 울음 섞인 기도를 하시며 걸어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하나님, 충성자가 잘못되면 저 목회 못합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방 안에 들어오셔서는 그 연약한 몸으로 누워 있는 나를 끌어안아 당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몸을 구부려 내 머리와 가슴을 끌어안고 예수 이름으로 악한 병마를 쫓아내시면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눈물로 기도하셨다.
내 속에서는 ‘아, 이제 살았다. 이제 이겼구나!’ 하는 믿음이 샘솟듯 밀려왔다. ‘병원을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하는 갈등은 사라지고 이제 병이 나았다는 감격과 희열이 밀려오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담임목사님께 기도받은 직후부터 피를 토하는 양이 조금씩 줄었다. 그날 저녁, 사모님께서 오셔서 재차 기도해주셨다. 순간, 가슴에서 또 피가 올라오려는 느낌이 들었다. 사모님의 옷에 피를 토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내에게 급히 손짓했다. 수건으로 입을 막고 게워냈다.
그런데 잠시 후, 수건을 펼쳐보니 피가 아니라 희멀건 물이 묻어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1990년대 초 응급상황일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위출혈을 멎게 하면서 위장 속에 고인 피를 코에 호스를 넣어 빼내는 데도 여러 날이 걸렸다. 그런데 목사님께 안수 받고 몇 시간 만에 멀건 물만 나온 것이었다.
‘아!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치료하셨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시는구나. 악한 것들이 다 나갔구나.’ 하는 것이 깨달아졌다.
목회자부부영적세미나를 마친 목요일 오후, 충성자들이 귀가할 때 함께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1990년대 초 위출혈로 입원했을 때는 한 주간 거동도 못하고 누워 있다가 걸음마부터 해서 2주 만에 회복해 퇴원했는데, 이번에는 더 많은 피를 쏟았음에도 며칠 만에 건강을 회복해 수양관으로 돌아가 이후 2년 남짓 더 충성의 땀을 흘렸다.
그러다가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 목돈이 많이 들어갈 즈음인 2002년도 연말, 59개월간 몸담고 충성하던 수양관에서 내려왔다. 1개월이 모자란 5년이란 세월 동안, 정말 부족하기 그지없는 자를 하나님의 성산에서 복음을 수종 드는 일꾼으로 써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올린다.
충성의 값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한 충성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시는 분이시다. 수양관 생활을 접고 사업을 구상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예비해 놓으셨던 것이다. 무얼 해보려고 해도 막상 수중에 돈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동서와 처제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그들을 통하여 사업장과 사업자금을 조달받았고, 그 이듬해부터는 사업이 잘되어 빚도 금세 갚았다. 아들은 7년간 중국 유학생활을 잘 마치고 현재 군 복무 중이다.
하나님께서는 충성한 보상을 이미 넘치게 해주셨다. 만약 그때 수양관 직원으로 일하지 않고 세상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어도 당시 IMF가 터져서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 기간에 충성하게 하시고 지금까지 몸 건강히 살게 하시니 하나님께서는 내게 큰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 올해는 섬기는안수집사회장으로 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중직도 맡겨주셨다.
안수집사회장으로 담임목사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요즘 나는 한 편의 설교를 보는 증인의 삶을 살고 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성도를 사랑하는 담임목사님의 삶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받으실 만한 충성이요, 보는 이가 감동하여 교훈과 도전을 받는다.
참으로 나는 복 받은 자다. 풍성한 내 영혼의 양식이 있고, 충성함으로 영혼의 때의 부유가 있고, 기도의 응답이 있는 좋은 교회, 좋은 목사님 내외, 좋은 성도를 만났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강퍅하기 그지없던 자를 변하게 하여 써주시고 은혜 베푸신 하나님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8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