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신앙과 건강, 기도로 되찾아

등록날짜 [ 2012-05-01 13:19:43 ]

오빠 우울증 치유 위해 기도하며 신앙의 중요성 깨닫고
내 건강 좋지 않은 이유 죄 때문임을 알고 회개로 회복
김효정 (충성된청년회 9부)
서울에 올라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대전에서 직장에 잘 다니고 있었고,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2010년 여름, 특별한 이유 없이 모든 것이 힘겨웠다.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지쳐서 ‘직장을 그만두고 어디든 떠나고 싶다,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먼저 서울에서 자리 잡은 친구의 권유로 치(齒) 기공 업체(구강 장치, 교정 장치를 만드는 일)에 면접 본 것이 덜컥 붙었다. 일단 합격 통보를 받으니 서울로 올라가는 일은 급물살을 탔다.

일 년에 두 차례씩 기절할 만큼 늘 몸이 허약한 나를 염려한 부모님께서 몇 번이나 말리셨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서울로 올라왔다.

이유 있는 서울 상경
친오빠가 서울에 살고 있어서 일단 오빠랑 같이 살기로 했다. 그리고 대전에서도 연세중앙교회를 잘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등록했다.

그런데 성탄절 무렵부터 오빠가 좀 이상했다. 몇 주째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살도 무척 쪘고, 머리카락도 수염도 자르지 않고 폐인처럼 지냈다.

“우울증이 있다”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오빠의 고백에 억장이 무너졌다.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고, 괜스레 소문이 날까 봐 누구에게 쉽사리 의논할 수도 없었다. 걱정하실까 봐 부모님께도 함구하고 날마다 오빠가 죽을까 봐 혼자 전전긍긍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오빠 얼굴을 확인하고 나가고, 출근해서도 전화를 안 받으면 불안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일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집에 와서 오빠가 살았는지 확인하고….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듯했다.

그런데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강하게 의지하게 됐다. 이제껏 교회에 다녔지만 믿음이 별로 없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으니까 ‘하나님은 내게 관심이 없으시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직장 일이 끝나면 무조건 교회에 가서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 은혜로 오빠가 흰돌산수양관 청년대학부동계성회에 참석했고, 청년회 부장과 직분자들이 잘 섬겨주자 계속 예배에 참석해 설교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 성회 도중에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산을 타고 도망가기도 하고 그러다 미끄러져 손톱이 깨지는 등 영적 싸움도 치열했지만, 결국 오빠는 술, 담배를 다 끊고 주님께로 돌아왔다. 오빠 영혼을 사랑하신 주님께서 그 영혼을 살리라고 나를 서울로 이끄신 것이다.

회개로 원인 모를 병 고쳐
서울에 온 후, 내겐 특별히 적응할 것 없을 만큼 다 좋았는데, 원체 몸이 약한 것이 문제였다. 특히 출퇴근할 때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것이 고역이었다. 지하철에 오르면 어지럼증이 와서 중간에 한 번 내린 후 쉬었다가 가야 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다.

또 처음에는 주일에 온종일 교회에 있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하는 기도모임부터 시작해서 저녁예배가 끝나는 오후 6시쯤이면 녹초가 됐다. 저녁예배 후에는 ‘빨리 집에 가서 쉬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교회를 옮길 생각도 했지만, 오빠 때문에 그러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교회를 옮기지 않은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다시 한번 고백한다.  

내 몸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일 년에 꼭 한 차례씩 쓰러지는 일이 벌어졌다. MRI나 CT, 뇌 사진까지 다 찍어봤는데도 의사들은 자율신경계 이상이라고 할 뿐, 뚜렷한 원인을 말해주지 못했다. 쓰러질 때는 거의 의식을 잃어 몸을 가누지 못하여 온몸과 얼굴에 심하게 멍이 들 정도였지만, 왜 그렇게 몸이 약하고 아픈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영분별의 능력이 생기자 차츰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지난해 여름, 아침 출근길이었다, 그날은 겨우 세 정거장도 못 가서 지하철에서 내려야 했다. 죽을 정도로 힘들어서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순간, ‘효정아, 너 지금 죽으면 천국 갈 수 있느냐?’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생각해 보니, 교회에 다니지만 믿음 없는 내 모습, 그래서 지옥 갈 수밖에 없는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왜 내가 늘 아픈지 깨달아졌다.

사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내 마음속엔 늘 미움이 가득했다.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미움이 커질 때마다 몸이 몹시 아팠다. 심하면 오른쪽 귀까지 막히고, 어지럽고, 피부에 두드러기도 나고, 생리도 한 달 동안이나 계속했다. 미움은 그렇게 나를 병들게 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 스스로 옆에 미워하는 사람을 항상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당시에는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꼭 있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가 문제였다. 나 스스로 항상 누군가 미워할 사람을 만들어 놓고 그 사람을 미워했던 것이다.

미워하는 이유도 별다른 것이 아니라 ‘저 사람 하는 짓이 내 눈에 거슬려’ 혹은 ‘저 사람 생긴 것이 거슬려’ 정도였다. 그냥 이유 없이 미웠다. 나중에는 내 마음에 안 든다고 거칠게 내색도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못된 근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교회에서 회개 기도하자고 하면 ‘나는 회개할 것이 없는데 뭘 회개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은혜 놀랍고 감사해
남을 미워하던 마음을 눈물로 회개한 지금은 무척 건강해졌다. 예배도 끝까지 드리고, 밤늦게까지 성가대 연습을 할 정도다. 어머니가 서울에 오셨을 때는 주일에 교회에서 충성하고 기도하고 자정 즈음에 귀가하는 것을 보고 무척 신기해하셨다. 매일매일 내게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뛰어넘고 있다.
 
기도시간도 늘고, 금식을 못 하던 내가 아버지를 위해 금식도 했다. 예전에는 몸이 조금만 피곤해도 ‘빨리 집에 가서 쉬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일단 주의 일을 하면 힘이 난다. 감당할 능력을 넘치게 주시는 주님 은혜를 경험하니, 그동안 나를 아프게 해서 주님 일을 못 하게 가로막은 것이 다 마귀역사였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다.

벌레보다 못한 나! 정말 나는 그렇게 못난 존재였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살리신 하나님을 원망했던 지난날이 너무도 부끄럽다. 나를 위해 독생자를 주신 그 한없는 사랑을 모르고 장님같이 살아왔다. 건강을 찾게 해주셨으니, 이제는 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리라.                                   

/정리 오정현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28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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